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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일에 쓴 편지

여행가/허기성 2006. 12. 19. 23:25

음력 10월 29일,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 장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남편 생일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보니 잠을 설치고 있는 중입니다. 하긴 생일이라고 특별히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는 늘 조금씩이라도 더 잘해주는 것이 좋은 줄 알면서도 그게 마음만큼 잘 안되네요.

40대 중반의 회사원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닙니다. 잘 안다는 건 솔직히 아니고 조금 안다고 해야겠지요. 남편은 너무 힘이 들 때는 저를 동네에 있는 작은 술집으로 불러냅니다. 한 밤중에 혀가 꼬여가는 소리로 ‘여보, 딱 한 잔 만 하게 구이집으로 와라’라는 전화가 걸려오면 저의 마음은 찌르르 아파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남편을 힘들게 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누라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가 마주 앉아보면 남편은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다가 한 마디 합니다.

“너무 힘들다.”

에고, 여기까지 쓰고 나니 눈물이 흘러 잠시 글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가 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직 아이가 대학도 못 갔는데... 이제부터 한 참 돈 들어 갈 텐데 어쩌냐며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고객 때문에 마음 상한 이야기를, 차마 전부는 마누라에게 전하지 못해 걸러 걸러 전하느라 두서없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아니다, 아니야. 당신 걱정 안 해도 돼.’하며 끝내 자기 속으로 삭이기도 하고. 또 그 실적이라는 것은 뭔지, 정말.....

“그냥, 당신하고 잠시 이러고 앉아 있고 싶어서....”

별 도움도 안 되는 마누라 앞에 앉혀두고 정종 한두 잔 하는 시간이 남편에게는 그래도 작으나마 위로가 되는 시간인 모양이에요.

그럴 때면 정말 너무 미안해요. 남편은 공부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저를 만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남편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면 뭐든 해보라고 합니다. 책을 쓴다고 했을 때도, 방송을 한다고 했을 때도, 보호관찰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을 때도 늘 ‘해봐. 넌 잘 할 거야.’라고 말해주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지요.

아마도 자신의 꿈을 접어야했던 것이 많이 아쉬워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 아프고 미안할 때가 많아요. 남편은 직장에 다니기를 원하는 저를 위해 공부를 그만 두고 취직을 했거든요. 그래도 남편의 마음속에는 늘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이 있나 봐요. 정빈이가 아버지에게서 가장 닮고 싶은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남편은 늘 무엇인가를 읽고 배우고 있거든요. 올 1년도 남편은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매일 새벽 출근하기 전에 중국어 학원에 다녔고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늘 큰 소리로 중국어 예습이나 복습을 하거나 대학원 시험공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정빈이가 아버지와 언니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겁니다.

회사원이 꿈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지금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이 땅의 40대 회사원인 남편.

그에게 아내인 저는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후원자이자 열렬한 응원가여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지요.

 

남편의 생일이 겨울이라 연애를 할 때는 매년 생일 때 마다 뜨개질로 옷을 떠서 선물을 했었어요. 그 때는 정말 열심히 몇 밤을 새워서 스웨터, 티셔츠, 조끼, 잠바까지.... 그런데 결혼하고는 한 번도 안 해줬어요. 올해도 남편은 그럽니다.

“그 때는 옷도 떠주고 하더구만....”

“참나, 잡아 놓은 물고기 밥 주는 거 봤어요?”

“그건 남자 대사야.”

“남자 대사라는 법은 없지요.”

“잡힌 물고기 물통을 박차고 나가는 수가 있어. 나 좋다는 아가씨 아줌마 많아.”

“잡힌 물고기 물통을 박차고 나가 봐야 숨만 차지. 자기 힘으로 물통으로 다시 뛰어 올라 올 수도 없고. 그 신세 무지 답답하고 불쌍할 텐데....”

“넌 뭐가 그렇게 자신 있냐? 나 좋다는 아가씨 많다니까!”

