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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욕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낮은 굽을 신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새러 제시카 파커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신는 ‘마놀로 블라닉’ 따위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선 정작 멋진 정장 수트를 차려입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운동화를 구두로 갈아신는 풍경을 만난다. 그만큼 사람들은 걷고 또 걷는다. 걷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뉴요커들이 걷는데 좋은 곳으로 꼽는 장소 중 하나가 허드슨강변이다. 지난달 8일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변 남북 10㎞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봤다.
개인의 재산과 이익을 철저히 보호하고 극대화하는 게 특징인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에서도 허드슨강은 철저히 공공재로 대접받고 있다. 공공재인 강변 경관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시민단체와 뉴욕시·주 정부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강변을 따라 꾸며져 있는 ‘리버사이드 파크’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맨해튼 남단 12만2천평의 매립지에 건설된 새도시 ‘배터리 파크 시티’에 이른다. 허드슨강은 본래 뉴욕을 세계적 항구도시로 우뚝 세우며 풍요를 일군 경제의 대동맥이었으나 60년대 들어 기능이 쇠퇴했다. 뉴저지항 등에 물류기능이 옮겨지면서 부두·창고 등은 황폐해졌다. 이에 부두조합 소유의 매립지를 세계금융센터를 비롯한 사무실과 9천가구의 주거지로 개발한 게 바로 ‘배터리 파크 시티’다.
그러나 뉴욕시 도시계획국은 단지 조성 전부터 ‘배터리 파크 시티 공사’(BPCA)를 구성해(1962년) 이 사업이 단순한 개발에 그치지 않도록 했다. 전체 면적의 1/3을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을 위한 공공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강변을 따라 수변 공원이 펼쳐지고 그 뒤에 아파트를 배치하도록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가장 비싼 고급 아파트들이 몰려있는 곳이지만 자전거를 탄 낯선 동양인이 출입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허드슨강변은 배터리 파크 시티에 사는 사람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배터리 파크 시티에서 자전거를 타고 30분쯤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비슷한 사례인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를 만날 수 있다. 항만과 철도 부지였던 곳이 3만3천평 공원으로 변한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는 미국의 이름난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가 ‘제공’한 공원이다.
나무 데크가 강변을 따라 깔려있고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맨해튼 남북을 잇는 간선도로인 밀러 하이웨이 뒤편으로 트럼프가 지은 주상복합건물이 돋아나 있다. 강변 풀숲 곳곳에 시민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햇볕을 쬐거나 기타를 뜯고 있었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구슬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각자 평화럽게 저마다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1985년 트럼프는 59~72번가에 이르는 6만3656평의 땅을 1억달러에 사들여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 건물(152층)을 포함한 ‘텔레비전 시티’ 계획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규모의 개발에 대해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듬해 트럼프는 다시 60~70층의 7600가구가 입주하는 건물과 쇼핑몰 구상안을 내놓았다. 또한 공무원들에게도 평판이 좋고 명성이 높은 알렉스 쿠퍼라는 건축가를 끌어들여 개발계획안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발계획안이 수년째 궁지에 몰리는 가운데 자금 위기에 처한 트럼프를 구해낸 건 역설적으로 시민단체였다. 1991년 뮤니시펄 아트 소사이어티(MAS), 리저널 플랜 어소시에이션(RPA) 등 7개 시민단체들은 일반 시민 이용 중심의 공공계획을 갖고 트럼프 개발계획에 공격적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리버사이드 사우스 계획 협회(RSPC)라는 조직을 만들어 공공공간 확보를 위해 트럼프와 협상을 벌인 결과 절반에 이르는 면적을 공원용지로 얻어내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결국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는 시민단체와 트럼프와 뉴욕시의 공동 작품인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기호 교수는 “한강변의 아파트 재건축을 앞둔 우리나라 상황에선 뉴욕의 지혜를 배워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건축 구상안을 보면, 판상형 아파트는 시야를 가리니까 탑상형 아파트를 높이 지어 개방감을 주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강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판상형이나 탑상형이냐의 논쟁이 아니라, 강변을 개발하되 시민들에게 공공공간을 되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열려있는 디자인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낮은 굽을 신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새러 제시카 파커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신는 ‘마놀로 블라닉’ 따위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선 정작 멋진 정장 수트를 차려입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운동화를 구두로 갈아신는 풍경을 만난다. 그만큼 사람들은 걷고 또 걷는다. 걷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뉴요커들이 걷는데 좋은 곳으로 꼽는 장소 중 하나가 허드슨강변이다. 지난달 8일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변 남북 10㎞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봤다.
