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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행복의 조건

여행가/허기성 2006. 7. 12. 17:33

 

지금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행복 조건

 

  오늘(6.19)은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후 5시 40분에 사무실을 나서 서면(西面)의 모임 장소로 갔다. 지하철로 꼭 20분 거리, 내려서 도보로 십 여분 소요됨을 계산하고 내 딴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갔는데도 약속시간(6시30분)보다 5분이 늦었고, 거기다 열두 명이나 일찍들 와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했다.

「어, 내가 늦었네, 미안. 다들 반갑다」
「총무가 늦게 오면 우짜노?」
「어지간히 시간 맞춰 나섰는데 이래 됐네. 미안. 그새 다들 편안했재?」

  먼저 온 친구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나누고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달에 한번씩 우리는 모임을 갖는다. 경주(실은 50키로 떨어진)가 고향이면서 부산에 터전을 잡은 죽마고우들의 모임이다. 물론 여자 친구들도 포함해서다.
  지난달에도 우리는 얼굴을 보았었다. <순이>의 막내아들 결혼식이 있어서였다. 이리저리 시집 장가보내고 부부들만 남은 친구네들도 있지만 아직도 안 가고, 못 보낸 자식들을 둔 집도 대여섯 가구는 되는 것 같다. 올해 서른일곱 된 딸을 둔 <분순>이는 금년초에 모름지기 속앓이를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짚신도 다 짝이 있다 더지 않더나. 갈 때 되면 다 가게 될터이께 걱정 말아라. 아마 금년부터 인연이 동하니 못돼도 내년엔 꼭 갈꺼다. 기다려 봐라」
  저네들이 <도사>라고 호칭 붙여준 내가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다.
  사실 따지고 들면 전혀 결혼과 인연없는 팔자도 더러는 있으니 말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독신으로 살 팔자도 없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분순>이 딸내미는 그런 팔자는 아니니 걱정을 말라고 한 것이었다.

「니는 손자 소식 있나?」
<순현>이가 내게 묻는다.
「아직…」
「결혼한지 제법 됐잖아? 생산공장이 부실하나…?」
「흐흐, 그래 말야, 요즘 불경기라 공장이 잘 안 돌아가는 모양이지.」

  속은 뜨끔하면서도 시침을 뗄 수밖에. 왜 안 그렇겠는가. 이 나이에 손주들 얘기 꺼내놓고 희희낙락 재미있어 하는 걸 보면.

  특히 여자 친구들이
「손주 안 보고 싶나?」
  라고 자랑 반 놀림 반으로 물으려들면
「만들어 줘야 안아보든지 업어보든지 하지. 요즘 젊은애들 자기들 나름의 계획들이 다 있으니 우리 좋다고 맘대로 낳아 줘야 말이지.」
  얼렁뚱땅 얼버무리지만 속은 아닌게 아니라 여간 거북해지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우리 아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줄 몰라서이다. 소문이야 날 때 나더라도 일부러 「우리 아들 이렇네!」하고 고해 바칠 일은 아니어서 입을 다무는 터였다.
  문제가 없다 한들 우리는 외로운 집안이니 아이나 많이 낳으랬다가 어째 키울거냐며 타박을 하는 통에 꺼낸 말을 도로 주워담아 넣은 기억도 멀지 않은 터수이긴 하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로 보아 자식 하나 밑에 들어가는 돈이 여간해선 감당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가히 국가적 재난을 부를 현상이다.

  듣건대 하나같이 손주들은 다 예쁜 모양이었다. 여자 친구들은 외손주들 보아주기에 질린다면서도 얘기할 때만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고 행복한 느낌이 가득해 보였다.

<병익>이는 지난 4월 일본여행 때의 에피소드를 꺼내 재탕 삼탕하며 그래도 웃지 않고는 못견디겠는 모양으로 왁자지껄, 깔깔깔, 후후후~~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인 <순이>가 담아온 Y담이다. 오늘 그걸 <병익>이가 리바이벌 하는 것이었다.

 

『칠푼 총각이 팔푼이 처녀를 색시로 맞아 들였겠다.
  첫날밤에 이 칠푼 총각 어디서 들은 얘기는 있었던 모양으로 팔푼 각시에게 따지듯 묻는다.

「니 숫처녀 맞나?」

  팔푼 각시 곰곰 생각터니 며칠 전 이장님이 하시던 말이 생각 났겄다. 속으로 옳거니! 하며 당당하게 신랑에게 대답한다.

