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톱 없는 여소야대...'정책연대'가 대안
원톱 없는 여소야대...'정책연대'가 대안
안철수 '일자리 특위' 제안에 원유철 "적극 환영"
小與多野 정국...3당 입법 등 공조 움직임 가시화
|
20대 국회가 독보적인 1당이 없는 여소야대가 되면서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한 정책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느 당도 확실한 입법권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진영논리에 얽매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보면 한국경제의 앞날이 더 불투명해 질 수 있다. 20대 국회 임기는 4년이지만 그 후유증은 수십년 이어질 수 있어 여야가 이번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세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닌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15일 서울 마포당사에서 “38석의 원내교섭단체인 국민의당은 단순한 캐스팅보트가 아니다”라며 “국회 운영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전날에는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등 연일 정책주도 의지를 내보였다. 이에 원유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생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는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손을 내밀었다. 어느 당도 원톱이 될 수없는 상황에서 연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19대 국회 임기 동안에라도 3당이 모여 지난번 제안했던 ‘민생입법을 위한 6자회담’에 나서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1당일 때도 같은 제안이 나왔지만, 총선 전에는 ‘갑’의 분위기가 느껴지다, 이번에는 ‘을’의 호소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새누리당의 자세도 낮아진 것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총선 결과) 지금은 모든 입법을 (야당과)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일본의 자민당·공명당 같은 연정은 어렵겠지만 3당이 최소공약수 법안을 뽑아 타협하는 식으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22석의 새누리당이 국민의당(38석)과 친여무소속(7석)과 손을 잡아도 167석에 그쳐 쟁점법안을 의결할 수 있는 180석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당(38석)과 정의당(6석), 친야무소속(4석)을 모두 끌어들여도 최대 171석에 그친다.
더민주 역시 정책연대에 대한 수요가 강하기는 마찬가지다. 1석 차이로 1당이 되기는 했지만 호남 완패 등에서 보듯 전폭적 지지를 얻은 게 아니어서 대안정당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과거와 같이 강경파에 휘둘리면서 오직 진영논리에 따라 법안의 발목을 잡게 되면 오만으로 비춰져 이번 새누리당 참패와 같은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과거의 어느 개념에 사로잡혀 무슨 정체성이니 뭐니 이런 데서는 좀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김태년 더민주 의원 역시 “총선 결과 의석구도로 보면 (정책연대를)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며 “주요 관심정책들을 내놓고 따로 합의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서는 논의해보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진곤 경희대 교수는 “여당은 힘(의석수) 자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더민주도 과거처럼 약자 코스프레로 대안없이 반대만 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내년 대선도 앞두고 있어 여야 3당 모두 대화와 타협을 보여줘야 하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 정책연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정책연대 필요성에 대해서는 100% 공감하면서도 “법안 중 특히 경제법안은 도입배경이나 목표효과가 모두 다르다”며 “합의과정에서 여야가 서로 일정 부분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화와 타협 문화가 없는 현실정치에서) 어렵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여야의 논란이 크지 않은 정책에 대해서는 연대가 가능하겠지만 양적완화나 법인세 인상 등처럼 첨예한 경제법안의 경우 타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가졌기 때문에 3당이 합의해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어 정부를 포함한 4자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벼락같은 결과였다. 집권 여당의 참패, 20년 만의 3당 체제, 16년 만의 여소야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고 잠시 멍했다. 이번 총선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민이었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곧장 운전대를 잡으러 갔다.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청취하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이 긴급 운행에 나설 타이밍이었다.
이번 총선 결과에 담긴 국민 표심의 진의(眞意)는 무엇일까. 충격적인 총선 결과가 나온 14일 보이스택싱이 서울 시내 곳곳을 돌며 시민들을 태웠다. 시민들이 들려준 민심은 준엄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잘해서 찍어준 게 아니다. 무능하고 오만한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날 정오부터 6시간 동안 7명의 승객이 보이스택싱에 올랐다.
# 명동역 → 왕십리
정오를 넘긴 시각. 빈 택시로 손님을 찾아 헤매는데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김대찬(28)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김씨는 동대문에서 2년째 도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총선 결과에 대해 물었다.
“(새누리당 참패는) 그럴만한 결과죠. 저는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 포함)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동대문 상권 살리겠다더니 아직도 달라진 게 없어요.”
김씨는 2014년 창업 후 2년간 계속 상황이 나빠진다고 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인 소매상이 그나마 매출을 올려준다고 한다.
“20대 국회가 죽어가는 경제부터 살려줬으면 해요. 새누리당도 이젠 정신 차려야죠.”
# 서초동 → 화양사거리 → 면목2동
오후 1시20분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을 지날 때 장관호(53)씨가 보이스택싱을 불러 세웠다. 승차하자마자 택시기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가까운 길을 추천했는데도 먼 길로 돌아가려 한 기사와 분쟁이 있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총선 결과에 대한 민심을 듣기 위해 나온 중앙일보 보이스택싱입니다. 인터뷰 가능할까요. 목적지까지 원하시는 길로 모셔드릴게요. 물론 공짜로요.”