개인의 재산과 이익을 철저히 보호하고 극대화하는 게 특징인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에서도 허드슨강은 철저히 공공재로 대접받고 있다. 공공재인 강변 경관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시민단체와 뉴욕시·주 정부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강변을 따라 꾸며져 있는 ‘리버사이드 파크’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맨해튼 남단 12만2천평의 매립지에 건설된 새도시 ‘배터리 파크 시티’에 이른다. 허드슨강은 본래 뉴욕을 세계적 항구도시로 우뚝 세우며 풍요를 일군 경제의 대동맥이었으나 60년대 들어 기능이 쇠퇴했다. 뉴저지항 등에 물류기능이 옮겨지면서 부두·창고 등은 황폐해졌다. 이에 부두조합 소유의 매립지를 세계금융센터를 비롯한 사무실과 9천가구의 주거지로 개발한 게 바로 ‘배터리 파크 시티’다.
그러나 뉴욕시 도시계획국은 단지 조성 전부터 ‘배터리 파크 시티 공사’(BPCA)를 구성해(1962년) 이 사업이 단순한 개발에 그치지 않도록 했다. 전체 면적의 1/3을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을 위한 공공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강변을 따라 수변 공원이 펼쳐지고 그 뒤에 아파트를 배치하도록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가장 비싼 고급 아파트들이 몰려있는 곳이지만 자전거를 탄 낯선 동양인이 출입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허드슨강변은 배터리 파크 시티에 사는 사람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배터리 파크 시티에서 자전거를 타고 30분쯤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비슷한 사례인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를 만날 수 있다. 항만과 철도 부지였던 곳이 3만3천평 공원으로 변한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는 미국의 이름난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가 ‘제공’한 공원이다.
나무 데크가 강변을 따라 깔려있고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맨해튼 남북을 잇는 간선도로인 밀러 하이웨이 뒤편으로 트럼프가 지은 주상복합건물이 돋아나 있다. 강변 풀숲 곳곳에 시민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햇볕을 쬐거나 기타를 뜯고 있었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구슬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각자 평화럽게 저마다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1985년 트럼프는 59~72번가에 이르는 6만3656평의 땅을 1억달러에 사들여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 건물(152층)을 포함한 ‘텔레비전 시티’ 계획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규모의 개발에 대해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듬해 트럼프는 다시 60~70층의 7600가구가 입주하는 건물과 쇼핑몰 구상안을 내놓았다. 또한 공무원들에게도 평판이 좋고 명성이 높은 알렉스 쿠퍼라는 건축가를 끌어들여 개발계획안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발계획안이 수년째 궁지에 몰리는 가운데 자금 위기에 처한 트럼프를 구해낸 건 역설적으로 시민단체였다. 1991년 뮤니시펄 아트 소사이어티(MAS), 리저널 플랜 어소시에이션(RPA) 등 7개 시민단체들은 일반 시민 이용 중심의 공공계획을 갖고 트럼프 개발계획에 공격적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리버사이드 사우스 계획 협회(RSPC)라는 조직을 만들어 공공공간 확보를 위해 트럼프와 협상을 벌인 결과 절반에 이르는 면적을 공원용지로 얻어내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결국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는 시민단체와 트럼프와 뉴욕시의 공동 작품인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기호 교수는 “한강변의 아파트 재건축을 앞둔 우리나라 상황에선 뉴욕의 지혜를 배워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건축 구상안을 보면, 판상형 아파트는 시야를 가리니까 탑상형 아파트를 높이 지어 개방감을 주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강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판상형이나 탑상형이냐의 논쟁이 아니라, 강변을 개발하되 시민들에게 공공공간을 되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열려있는 디자인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