「이장님이 그러는데 내 숫처녀 맞다 카대요」

칠푼 신랑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번지며 맞장구 치는 말,

「이장님이 맞다 카면 맞다!」』

 

  다시 한번 방안이 뒤집어지는 웃음소리로 난리법석을 피운다.
  뒤늦게 들어오는 <태동>이가 「도대체 무슨 재밌는 얘긴데 배창지가 째지도록 웃어샀노?」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병익>이가 한술 더 뜬다.

「나도 뒤늦게 그런 이장이나 한번 해묵어 볼라꼬 이번 지방선거에 우리 동네 이장에 출마했다 아이가. 그런데 세 표차로 떨어졌뿌렀어..」

  ‘이장’이 언급되는 이야기라면 <태동>이도 어지간히 내용을 꿰고 있기로 장단 맞추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싶었던지 <병익>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저런 원통할 데가!」
  라고 더없이 억울해 하는 양이 영판 신조 이장브러더스다.

「이번엔 내가 이바구 하나 하꾸마」

  이 판에 내가 잠자코 있다면 예의가 아니지. Y담이라면 내게도 일가견은 있으니까. 며칠 전에 아무개 블로그에 올라온 야그를 고스란히 표절하고 각색하여 재방송하는 것이다. 컴맹인 그들이 알턱이 없을 야그였다.

 

『한 사원이 부장님에게 결제를 받다가 질문을 했다.

"부장님! 머리가 아파 그런데 혹시 두통 약 가진 거 있으세요?"
"아니~ 없어!
하지만 두통이 있을 때 내가 하는 좋은 처방이 있지!
효과가 좋으니 한번 해보라구! 내 마누라의 가슴 사이에 머리를 넣고 좌우로 흔들면 두통이 눈 씻은 듯 사라진다 말이지..."

결제 후 사원이 잠시 외출을 하고 오겠다고 하더니 한 두어 시간 후 돌아왔다.
부장님에게 다가와서 하는 말

"부장님! 신기하게도 정말 두통이 사라졌어요!
 근데 부장님 정말 좋은 아파트에 사시대요." 』

 

  가갈갈, 호호홋, 우하하하~

  한바탕의 웃음으로 시름이며 근심이 깡그리 날아가 버렸을 터였다.

20060203000030_00[1].jpg

 

  슬슬 늦은 친구들도 연이어 모여들었다. 
  경주로 밭농사 지으러갔던 <선도>도 경주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며 숨길을 고르며 들어섰고, 부산서 경주로 다시 귀향한 <헌기>도 새카맣게 탄 얼굴로 차례로 나타났다. 세어보니 모두 열 여덟 명이다. 올 사람은 다 모인 것 같았다. 창원에서 관세사무소를 열고 있는 <주필>이는 미리 불참을 통고해온 터여서 이미 숫자에서 빠졌었고, <석원>이는 와이프(순이)가 참석하는 날은 늘 불참을 하는 게 관례였으니 빠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해야겠다, 동기동창이면서 부부가 된 사례가 아마도 우리 졸업생에겐 단 한 커플이 아닌가 싶다. 좋은 점도 있는가 하면 어떨 땐 불편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영식>이만 오면 되는데 이번에도 그는 빠지는 거로 심증이 굳혀졌다.

<영순>이가 입을 씰룩이며 <영식>이를 성토한다.

「자기 타먹을 거 다 타먹었다고 안나오면 어떡해, 꼬롬하구로.(꽁하다, 속이 좁다, 언짢아하다, 얍삽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경상도 사투리)」

<영숙>이가 내게 묻는다.

「영식이 밀린 회비가 얼마고?」
「이번 꺼 포함해서 삼십삼만원」
「그라믄 영식이는 앞으로 안나오겠다」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뇌까렸지만 누구나 다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딴은 밀린 회비 몫돈 부담이 되어서도 쉽게 나올 수 없을 거라는 추측도 일부는 해댔다.
  일 년이 넘게 모임에 그는 빠지고 있었다. 들리는 소식에는 재혼한 젊은 와이프 손에 꼭 잡혀 사느라 운신의 폭이 좁다고 하지만 사업상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골프 모임에는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동창모임은 하찮게 보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분개해 하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역시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이해관계의 득실을 따져보고 처신한다는게 영 못마땅하다는 여론인 셈이다. 우정을 그런 식으로 대접한다면 그건 참된 죽마고우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어릴적부터의 친구라고 해도 성격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회비를 걷었고, 한 켠에선 옹기종기 쑥덕쑥덕 얘기의 꽃을 피우고, 한 켠에선 소줏잔을 부딪히며 부어라 마셔라 하고, 종업원은 저녁 식사를 차리느라 분주히 왔다갔다하며 수선을 피워댔다. 모임이란 늘상 그랬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다시 또 꺼내 놓아도 처음 듣는양 즐거웠고, 쓰디쓴 소줏잔도 설탕인양 달콤하게 마시며 흥이 오르는 걸 보면 우정의 모임이란 마냥 흐뭇하고 낭만이 넘쳐나는 일일시 분명했다.

