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해도 내 맘 알지?” 이용규-유하나 부부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말 안 해도 내 맘 알지?” 이용규-유하나 부부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12월은 프로야구 선수 가족에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다. 한 시즌이 끝나는 동시에 새 시즌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 1년 중 유일하게 마음 푹 놓고 같이 쉴 수 있는 한 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 여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
2015년을 뜨겁게 보낸 ‘열혈남아’ 이용규(30·한화)는 이번 12월도 해외에서 방망이와 씨름하며 보내고 있다. 아내 유하나(29)씨는 또 한국에 남아 바다 건너 남편을 그리워하며 12월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서 미리 만나보았다. 보람찬 한 해를 마치고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가기 전, 동료 선수들의 결혼식 덕분에 나들이에 나선 이용규-유하나 부부를 만나보았다. 야구밖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죄로 크리스마스 한 번 같이 보내지 못하는 아내 유하나 씨와 28개월 된 아들 도헌이가 따라나선 즐거운 데이트. 인터뷰는 이용규가 훈련을 떠나기 전인 12월6일에 진행됐다. 조금 앞당겨 진행된 이용규 가족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인터뷰다.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가 참 궁금합니다. 어떻게 만났나요.
이용규(이하 남편)=이 사람이 항공사 모델이었는데 공항에서 사진을 보고 제가 반했어요.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연락처를 알아냈죠. 2년 동안 알고 지내다가 정식으로 교제했고요. 처음에는 나한테 관심도 없었어요.
유하나(이하 아내)=제가 야구를 전혀 몰랐어요. 야구선수라기에 검색을 좀 해봤죠. 잘 생겼더라고요. 야구선수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키를 보니 많이 작았지만 ‘뭐 교제할 것도 아니니까’ 생각하고 연락하고 지냈죠. 그러다 직접 만났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이상한 것은 만난 자리에서는 저한테 눈길을 안 주더라고요. 친구하고만 얘기하고요. 그 당시에는 제가 좀 괜찮았어요. 저한테 눈길을 안 주기가 어려웠던 때인데 이 사람 뭐지 싶었어요. 그 다음에 만났는데 또 적극적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세번째 만났을 때 제가 들이댔죠. ‘우리 사귀는 거에요, 아니에요?’라고요.
-왜 그랬죠. 작전이었나요.
남편=사실 그때 내가 치아 교정 중이라 그랬어요. 보고 싶어서 만나기는 했는데 얼굴 보면서 말하기는 꺼려져서 그랬죠. 하하.
-이용규 선수는 집에서도 터프가이인가요.
아내=아들한테는 정말 장난꾸러기인데 저한테는 상남자에요. 정말 남자죠. 제가 반한 것도 그런 면이었어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모습에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배우로 활동하다 전업 주부로 살고 있네요.
아내=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결정한 것이고 전 또 나름의 다른 즐거움을 찾고 있잖아요. 일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가끔 있지만 아기가 생기면서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죠. 그래도 남편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도 가끔 하네요.
-야구선수랑 사는 것 어때요.
아내=나보다 남편을 좀 더 생각해야되는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조금 덜 드러낸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것은, 남편이 정말 가정적이에요. 설거지 같은 건 절대 안 하지만 아기한테는 정말 잘 해요. 저는 아직도 너무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은데 저 사람은 너무 야구밖에 모르니까 한동안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아기가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 요즘 너무 좋아요. 결혼한 지 4년 됐는데 전 아직도 전지훈련 가면 그렇게 눈물이 나요. 시즌 중엔 정신 없다가 이렇게 한 달 동안 잠깐 정말 가깝게 있다가 또 떨어져지내야 하는 게 적응이 안 되네요. 아기가 이렇게 아빠랑 놀다가 또 얼마나 보고 싶어할지 생각하면 마음도 아프고요.
-조금 있으면 또 헤어지겠네요.
남편=스프링캠프 전에 일본에서 훈련을 할 계획이에요. 타격폼을 바꿔보려고. 프리미어12에 가서 많은 걸 느꼈어요. 내 폼이 정석은 아니구나 생각했죠. 며칠 전에도 밤에 문득 생각이 떠올라서 혼자 방망이 들고 나가서 해보기도 하고. 내년이면 서른둘이고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내=남편은 진짜 야구밖에 몰라요. 타격 폼 바꾸겠다고 하니 훈련해야죠.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훈련 가있어서 12월을 같이 보내지 못했어요. 겨울에도 거의 떨어져있죠. 그나마 같이 있는 시간 계산하면 2주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연말인데 2015년 정리를 한 번 해볼까요.
남편=팀도 개인적으로도 아쉬웠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되는데 그 상황에 다친 것도 아쉬웠고. 하지만 재미있었죠. 끝까지 순위 싸움 했으니까. 우리 선수들도 충분히 느꼈을 거에요. 하면 된다는 것을. 2위, 3위까지 올라갔었잖아요. 자신감도 붙었을 것이고, 또 좋은 선수들이 왔으니까 내년엔 좀 더 목표치를 높게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차근차근 밟는 게 순리지만 내년에는 5강 이상 목표로 잡을 거에요.
