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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식초 건강법’으로 중년의 젊음 유지하는 샘표식품 박승복 회장

여행가/허기성 2006. 10. 19. 20:25



여든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대 못지않은 건강과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샘표 식품 박승복 회장.

그가 지난 25년간 몸소 체험한 ‘식초’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 들려주었다.

“팔순 넘은 나이에도 청년 피부 유지해온 비결은 식초”


나이를 몰랐더라면 그 누구라도 깜빡 속았을 것이다. 염색도 안 했다는데 머리카락이 검고 건강해 보인다. 피부 역시 잡티가 별로 없고 탄력이 넘쳐 보인다. 이럴진대 누가 그의 나이를 여든다섯으로 보겠는가.

물리적 나이 85세, 신체 나이 45세


샘표 식품 박승복(85세) 회장이 지난 25년간 실천해온 건강 유지 비결은 바로 ‘식초’였다. 지난 1980년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가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마시기 시작한 식초. 그 뒤 식초는 박 회장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가 하도 좋다기에 얼마나 좋은지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았지요. 책을 보니 그 효과가 참 놀랍더라구요. 그런데 이론적으로야 좋다는 걸 알지만 막상 먹으려니까 먹기가 쉽지 않아요. 처음엔 속이 메슥거리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와서 먹는 둥 마는 둥 했지요. 그러다 작심하고 하루 세 번을 꾸준히 마셨더니 3개월 후에는 만성적이던 위장병이 싹 사라졌지 뭐예요. 병원에서도 못 고친 걸 식초를 먹고 고쳤으니…. 그 뒤 지금까지 식초를 마시고 있고 그래서인지 지난 25년간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어요.”

혹시 원래 건강 체질인 건 아닐까. 박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젊은 시절엔 술을 많이 먹어서 늘 속이 불편했고 의사마다 위염, 위궤양 등 다른 병명을 제시하는 바람에 습관적으로 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운동을 열심히 한 효과는 아닐까.

“1970년 총리실에 있을 때 공무원들은 골프를 자제하라고 해서 그만둔 뒤부터 숨 쉬기 운동만 하고 살아요. 허허.”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 그는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던 산업은행 전신 식산은행에 들어갔다. 해방 후에는 서울로 와 근무를 계속했고 이후 은행에서 모시던 송인상씨가 재무부 장관으로 간 인연으로 1959년 재무부에 발을 들여놨다. 그리고 1973년에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은 1976년. 김종필 총리가 물러나면서 함께 옷을 벗고 7개월간 ‘백수’ 생활을 하던 중 부친이 별세했다. 일제시대 농협에서 일한 부친은 1946년 샘표식품의 전신인 삼씨양조장의 관리인이 된 이래 회사를 경영해왔다. 그는 은행원에서 공무원을 거쳐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54세에 부친의 뒤를 이어 회사 경영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의 식초 건강법이 화제가 된 것은 지난해 봄 한국경영자총협회 세미나에서였다.

“원래 경총 세미나의 주제는 ‘투명경영’이었어요. 별로 자랑할 게 없어서 처음에는 고사를 했는데 이수영 경총 회장이 자꾸 떠밀잖아요. 샘표식품 경영을 맡은 지 30년 가까이 이렇다 할 노사분규가 없었고 세무조사 한 번 받지 않은 비결을 들려주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내게 주어진 시간은 80분이었는데 무슨 재주로 그 80분을 다 채워요?

그래서 30~40분은 경영 얘기하고, 또 30~40분은 내가 지금까지 실천해오고 있는 식초 건강법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지요. 아니 그런데 ‘경영’ 얘기보다 ‘식초 건강법’이 더 반응이 좋은 거예요. 세미나에 온 기자들이 죄다 세미나 얘기는 안 하고 내 식초 얘기만 기사로 썼지 뭡니까.”

경총 세미나 이후 박 회장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곳곳에서 강연 요청과 언론의 취재 요청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강 정보 프로그램인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은 ‘식초 건강법’을 테마로 채택, 박 회장이 지난 25년간 실천해온 식초 건강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화제의 인물이 되면서 뜻밖의 에피소드도 벌어졌다. 박 회장을 취재하러 온 한 방송사의 제작진이 화사한 안색과 미끈한 피부의 박 회장을 보고 ‘언제 분장을 마쳤느냐’고 물었다는 것. ‘스킨로션 외에 바른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제작진은 당초 콘티에 없던 박 회장의 피부 나이 측정을 즉석에서 제안했다. 결국 인근의 한 피부클리닉에서 측정한 박 회장의 피부 나이는 50대 후반. 실제보다 25년이나 젊게 나왔다고 한다.