Q : 개표 결과 어떻게 평가하나요.
A : “새누리당은 자기 컵에 있던 물을 자기 발에 쏟아부은 격이에요. 공천 때 너무 편향적으로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죠. 더민주가 잘했다기보다는 새누리당이 너무 못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Q : 3당 체제가 됐습니다.
A : “진작에 됐어야 하지 않았나요. 적당한 크기의 제3당이 만들어지면서 기득권을 흔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봅니다. 거대 양당을 견제하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Q : 현 정부는 책임이 없나요.
A : “인사 문제가 컸어요.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만 전권을 준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안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모습 보여줬는데 아쉽죠. 그런데 옛날 왕도정치 시대도 아니고 민주정치 시대에 그런 식으로 일방적 인사를 하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장씨를 화양사거리에 내려주니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을 지나 군자교 사거리 인근에서 김경옥(65)씨가 택시에 올랐다. 병원에 갔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마트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목적지인 면목2동으로 향하면서 김씨는 이번 총선에 대해 “불안한 결과가 나왔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많이 바뀌어서 솔직히 불안해요. (3당 체제로)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국회가 대통령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 강남역 → 포이사거리
오후 3시 꽉 막힌 강남역 인근에서 최모(45)씨가 승차했다. 최씨는 강남에 사는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자다.
Q : 더민주가 많은 의석을 얻었습니다.
A : “새누리당도 잘못했지만 더민주가 잘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부가 일하는 데 사사건건 반대만 해왔잖아요.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놓고 (새누리당)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부당하죠.”
Q : 강남에서도 더민주 소속 의원이 나왔습니다.
A : “정말 놀랐어요. 테남(테헤란로 남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결국 그렇게 되네요.”
Q : 지역주의도 일부 깨졌습니다.
A : "텃밭이 허물어지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삼국시대도 아닌데, 고향 출신 뽑는다는 인식은 사라져야지요.” # 방배동 → 내방역 → 사당역
남부순환로를 타고 사당역 방면으로 가던 오후 4시쯤 두 중학생 딸과 함께 원유민(44)씨가 보이스택싱에 승차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데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원씨는 엄마 입장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풀이했다.
“당도 당이지만 이제는 후보의 자질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고 영남에서도 더민주 후보가 이겼잖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지역주의라는 유물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다행입니다.”
Q : 국민의당이 약진했는데요.
A : “생각보다는 많은 의석 차지했지만 그렇게 좋게 평가해야 하나 싶어요. 안철수 대표는 지금까지 비판만 하셨잖아요. 어떻게 잘하겠다가 없었는데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원씨 가족이 내리고 난 직후 임건우(38)씨가 바로 승차했다. 임씨는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 야당 지지자인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더민주가 이렇게 많은 의석을 얻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보수가 정권을 잡은 지난 10년간 세상이 나아진 게 없잖아요. 보수 정당이 매번 똑같이 반성만 하고 바뀌지는 않았으니까 (야당 압승이) 가능했겠죠.”
# 사당역 → 방배동
오후 6시쯤 까치고개 인근에서 마지막 손님이 탑승했다. 자영업자인 이명진(55)씨였다. 이씨는 이번 선거 결과를 ‘반사이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어느 당이든 좋아서 찍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야당이 결과 좋았다고 하지만 어부지리, 반사이익이죠.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을 제발 이번엔 제대로 알아듣길 바랍니다.”
택시기사 “자만하는 큰아들 재산 빼앗아 둘째·셋째에게 준 것”
기사식당은 생생한 민심이 모여드는 곳이다. 택시기사와 식당 주인, 일반 손님들이 뒤섞여 여론을 형성한다. 14일 보이스택싱 운행을 마치고 기사식당 2곳에서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만난 택시기사 노순만(60)씨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큰아들(새누리당)이 말 안 듣고 자만하니까 (줬던 재산을) 빼앗아서 둘째(더불어민주당)와 셋째(국민의당)에게 힘 좀 써 보라고 보태 준 거죠.”
노씨는 “우리 국민 멋있더라. 새누리당이 반성하라고 제대로 혼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이 줄줄이 낙마한 것에 대해선 “어느 국민이 그들을 대권 주자라고 했느냐”며 “새누리당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제육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하던 택시기사 이필준(43)씨는 ‘3당 체제’로 바뀐 국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득권을 가진 양당체제이다 보니 사회가 변한 게 없어요. 국회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져 긍정적으로 봅니다.”
서울 성북동 성암기사식당 주인 김원경(48)씨는 손님들이 총선 결과에 대한 소감을 쏟아내 하루 종일 가게가 시끌벅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된통 당해서 통쾌하다, 개표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