о중년의 넋두리..♣

고독을 벗삼는 지혜, 황혼의 등불 되리니..

여행가/허기성 2015. 11. 5. 13:16

고독을 벗삼는 지혜, 황혼의 등불 되리니..

10월 15일자 사연: 손자 봐주러 떠난다는 여친, 황혼엔 사랑도 사치인가요

팔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살아오신 칠십대 남자분은 '밥 먹고, 잠자고,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단하고 덧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식구 건사하기도 바쁠 자식들에겐,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말라'고 큰소리치지만, 그 말조차 멋쩍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만큼 자식들은 그에게 무관심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영화 같고 꿈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젊은 시절 꿈꾸었던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가, 한 여인을 만난 겁니다. 열 살 연하의 그 여인과 벗이 되어, 그는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다니며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그의 일상은 잃었던 빛과 윤기를 되찾았습니다.

똑같은 잠자리, 똑같은 식사이건만, 잠도 잘 오고 밥맛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기로 합니다. 황혼 재혼의 나쁜 결말을 익히 보아왔기에, 선물 같은 만남 자체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감정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손자를 봐주러 가야 한다며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한 그녀. 악수 한 번으로 안타까운 작별을 하고, 전보다 더 깊고 커진 외로움을 혼자 달래고 있다는 남자분의 사연에 많은 분들이 위로의 말씀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연령대별로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자녀 세대인 삼사십대는 글쓴이의 고독에 안타까운 공감을 표하며, 어떻게든 그 여인과 인연을 이어가시라고 응원을 보내주더군요. 왜 확실한 프러포즈를 하지 않으셨느냐고 안타까워하는 젊은 여성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글쓴이와 동년배인 분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습니다. 노년이 외로운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외로움을 혼자서 잘 갈무리하는 것이 바로 노인이 가야 할 길이라는 냉정한 댓글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잠시나마 일상의 고독을 달래준 그 여인에게 감사하되, 가는 사람을 굳이 붙잡지는 말라는 게 그분들의 조언이었지요. 감정에 빠져서,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벌였다가는 서로에게 나쁜 결말이 닥쳐오고, 자식들 눈에는 주접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거라는 따끔한 질책까지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의 질책 속에서 뒤틀린 아픔을 엿보았습니다. 과연 그분들이 노년의 고독을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너무 잘 알기에 감히 나무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고독을 달래기 위한 모험이 더 큰 고독과 후회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셨기에, 글쓴이에게 달콤한 응원만을 보낼 수는 없으셨겠지요. 길지 않은 여생, 덧없는 인연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라는 그분들의 말씀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쓸쓸한 주문에, 조금 다른 빛깔의 고독으로 답하는 사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10월 22일자 사연: 남편과 사별 후 잘 지냈는데… 나이 먹을수록 고독해져요

이십여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씩씩하게 살아오신 일흔 살 여성은 말합니다. 이제 진짜 노인의 나이에 접어드니 내게도 외로움이 저절로 찾아오더라고요.

내 인생의 십자가와 같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두 딸을 시집보낸 후 맞은 혼자만의 생활은 홀가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즐기며 여유로운 오십대와 육십대를 보낸 그녀는 모범적인 독거 노인이라는 주위의 찬사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계절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어느 날 문득, 남편을 부르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합니다. 그렇게 짐스럽던 남편인데, 떠나가던 뒷모습이 제일 어여쁘던 사람인데, 일흔 살의 나는 마흔 살 즈음의 내가 되어 '○○아빠'를 애타게 찾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에 지쳐 새로운 인연을 찾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그녀. 다시 못 올 길 외롭게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만 나날이 깊어진다는 그녀. 그녀가 뒤늦게 맞닥뜨린 고독한 일상은 또 어떤 의미로 채워져야 할까요?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 있게 채워오던 일상이 어느 날 무너진다면, 그 곁엔 누가 남아 있을까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고독, 누군가의 곁에서 혼자 앓는 고독, 그런가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생의 마지막 고독.

고독의 무게와 부피 앞에, 지금껏 너무나 쉽게 황혼의 사랑을 응원해온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황혼의 재혼에 적극 찬성하는 고마운 젊은이들 속에 실은 저도 늘 끼어 있었지요. 그러나 노년의 아픔과 고독을 마음 깊이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막상 내 부모의 일이 되면, 현실적인 손익부터 따지고 들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고독을 벗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벗할 수 있겠지요. 세상의 벗을 향해 마음을 여는 동시에, 내 안의 고독과도 오랜 벗이 되는 지혜만이 황혼의 등불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혜를 노년층에 주문하기 전에, 그분들의 깊고 막막한 고독에 한 번쯤 공감해보는 10월이면 좋겠습니다. 신선한 가을 초입에서 만추의 시린 풍경을 미리 그려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