아내=입장권 부탁 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늘었던 해였어요. 야구장 가봐도 관중석도 꽉 차있고. 저도 정말 이번 시즌 재미있었어요. 맥빠지는 경기가 거의 없었고 계속 긴장하면서 야구를 봤거든요. 남편은 아마 아쉬운 점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아내로서 제 입장에서는 그래도 잘 보낸 시즌이었다고 생각해요.
-올해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남편=우리 팀 트레이너들한테 가장 고마워요. 다쳤을 때 몸 관리 잘 해주셔서 이렇게 잘 마쳤으니까요. 김성근 감독님도, 타격코치님들도 다 감사하죠. 잘 만난 것 같아요. 내 스타일이나 이론 같은 게 잘 맞거든요. 대화도 많이 하면서 시즌 보냈어요.
-아내한테는요?
남편=(침묵)
-말하기 쑥스러워 그러나요.
남편=당연한 건데 뭘 굳이…. 당연히 고맙죠. 야구 얘기를 잘 안해요. 내가 스트레스 받는 것 같으니까. 잘 했을 때만 좀 얘기하더라고요. 그런 게 배려해주는 마음이라는 거 잘 알죠. 그런데 지금 고맙다고 하기엔 너무 이르잖아요. 마흔 넘어서까지도 야구할 건데. 요즘에 좀 이상해요.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운 적이 없었는데 아들이 생겨서 그런지 요즘엔 TV 보다가도 자주 울컥하게 돼요. 은퇴하게 되면 정말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겠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아내=정말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남편=난 야구로 고민하는 게 좋아요. 심심하면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봐요. 일본 선수들 요즘 누가 잘 하고 어떻게 치나, 배울 거 있으면 배워야죠. 나도 좀 변하고 싶으니까.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랬더니 지금 또 야구 얘기 하는 건가요
아내=고맙겠죠. 하하. 쑥스러워 그런지 말은 못하는데 글로는 표현을 잘 해요. 손편지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써줘요. 최근에도 받았는데 너무 감동받아서 갖고 다녀요. 글로 보면 그렇게 다정하고 로맨틱한 사람인데 말로는 표현이 안 되나봐요. 문자 메시지로도 표현 많이 해주고요. 여기 이런 자리에서는 안 하죠. 서운해질때쯤 한번씩 사랑스럽게 편지도 주고, 참 저를 들었다놨다 잘 하는 능력자에요.
-아니, 이렇게 남편을 멋지게 포장해주는 아내한테 한 마디 말도 못하나요.
남편=(살짝 발끈하며)포장? 내가 표현 못하는 건 인정하는데, 진짜 난 가정적이에요. 나는 골프도 안 쳐요.친구들이랑 만나서 노는 것도 허락받고 가끔이고, 시즌 때도 월요일에는 내 약속 잡은 적도 없다고요.
아내=저기요. 제가 다 얘기했어요. 자기가 말 안 해도 돼요. 하하.
-올해 남편이 가장 멋져보일 때가 언제였나요.
아내=저는 남편이 늘 멋있어요. 빨리 이 콩깍지가 벗겨져야 제가 좀 편할텐데…. 올해는 프리미어12 대표팀 때 가장 멋져보였어요. 특히 아기한테 태극마크 달고 있는 아빠 보여주는 게 정말 뿌듯했거든요.
-대만에 직접 응원도 갔잖아요.
아내=남편이 같이 가자고 해줬어요.제가 예전에 대만에서 연기 활동을 했거든요. 가고 싶어했더니 대표팀 뽑히기 전에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우리 아내가 워낙 가고 싶어하니까 나 대표팀 꼭 뽑혀야 된다’고요. 하하
남편=베이징올림픽 때 (이)대호 형 형수가 직접 와서 음식도 만들어주고 하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오라고 했죠. 경기 전에 야수 후배들 몇 명 불러서 같이 밥도 먹고 좋았어요. 후배들은 아마 옛날의 나처럼 부러웠을 거에요. 아기도 아직은 어리지만 아빠가 야구한다는 것을 이제 인식은 한 것 같아요. 아들한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하죠. 아들이 좀 더 컸을 때도 야구선수로서 위치가 좀 더 올라가있으면 좋겠어요.
-이용규에게는 태극마크가 참 특별한 것 같아요.
남편=이번 대회는 워낙 좋지 않은 환경에서 한 우승이라 더 좋았죠. 난 대표팀 가는 게 좋아요. 기회 한번도 못 얻는 선수들도 있는데 뽑히는 게 어디에요. 내가 대표팀에서 받은 혜택도 많고요. 은퇴할 때까지는 어디가 부러지지 않는 한 불러만 주면 무조건 갑니다.
-내년 계획은요.
남편=일단 둘째를 가져야죠. 그리고 타격 폼이…
-또 야구 얘기 시작인가요.
남편=지금 내 최대 고민은 타격 폼이에요. 올해 잘 안 됐으면 당연히 바꾸는 건데 프로 들어와서 타율이 제일 높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바꾸려고 하는 건 내가 정말 생각하는 게 따로 있는 거니까요.
아내=(남편의 둘째 계획 발언에 깜짝 놀라다가) 이런다니까요.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