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근에서 다 잘된다는 건 옛말이에요"
"삼성 인근에서 다 잘된다는 건 옛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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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삼성생명 사옥 뒷편에 위치한 식당가 골목.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에 몰려 나오고 있다. /사진=배규민 기자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과 삼성본가 뒷편 식당가 골목. 식당들은 아침장사를 마친 뒤 점심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골목에서 1980년부터 35년째 빈대떡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요즘처럼 힘들 때가 없다”며 운을 뗐다.
그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동네서 장사하면 절대 망할 일이 없다는 말이 돌았는데 지금은 장사가 안돼 매물로 나온 가게가 하나 둘이 아니다. 5년 전에는 권리금 2억~3억원에도 매수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권리금이 없어도 매수자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장사가 안되면 가게를 내놓을까 한다고도 했다.
삼성그룹 본사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사옥을 서초동으로 옮긴 뒤 다른 계열사들이 이전해 왔지만 직원들의 씀씀이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게 지역 식당주인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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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전경. /사진=배규민 기자
상인들은 태평로 삼성 금융 계열회사들의 이전 여부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7년 전부터 이 골목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B씨는 “제일모직 건설 직원들도 내년 2~3월엔 서초사옥으로 간다고 들었다”며 “삼성 계열회사들이 연이어 옮기면 지금보다 매출이 더 줄어들 것 같다”며 걱정했다.
계열사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기간 동안의 매출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내년 2월쯤 태평로를 떠나는 삼성물산(옛 제일모직)건설 직원들은 약 800명. 통합 삼성물산은 옛 제일모직 건설과 옛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일원화하기로 했다.
상인들은 삼성 금융계열사를 대신해 입주할 회사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고깃집을 하고 있는 C씨는 “차라리 시중은행 등 다른 회사들이 들어오면 구내식당이 크지 않을테니 직원들이 외부식당을 이용하지 않겠냐”며 “어떤 회사들이 입주할지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 악화와 칼바람은 인근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너편에 위치한 한 식당주인은 “지난해 3분기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발표 이후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다”며 “퇴근 후 술자리하는 직원들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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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바로 앞 건물 1층에 임대문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이 곳은 원래 한식 뷔페 식당이었으나 지난 주 문을 닫았다. /사진=배규민 기자
강동구 상일동 강동첨단지구에는 삼성엔지니어링, NICE(나이스), 세스코 등 7~8개의 기업들이 위치해 있다. 그는 “삼성엔지니어링 관련 직원들이 다른 기업 전체 종사자들보다 많다. 이 지역 식당 대부분은 삼성엔지니어링을 보고 장사를 시작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상황에 따라 인근 상권은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식당 운영이 힘들어 문닫은 곳도 있었다. 삼성엔지니어링 사옥과 마주 보고 있는 오피스 건물 1층 창문에는 ‘임대문의’라는 글자가 걸려있다. 당초 이 곳은 한식뷔페식당이었는데 지난주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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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사진=배규민 기자
인근 한 상인은 “임대료도 비싸고 생각보다 장사가 안돼 결국 폐업한 것으로 안다”며 “중심가와 떨어져 있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점심장사인데 버티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옥은 팔지만 건물은 빌려서 사용하지 않겠냐”며 “다른 삼성 계열사들이 올 수 있다는 보도도 봤는데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