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키 폐쇄 이후에도 인터넷 가짜 의사 '활개'
“돈 받고 자가 치유법 상담”...
안아키 폐쇄 이후에도 인터넷 가짜 의사 '활개'
“예치금(15만원)은 마지막 통화 후 돌려 받습니다. 추가금은 돌려주지 않습니다.”
“수칙을 어길 경우 예치금은 차감됩니다.”
지난 5월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안아키(약 안먹고 아이 키우기)’가 아동학대 논란 끝에 문을 닫았지만, ‘자가 치유법’을 내세운 또다른 유사 의료 행위 카페가 운영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카페는 비의료인이 운영하지만, 의료 상담에 대한 금전 거래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안아키 카페는 극단적인 자연주의 육아 인터넷 커뮤니티로, 아토피 등 피부질환을 방치하거나, 수두에 걸리면 항체가 생긴다는 이유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일부러 아이들에게 수두를 옮기기 위해 일명 ‘수두 파티’를 하는 등의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 ▲ 조선DB
26일 만성 피부염인 ‘화폐상습진’을 앓은 김영희(가명)씨는 “네이버에 개설된 ‘ㅇ’ 카페가 전문자격증도 없이 위급한 환자를 대상으로 수년째 치료 상담을 해주고 예치금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만원 상당의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ㅇ’ 카페는 지난 2011년 8월 네이버에 개설된 태열·아토피·화폐상습진 치유 카페로 피부병 환자를 대상으로 이른바 ‘자가완치법’을 알려주는 커뮤니티다. 일반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수는 5624명이다.
김 씨는 “카페 개설 초기에는 운영자가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회원들에게 ‘몇 달이고 씻지 말 것’ ‘상처 부위에 다시마액을 바르고 붕대로 감을 것’ 등을 반복할 것을 권유했다”면서 “이 카페 운영자는 최근 새 치유법을 내세우면서 식이요법과 영양제를 권하고 상처 부위를 드라이로 말릴 것을 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카페는 회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치료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돼 논란을 더하고 있다. 환자가 운영자와 전화 상담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은 총 35만원이다. 운영자는 이를 ‘예치금 15만원’ ‘기부금 10만원’ ‘추가금 10만원’으로 분류했다.
예치금은 마지막 통화 후 돌려받을 수 있으나 추가금은 회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예치금도 100% 환급되지 않는다. 운영자는 “카페 운영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예치금 5만원이 차감되고 3번 수칙을 어길 경우 예치금은 아예 돌려주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운영자가 내세운 카페 운영 수칙은 까다롭다. 가령, 환자에게 목욕을 할 때 ‘아기 욕조’를 쓰라 권했는데, 환자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운영자를 ‘쉽게 본 것(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은 것으로)’으로 간주하고 예치금 5만원을 차감한다.
또 운영자는 전화 상담을 받고자 할 경우 예치금, 추가금 지불 외에 네이버스와 같은 기부단체에 기부한 영수증을 첨부하도록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안아키 사건’ 이후 카페의 운영 방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 씨는 “안아키 사건 전에는 ‘자율 예치금 방식’으로 전화 상담을 진행해왔으나, 안아키 사건 이후 기부금 항목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 중에 치료가 잘 안되거나 운영자로부터 욕을 듣거나 기타 이유로 예치금을 포기하고 카페를 그냥 떠난 회원들도 있고, 당장 치료가 급하니 충성하면서 통화하는 회원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카페 내에는 운영자의 전화번호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운영자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는 피부질환 부위를 사진 찍어 올리고 예치금을 입금하는 등 ‘통화 신청’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었다.
전문가들은 안아키 사건처럼 아동 학대 논란을 일으킬 만 피해 사례가 보이지 않더라도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경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아토피나 화폐상습진등은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는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해야하므로, 사진만 보고 진단하고 환부에 드라이질을 하는 등의 치유법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부질환은 잘못 치료하면 흉터가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의사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치료해야 하는데 묘방(妙方)을 인터넷으로 가르쳐 준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 ▲ 네이버 태열·아토피·화폐상습진 치유 ‘ㅇ’ 카페 내 공지글 / 제보자 제공
보건복지부 정책 담당자는 의료법상 문제 소지가 있으나,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오성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사무관은 “비의료인이 의료적 진단, 진찰, 처방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위법 여부는 사실 관계를 좀 더 파악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판례를 보면, 의료행위의 적법 여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위해가 생길 우려’”라며 “해당 행위가 ‘보건 위생 상 위해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지’, ‘그 위해가 지속적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5월 11일 보건복지부는 안아키 카페를 개설한 한의사 김 모씨를 의료법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으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안아키 사건 등이 잇따르자 대한의사협회는 “건강정보 안내 및 홍보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해 국민건강에 역행하는 곳들을 즉각 폐쇄 조치하고, 위법사항에 대해 형사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