“그거야 당근이죠. 당신 같이 멋진 사람이 인기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그리고 인기 없는, 아무도 안 쳐다보는 남자 같으면 내가 결혼도 안 하지. 다른 사람에게 여전히 인기가 대단하다는 건 내가 남자를 잘 골랐다는 증거니까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거 기분 좋으네요. 암, 인기 있어야지. 인기 하나도 없는 남자 매력 없지, 남편으로서도. 그리고 아무리 인기 있어도 상관없어요. 당신하고 결혼한 여자는 나니까. 이 세상에 당신을 남편으로 찜한 사람은 나 밖에 없는걸 뭐.”

“정말 그 자신감 하나는 알아 줘야 한다니까.”

“잡힌 물고기 아저씨, 이렇게 이쁜 마누라에게 잡혀 있는데 뭐가 불만이야. 고마워하면서 잡혀 있어야지, 그죠?”

제가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연애할 때는 정말 무진 애를 썼었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는 변했으니 남편이 투덜거릴 만 하지요. 푸하하하

 

작년 12월에 2년간의 주말 가족을 끝내고 대구로 오고 남편은 더 힘들어했었습니다. 아마 새로 맡은 지점의 운영이 쉽지 않았나 봐요. 참으로 유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올 초에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일이 많다 싶어 제가 그랬습니다.

“여보, 나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도 인정하게 되고 세상을 조금 더 넓고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되어서, 나 스스로가 넉넉해지는 것 같아서... 얼굴에 생기는 주름은 반갑지 않지만 그것마저도 받아들여질 정도로 내가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 요즘 당신을 보면 안 그런 것 같아요. 당신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더 넉넉해지고 품이 넓어져 내가 더 포근하게 안기고 의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조그마한 일에도 예전보다 더 못 참아하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그릇이 커지고 넓어져서 조금 더 넉넉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했는데..... 당신 한 번 곰곰 자신을 한 번 되돌아 봐요. 요즘 어땠는지. 당신 그런 모습 낯설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요.”

제 말에 한 참을 생각하던 남편이 그러더군요.

“너무 힘들어서 그런 가봐. 너무 힘드니까.... 다른데서 못 푸니까....”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그런 투정과 짜증 받아주자. 이제까지 한 20년 남편이 나를 위해 참 많이 애써줬으니 이제는 내가 좀 받아주자. 많이 힘들어서 그렇다니까....’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요즘도 가끔은 약간 꼬였다 싶을 때가 있어요.ㅎㅎ

한 예로 얼만 전 저희 학교 과학 수행평가가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책을 읽고 과제를 하는 것이었는데 한 학생이 써야 하는 글이 최소한 원고기 13장 이상이었습니다. 한 학급에 35명이고 6반 수업을 하니... 읽고 점수를 줘야 할 원고의 양이 엄청나서 그 많은 원고지 보따리를 낑낑대며 집으로 들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일이 생기다 보니 그 다음 날 출근 때까지 원고지를 펴보지도 못했지 뭡니까.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오던 남편이 커다란 원고 보따리를 발로 툭 차면서 한 마디 하는 겁니다.

“이건 뭐 아령이가?”

뭔 소린지 이해하셨습니까? 저도 그 순간 울컥, 하더군요. 남편의 말투가 기분을 좀 상하게 했거든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후우우~~~~ 얼굴에 미소를 담고 최대한 귀엽게(?)말했습니다.

“여보, 그렇게 말하지 마요. 원고 무겁게 낑낑대며 들고 왔다가 펴보지도 못하고 가는 마누라에게 그렇게 이거 아령이가, 하고 핀잔주듯이 말하면 내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거 아령 아니에요. 누가 학생들 원고를 아령으로 쓰려고 가져왔겠어요. 물론 당신은 무겁게 들고 와서는 하나도 안하고 다시 가져가니까 들고 오가는데 힘든 거 안쓰러워 그런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표현이 그러면 듣는 나는 약간 비아냥거린다는 느낌도 들어 기분이 상할 수 있잖아요. 이럴 때는 아내가 얼마나 일이 많았으면, 아니면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 무거운 걸 낑낑대면 들고 와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다시 가져가나, 뭐 이렇게 아내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말을 해주면 좋잖아요. 아령이가, 하는 말은 유머 넘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상대방인 내가 그 말을 유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정말 힘들게 다시 들고 가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 해버릴까도 싶었지요.

