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별' 부부 늘어나는 추세…내 행복 찾고 싶어요"
'황혼이별' 부부 늘어나는 추세…내 행복 찾고 싶어요"
# 칠순을 코앞에 둔 김모씨(68·여)는 최근 이혼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45년만에 끝이 났다. 김씨 부부는 평범했다. 간혹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이 퇴직한 후 상황은 달라졌다. 김씨는 매사 꼼꼼한 남편이 김씨의 행동 하나하나에 잔소리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반대로 김씨 남편은 김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수십년을 함께 살면서 서로가 가진 불만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싸우는 날이 잦아졌다.
김씨는 일단 아이를 봐 준다는 핑계를 대고 결혼한 자녀의 집으로 도피했다. '별거 아닌 별거'가 시작된 것이다. 몇 년 후 손자들이 크면서 김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상황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심리적 불안감도 커졌다. 이를 보다 못한 김씨 자녀들이 먼저 부모님에게 이혼을 제안했고, 결국 김씨 부부는 지난달 합의이혼 했다.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말을 줄인 것으로 일본의 한 사회현상을 뜻한다. 일본 중년 부부들이 이혼 대신 비동거를 선택하고 가족 대소사나 정해진 날에만 함께하는 것이다. 결혼 유지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이혼을 피하는 일본의 독특한 방식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년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혜정 이혼 전문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남편 은퇴 후나 자녀 결혼 후 부부 갈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혼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통 아내가 자식 집으로 가 손자를 돌보면서 최대한 마주치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최근 황혼이혼 상담건수가 크게 늘었는데 그중 일부는 이혼 대신 집을 각자 마련하고 별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혼인지속 기간이 20년 이상인 경우 이혼 건수가 3만2600건으로 10년 전인 2005년(2만3900건)에 비해 약 1만건 정도 증가했다. 30년 이상 결혼을 유지한 부부의 경우 이혼 건수는 2005년 4800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1만400건을 기록했다. 10년 전 결혼유지기간이 4년 이하인 경우 이혼이 가장 많았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국내에서도 '황혼별거와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결혼 유지 기간이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기간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기대수명과 초혼 연령으로 분석해 본 결과, 1981년 결혼 유지기간은 약 38.2년이었던 것에 비해 2014년 결혼유지기간은 47.16년으로 늘어났다.
은퇴 후 함께 지내야 하는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세 남성은 앞으로 22.65년, 여성은 27.62년 더 살 수 있다. 그만큼 부부의 시간이 늘어나 그동안 참아왔던 갈등요소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수명이 급격히 증가한 1990년대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캐나다 퀸즈대학교는 2013년 수명과 이혼율에 대해 연구한 결과 수명이 길어질수록, 여성의 경제력이 증가할수록 이혼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행복한 관계'와 '결혼에 대한 생각 변화'를 이혼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는 황혼 이혼과 별거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조창현 연구원은 "중년 세대 같은 경우 결혼은 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이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갈등이 있더라도 결혼생활을 견뎌야만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며 "결혼생활에 있어서 희생과 인내만을 강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부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조 연구원은 "비록 같이 살지 않더라도 유대감은 다시 생길 수 있다"며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앞서 부부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별거나 이혼에도 경제적인 요소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 변호사는 따로 살게 되면 발생하는 거주 비용이나 생활비 등의 문제가 생기는 만큼 황혼 별거나 이혼은 경제력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최근 황혼부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사회변화의 한 흐름으로 보고 함께 사는 다양한 부부관계를 배려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