  다들 그랬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 것이며, 죽을 때 갖고 갈 것이 뭐가 있겠냐, 죽는 그 날까지 꼬치친구들 우정이나 변치 말자고 얼마나 비장하게 맹세를 하는가. 고대광실에서 살았으면 어쩔 거며, 장관 총리 했던들 뭐가 부러우냐 말이지. 죽음 앞에서는 아무 가치 없는 것들.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자식대도 본받도록 각자 성실히 서로를 위해주고 함께 발맞춰 세월을 이겨나가세, 라고.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새삼스런 의문에 숙연한 자세가 된다. 돌아보면 후회요 회한의 한 평생일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의 살아온 이력만 보더라도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음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여된 생명이라 함부로 하지 못해서 그렇지 지금도 삶에는 솔직히 아무 미련도 아쉬움도 내게는 없다. 그러니 죽음 따위로야 나를 위협할 생각을 한다면 그건 많이 어리석은 일이 되리라.

  언젠가 우리 둘만 있을 때,
「아아 정말이지 사는 것이 지겹다!」고 내가 한탄조로 토로하자 <영숙>이는 냉큼 되받아 질책하는 투로 그런 나를 가시나무로 찌르듯 따끔하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야가 뭐라카노? 자식들 남부럽잖게 잘 키워났겠다, 부부가 해로해 오며 건강하면 그게 행복이지 뭐가 어떻다고? 호강에 받혀 요강에 똥싸고 자빠진 소리하고 있네. 씰데없는 소리 마라. 재물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 인자 아들이 돈 잘 벌 거 아이가. 내 같으면 귓밥만 만지고 있어도 되겠구만… 」

  <영숙>이는 얼굴이 꼭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라고 할 정도로 후덕하고 편안하며 잘 생긴 동기동창 여자 친구다. 수영으로 단련된 몸매도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로 보기에는 놀랄 정도로 쭉 빠져 날씬한 타입이고. 술을 마실 줄 모르면서도 모임에서는 빠져서 안될 분위기 메이커이자,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도 악명(?)이 높은, 미워할래야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우정의 보배같은 존재다. <영숙>이가 끼어 들면 음울한 분위기도 활기차게 살아나며, 긴장하던 분위기도 아연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거침없이 웃어젖히는 그의 천성 때문이기도 하고 질질 짜거나 찡그리는 모습을 애시당초 못보겠다는 작심이 있어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그에게도 남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과 근심거리가 없지 않음을 나는 짐작하기에 그의 그런 쾌활한 처신이 부러울 따름인 것이다. 얼굴과 표정만 보아서는 전혀 집안에 그런 우환이 있는 줄을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십대의 한 때를 특수학교에서 봉직하며 보낸 세월이 있었으므로 장애를 가진 자식을 거두기가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익히 짐작할 수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온 집안이 암울한 지옥으로 변하는 경우를 여럿 나는 지켜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행복할 건덕지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삶이 마냥 환희에 차고 만족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사회적 지위며 남에게 뽐낼 만한 돈이며 없는 것 없이 사는 것 같은데도 불행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황폐하게 지옥의 삶을 사는 사람도 살펴보면 엄청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느냐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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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인가?
  돈 많은 사람이 더욱 불행하다는 사실을 뒤집을 진실을 아직은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돈이 없으면 누구든 궁핍을 감내해야 하며 궁핍이라는 사실 자체가 행복할 수 없음은 누구나 수긍할 터이다. 그렇다고 하여 가난한 사람이 불행하다고는 단정할 수가 없다. 작년 어느 때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아주 똑똑한 분께서 분배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인도나 방글라데시 같은)의 국민을 예로 들어 가장 모범적으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나라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실일지언정 죽었다가 깨어났을 때 제발 나만은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정직한 나의 고백이다. 하긴 행복을 연구하는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보장이 잘 된 덴마크 같은 나라의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빈국인 인도나 티벳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세계 제 1위인 나라가 자살률로도 가장 높은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회적 출세를 하면 행복할까? 출세는 또 어떤 것인가?
  대통령이 되면 행복할까. 감옥가는 사람을 행복하지 않다고 보면 그 말도 함부로 주장할 건 아니다 싶다.
  총리가 되고 장관도 해보고, 도지사도 해보면 행복한가. 판, 검사 의사가 되면 행복이 보장되는지.
  누가 사례를 들어 증명해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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