‘당신은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아령이가라니요? 나는 뭐 이 보따리 좋아서 집에까지 낑낑대며 들고 온 줄 알아요? 그리고 난 뭐 놀았어요? 어제 밤에 내가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당신 옆에서 다 봤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요?’            

그랬다면 그 날 아침 저희 집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겁니다. 남편은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었고 머쓱해하면서 씨익~ 웃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거든요.  

 

올해는 유난히 구이집으로 저를 많이 불러냈으니 남편에게는 많이 힘든 한해였을 겁니다. 힘들게 지내 온 한 해를 마무리 할 즈음에 있는 남편의 생일을 맞이하는 제 마음이 좀 그러네요.

남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당신께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만나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난 세상에서 제일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당신에 비하면 난 늘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죠. 그런 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당신, 참 고마워요. 난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고, 사실은 당신만큼 살뜰한 마음 씀씀이가 부족한 거겠지요. 노력은 하는데 돌아보면 부족함이....

당신은 좋은 남편, 멋진 아버지에요. 그래서 너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미안해요. 회사일로도 많이 힘들 텐데 나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마음 써주느라 당신 너무 힘겨운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요. 늘 철없이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떼쓰는 마누라 미울 때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뭐든 당신과 하는 게 제일 좋은 걸 어떡해요. 늘 그렇지만 다정도 병이라 이해해줘요. 사랑해요, 여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언제나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거 보다 “2배”라는 거!

당신 건강이 걱정이 되어 내가 병이 난 것 같아요. 지난 수요일 그 일이후로 너무 걱정하고 신경을 썼더니 온 입안이 헐고.... 당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난 당신하고 오래 오래 오래 살아야 하거든요. 건강해야 해요, 아셨죠?

올해는 정빈이 일로 우리 가족에게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잘 이겨냈고 이제 좋은 일만 있을거라 생각해요. 정빈이 많이 건강해졌고 예슬이 건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린 정말 복이 많은 거 맞죠, 그죠?

당신 생일 정말 축하해요.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그리고 나를 만나줘서, 그리고 이렇게 늘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게 있다면 당신을 만난 거라는 거,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거라는 거, 그리고 지금도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아까 미장원에서 당신 전화 왔을 때 미용사가 지원이 엄마보고 그러더래요.

‘누구 전환데 목소리가 저렇게 확 달라지지....’

지원이 엄마가 미용사 말투가 뭔가 의심스럽다는 투여서 얼른 그랬대요.

“남편 전활걸요.”

그랬더니 더 놀라면서 남편 전화에 저렇게 목소리가 달라지다니,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래요.

난 당신 전화 한 통에도 들뜨고 행복해지는 사람이잖아요. 늘 당신이 그립고.....

어떤 영화를 봐도 어떤 드라마를 봐도 내 옆에 앉은 당신만큼 멋진 사람은 아직 없으니 내 눈의 콩까지는 이십년이 넘어도 여전히 그대로인가 봐요. 사랑해요, 여보.

당신의 레아가 사랑을 담아 씁니다.    

     

제 ID가 rhea84랍니다. 레아(rhea)라는 이름을 1984년에 남편이 제게 선물해주었거든요. 22년 전에 말입니다.

선물은 뭘 준비했느냐고요? 벨트를 준비했습니다. 어차피 낡아서 새로 사야되거든요.ㅎㅎ 뭐 특별한 이벤트 귀뜸 주실 분, 아이디어 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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