사실 박 회장의 식초 건강론은 그리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샘표식품 서울 창동 공장을 견학한 소비자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얘기. ‘공장 견학’이라는 개념도 어떻게 보면 박 회장이 처음 도입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 회장이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지난 1985년 불량 간장이 사회 문제화된 게 계기가 됐다. 영세 간장업체가 인체에 유해한 불량원료를 간장에 사용하는 바람에 샘표 간장까지 도매금으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TV 광고에 출연해 ‘우리 공장에 한번 와보십시오’라며 직접 소비자에게 호소하고 다녔다. 박 회장은 이후 공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안내, 브리핑, 마지막 배웅까지 챙기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요즘 식초 마시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시중에 마시는 식초도 많이 나와 있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식초를 마시는 게 좋으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내가 마셔본 결과로는 ‘흑초’가 가장 좋았습니다. 흑초는 현미를 자연 발효시켜서 만들기 때문에 현미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살아 있고, 아미노산이 다른 식초의 5~10배나 많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식초는 산성이지만 몸에서 분해되면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그래서 산성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주성분인 초산은 근육에 쌓이는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해 피로회복을 돕는다. 소화액 분비를 촉진해 음식물의 소화·흡수도 좋게 한다. 화학식초보다 쌀·옥수수 같은 곡물이나 포도·사과 등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천연 양조식초를 매일 조금씩 복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화학식초와 달리 양조식초에는 비타민과 각종 유기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식초의 효능은 <동의보감>에도 기록돼 있다. 박 회장은 “식초는 고혈압, 치매, 통풍 예방에 효과가 있는 ‘만병 통치약’”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식초 건강법에 힘입어 샘표에서 출시된 ‘벌꿀 흑초’는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제품이다.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기업 회장이 직접 체험한 건강법이라는 점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듯했다.

너무 바빠 데이트할 시간도 없어


지난 2001년 상처한 뒤 지금까지 혼자 사는 박 회장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들의 보양을 사양하고 혼자 살면서도 일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것만으로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 혼자 살아보니 주부들이 하는 일이 생각보다 참 많다 싶다고. 빨래를 챙겨 넣고 뒷정리하는 데만도 1시간 이상이 걸리더란다. “너무 바빠서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며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는다.

“취침과 기상은 비교적 규칙적이에요. 그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죠. 아침은 간단하게 해요. 따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합니다. 저는 일을 하는 게 즐거워요. 아마 그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 있지만 지금도 회사엔 매일 출근해요. 회사 일도 일이지만 제가 맡고 있는 외부 활동이 많거든요. 가지고 있는 직함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자신의 나이가 ‘여든다섯’이 아니라 ‘마흔다섯’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그. 그건 아마도 건강이나 체력, 그 모두가 젊은이들 부럽지 않다는 뜻일 게다.

샘표식품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창업주인 부친이 30년을 지켜온 기업을 이어받아 그가 30년을 경영해오며 대한민국 최고의 장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창립 30주년 기념식 하던 날 아버님 장례를 치렀어요. 참 희한하지 않아요? 아버님이 일군 회사를 이어받아서 지난 30년을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립 60주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아요. 공직에서 물러나 잠시 쉬고 있을 때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회사를 맡으라고 했을 당시엔 거절을 많이 했죠. 전무로 있는 동생에게도 사장 자리를 부탁해 보았지만 결국 저한테 돌아왔어요. 지난 30년간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개인의 시간은 물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온 나날이었으니까요. 평생 휴가라고는 사장 취임 전에 가족들과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여행을 한 1주일이 전부일 정도예요. 내 인생에서 ‘후회’란 없지만 유일하게 후회스러운 게 있다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에요. 그동안 회사일에만 매진해왔으니까.”

박 회장은 자신의 인생에 은퇴는 없다고 말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적십자사와 같은 단체에서 구호·구제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욕이 넘치고 활력적인 80대를 본 적이 있던가.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