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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행복의창

상생(相生)과 공존(共存)

여행가/허기성 2006. 7. 8. 22:08
상생(相生)과 공존(共存)


내가 네 밥그릇을 빼앗았구나.
먹고 사는 건 너나 나나 다 똑 같으니 너를 다시 화단으로 데려다 주마.


가을이 기웃거리는 화단에서는 밤새 귀뚜라미들이 울어 대었다.
창 밑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몇 번이나 돌아 누우며 잠을 설치는 건
가을에 잠시  느낄 수 있는 잔재미가 아닐까.

여름 내 줄기를 뻗으며 화단을 덮은 호박넝쿨은 올해도 변변한 열매하나 맺지 못한 체
건조하게 말라갔다. 서남간으로 지어진 집이라 그런 것일까, 화단에 해가 뻗치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열매 하나 제대로  맺지 못하는 화단. 사람으로 치면 석녀였다.
열매가 맺어지는 조건인 가장 필수 요건인 햇빛이 부족한 화단은 고추든 호박이든
그 무엇을 심어도 무성하게 뻗는 잎과는 달리 열매를 맺을 줄 몰랐다.

“동그란 호박 하나 제대로 달리지 않는데 그건 심어 뭐해? 나중에 덩굴 거두는 것만 힘들지.”

그래도 서울 한 복판에 이만한 화단이 또 있을까 싶어 빈 땅으로 놀리기 아까워 호박 모종을 심는 내게 아래층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호박잎만 따 먹어도 그게 어디겠어요. 제가 모종 심어 놓을테니 할머니도 호박잎 따 드세요.”

“과연 몇 잎이나 열릴까?”

세 개의 떡잎 모종은 기세 좋게 가지를 뻗어 가더니 널찍한 잎들을 보기좋게 내 놓았다. 여름 내 호박잎은 우리 가족 밥상에 올라 빠지지 않는 자연 음식이 되곤 했다. 더러 한번은 한번씩 호박 줄기를 훑어 친구에게 선물도 하였다.  애시당초 열매를 볼 생각은 하지도 않은 만큼 호박은 아기 주먹만한 애호박하나만을 남기고 가을을 맞았다.   

가지가 세어지고 잎들도 서서히 세어 갔다.
줄기를 만지면 웬지 나뭇가지를 만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젠 호박넝쿨은 거두어야겠어. 여름 내 호박잎 정말 잘 따먹었지 뭐야.”
호박나물을 제일 좋아하는 남편에게 한 몫 맡긴다.
“응, 지금은 말고 시간 나면......”

동이 트면  모닝커피 한잔 타 들고 베란다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아침을 맞는다.
식전에 커피 한잔하며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보다가 가을이 서성대는 화단을 보았다.
호박넝쿨이 이젠 한번만 흝어 내면 더 이상 먹을 수 없이 세어진 것 같았다.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화단으로 내려갔다.
‘줄기를 흝어 버리기 전 한번만 더 따 먹어야지.....’
제 역할을 다하고 세어지는 줄기엔 그래도 부드러운 새 잎이 돋아 나 있었다.
내 눈과 손은 여리고 순한 잎들을 열심히 추적하고 골랐다.
‘그래도 한바구니나 땄네...걷어 내지 말고 더 두어 볼까, 호박줄기?’

인터넷에 접속해서 음악을 틀어 놓고 나는 열심히 호박잎을 다듬었다.
그런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말이다. 보여야 할 것은 어떻게든 반드시 눈에 뜨인다는 사실.
밥 한숟가락에  숨어 있는 잡티가 사람 입속에 들어가기 전에 용케도 눈에 띄여 집어내게 되는 현상처럼.

호박잎은 다듬다 보니 잎 가장자리로 눈이 간다. 이게 뭐지?
가만 보니 호박잎 색과 같은 색을 한 푸른 애벌레가 잎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벌레가 너무 징그러운 나는 잠시 놀랜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벌레가 잎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것을 눈여겨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벌레의 입이 호박잎의 가장자리에 꽉 물려 있는 것이었다. 벌레는 먹이에서 입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벌레가 파먹어 들어간 부분은 둥글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너는 아침식사 중이었구나. 밤새 내린 이슬을 맞으며 달콤한 호박잎으로 아주 맛있는 아침식사 중이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너는 밥그릇째 내 손에 꺾여  바구니에 담겨져 우리집까지 오게 된 것이고....여차하면 너는 내 손에 의해  맛있는 아침식사 도중 호박줄기 껍질째 쓰레기 봉투 속으로 버려질 될 뻔 했구나....내가 네 밥그릇을 빼앗았구나. 먹고 사는 건 너나 나나 다 같은 업(業)일테니 너를 이 이파리째 화단으로 다시 데려다 주마. 거기서 다시 생존에 부딪히고 살거라.’

나는 벌레의 입이 이파리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들어 다시 화단에 놓아 주고 올라 왔다. 벌레를 유심히 들여다 본 건 정말이지 처음이다.  벌레를 통해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섭리를 새삼 깨달았으니 오늘의 스승은 푸른 애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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