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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삶"이야기..

어머니 눈물이 영웅키웟다

여행가/허기성 2006. 2. 7. 22:01
어머니 눈물이 영웅을 키웠다

[조선일보 강호철, 안용현 기자]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일곱 살 소년이 있었다.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올해 30세가 된 소년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린다.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게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한다. 6일 미프로풋볼리그(NFL)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볼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과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조그만 동양 여자가 와서 자기가 어머니라더군요.”

워드가 일곱 살 때 일이었다. 워드의 어머니는 한국인 김영희씨(55). 김씨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일하다 동두천 미2사단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흑인 병사 워드 시니어와 결혼했다.



1976년 서울에서 워드를 낳았고 다음해 미국으로 같이 건너갔다. 하지만 워드는 곧 어머니와 헤어졌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김씨는 영어를 못하고 경제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양육권마저 박탈당했다.

김씨는 아들과 같이 살겠다는 일념으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미국에 남았다.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맡으며 돈을 모은 뒤, ‘시부모’를 설득해 워드를 자신이 머무르는 애틀랜타 인근의 포레스트 파크에 데려왔다. 김씨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 16시간씩 세 가지 일을 했다.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다. 워드가 깨기 전 밥을 차려놓고 출근한 뒤, 다시 워드가 학교를 끝내고 들어오기 전에 집에 잠깐 들러 저녁을 차려놓고 다른 일터로 나가는 식이었다.

워드는 “방과 후 집에 오면 랩에 씌워진 밥이 어김없이 식탁에 있었다. 전자레인지로 데워먹었는데 계속 먹다 보니 입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드는 어머니가 싫었다.“피부색이 다른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친구들이 나를 혼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싫었어요.”

김씨는 워드를 한국식으로 키웠다. 집에 들어오면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으라고 했고, 항상 한국 음식을 상에 차려놨다. 워드는 “한국, 한국 문화에 거부감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어느 날 아침, 작은 사건이 어린 워드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워드는 평상시처럼 어머니가 태워주는 차로 등교하면서 친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깊숙이 몸을 숨겼다. 하지만 급히 차문을 열고 나가면서 고개를 돌리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게 됐다.

워드는 그때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다니…그래 아무리 놀려도 나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언제나 또래 아이들보다 비싼 옷을 사주고 원하는 것을 다 해주던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한 번도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김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섭섭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들이 내 사랑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후 워드의 인생엔 오로지 어머니만 존재했다.

워드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식축구를 처음 접했다. 포레스트파크 고교시절 워드는 미식축구에서 패싱과 러싱, 리시빙 등 모든 공격 포지션을 다 소화했다. 야구에서도 재능을 보여 1번 타자로 타율 4할, 도루 35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40야드(36.6m)를 4.47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순발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워드를 운동선수로만 키우지 않았다. 고교 졸업 무렵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계약금 2만5000달러 제안을 받은 워드에게 “학업을 계속해야 한다”며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워드는 미식축구로 이름난 학교의 입학 제의를 뿌리치고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조지아대학을 택했다. 어머니를 홀로 두기 싫어서였다.

대학 때 워드가 이름을 날리자 어느 날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왔다. 워드는 “내게는 어머니만 있을 뿐”이라며 아버지를 만나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워드는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 미식축구에서 그는 만능 공격수였다. 대학 마지막 경기에서 쿼터백으로 출전했으며 패싱·리시빙·러싱 공격 세 부문에서 모두 1000야드를 돌파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팀 승리를 위해 와이드리시버로 경기를 마쳤다. 엄청난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로부터 배운 ‘희생정신’이 그를 팀을 위해 헌신하게 했다.

워드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 1998년 스틸러스로부터 뒤늦게 3순위로 지명됐다. 여러 포지션을 두루 소화하는 통에 스카우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드는 실망하지 않았다.

“제 선수생활은 어머니의 인생과 비슷해요. 처음에는 맘대로 안 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엔 잘 풀려요.”

1m83의 크지 않은 키였지만 와이드리시버에 도전한 그는 2년 만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동료들을 위해 상대와의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벤치에선 열성적으로 팀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번 수퍼볼에서도 벤치에서 동료들을 채찍질하는 워드의 모습이 TV 카메라를 통해 자주 비쳤다. 동료들은 “워드는 절대 웃음을 잃지 않는 선수”라며 팀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는다.

“저는 어머니에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정직과 신뢰, 희생정신과 성실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웠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어머니가 몸소 실천하신 그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MVP로 뽑히고도 공을 작전을 세워준 코치와 동료에게 돌렸다. 어머니 김씨는 한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하는 얘기는 한 가지다. 겸손하라(Be Humble)고 한다”고 했다.

“지난해 계약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그냥 전화기를 대고 울기만 하셨어요. 이번 수퍼볼에는 가슴이 떨려 경기를 직접 못보겠다고 오지 않으시겠다더군요.”

워드는 프로에 입단하면서 어머니에게 새 집과 벤츠 승용차를 선물했다. 올스타에도 4차례나 출전했고, 지난해엔 스틸러스 사상 최고 연봉 계약 소식을 전했다. 워드는 수퍼볼을 앞두고 “나와 어머니에게 수퍼볼 우승은 매우 특별한 것이다. 한국을 위해서도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우승과 MVP 수상이라는 영예로 현실이 됐다. 워드는 어머니와 올 4월 한국에 온다. “말로만 들었던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싶어서” 마련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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