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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난 여걸들

여행가/허기성 2005. 8. 25. 22:03
‘물만난 여걸들’ 회사 보배로


[한겨레] 한국에서 성공한 외국계 기업에는 ‘여성의 힘’이 넘쳐난다. 외국계 기업들은 일찌기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고, 여성들 또한 그 곳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능력을 발휘한 덕분이다. 글로벌 경쟁에 나선 우리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70년대 적극 고용 ‘실력+노력’ 발휘 뒷받침
배려 대상 아닌 인재로…
1997년 말 프랑스계 가정용품 회사 테팔이 한국 지사를 세운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았을 때,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 ‘사업을 접자’는 얘기마저 흘러나왔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테팔코리아는 전세계 테팔 계열사 중 최고의 실적 증가를 자랑하는 ‘짱짱한’ 회사로 변신했다.

파리 본사는 이 놀라운 성공의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결론은 직원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는 것이었다.

“뒤에 만난 본사 간부가 ‘한국의 여성 인력은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 여성들의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이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극찬해 놀랐습니다.” 당시 마케팅 차장이었던 팽경인(42) 이사는 말했다.

테팔코리아는 지금도 여성을 적극적으로 채용해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다’는 얘기마저 듣고 있다.

외국계 기업 ‘여성은 나의 힘’=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이 여성을 외면하던 70~80년부터 여성인력이라는 ‘미개발 자원’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다. 한국 대기업의 여성 고용률이 10%대인 반면, 주요 외국계 기업들은 40~50%에 육박한다.
제프리 존스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덜 개발된 자원이 여성’ 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외국계 금융 기업에는 여성 간부들이 많다. 씨티은행,
아메리카은행 등은 70년대부터 직원의 60~70%를 여성으로 뽑아 키워왔기 때문이다. 이성남(57) 금융통화위원, 우리은행 구안숙(50) 부행장 모두 외국계 은행 출신이다. 국내 여성 외환딜러 1호인 김상경(56) 국제금융연수원 원장은 “여성들의 우수한 외국어 구사 능력 뿐만 아니라 청렴함과 섬세함 등이 금융 업종에 맞았던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80년대만 해도 외국계 기업의 위상이 높지 않아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꺼렸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필립스코리아의 유재순(44) 상무는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여성을 뽑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에도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며 “권력중심적인 국내 기업문화에서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아 1년 반만에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홍보 분야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국내 기업들이 인맥 중심의 ‘전통적’인 홍보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부터 외국계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전문성을 갖춘 여성 홍보 인력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계 호텔 출신인
월마트코리아박찬희(48) 상무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 기업이 찾고 있던 유연하고 열려 있는 인재는 바로 여성이었고, 여성들은 이에 성과로 보답했다”며 “외국계 기업의 성공은 여성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홍일점 세대의 노력=외국계 기업의 ‘실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기업문화는 여성들에게 기회였다. 외국어 능력과 더불어 전문성을 기르면 외국 연수 등 자기계발의 기회도 국내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다. 에이아이지 상해보험의 최초 여성 상무인 박옥선(59)씨는 특화된 손해보험 사정업무에 30년동안 파고들어 성공했다. 그는 “
손해사정인 자격증을 따고 남들보다 몇배를 일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최초’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1세대 외국계 기업의 여성들에게도 인사·승진 차별은 엄존했다.

자동차업계 첫 여성 사장인
볼보코리아 이향림(44)씨와 듀폰코리아의 첫 여성이사인 김숙경(44)씨는 비서로 힘겹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가로막았고, 일부 남성들의 질시도 만만치 않았다. 한 외국계 금융기관의 여성 간부는 “80년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2년정도 늦게 승진하는 게 당연시됐고, 이를 깨면 남성들의 항의가 잇따랐다”고 기억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이비엠의 소수자 우대 정책은 여성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유색인종, 장애인 등까지 끌어안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모토로라와 필립스, 존슨앤존슨 등 상당수 기업들은 아예 구체적인 ‘여성 임원 목표치’까지 설정해서, 전 세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에게 한국의 여성들은 ‘배려’의 대상이 아닌, ‘모셔야’ 할 존재다.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한 주한 외교관은 “한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괜찮은 여성 임원을 소개해달라고 종종 요청한다”며 “우수 여성들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는 이제 한국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