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없는 그녀, 세상 부러움을 사다 |
[조선일보 전병근 기자] 날 때부터 두 팔이 없어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온 예술가가 올 한 해를 빛낸 ‘세계의 여성’으로 꼽혔다. 오스트리아 빈의 월드어워드 운영위는 올해 ‘세계 여성 상’(Women’s World Awards) ‘성취’ 부문 수상자로 영국의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앨리슨 래퍼(Lapper·40)를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월드어워드는 2000년 오스트리아 작가인 게오르그 킨델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제정한 상으로, 작년부터는 여성을 대상으로 12개 부문에 걸쳐 시상해 왔다. 래퍼는 선천성 질병인 단지증(短肢症) 때문에 팔 없는 아기로 태어났다. 다리도 허벅지와 발이 붙어 있었다. 생후 넉 달 만에 장애인시설에 버려진 그는 이곳에서 19년을 보내야 했다. “정신마저 불구일 수는 없었다”는 그는 미술에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1994년 브라이튼 대학(미술 전공)을 우등 졸업하고부터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 상태와 미(美)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끝없는 영감의 원천은 자신처럼 팔이 없는 고대 희랍 미인상(像), 밀로의 비너스였다. 22세 때 첫 결혼에 실패했던 그는 그 후 미혼모가 되어 아기를 낳았다. 당시 의사는 기형아 출산을 걱정해 말렸지만 아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장애인 엄마’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모자(母子) 사진전까지 열었다. 임신 당시 그녀의 모습은 지금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높이 3.6m 조각상으로 남아 있다. 임신 9개월 된 그녀를 모델로 한 마크 퀸의 작품 ‘임신한 앨리슨 래퍼’가 공모전을 통해 지난 9월 이곳에 설치된 것. 그는 여권 신장을 위한 사회 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국제 앰네스티가 28일 런던에서 개최한 ‘여성에 대한 폭력 중단’ 전시회에도 작품을 낸 그는 “전 남편의 손에 고통을 당해봤기 때문에 가정 폭력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했다. 강철 같은 의지와 지극한 예술혼은 일찍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스페인은 ‘올해의 여성’상을, 영국 왕실은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을 각각 수여했다. 지난 9월 펴낸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은 한국어를 비롯, 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어 등으로 번역됐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나 같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삶이 어떤 것인지 알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우리의 어려움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