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28)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있었다. 가시만 앙상하게 남은 자반고등어와 바닥을 드러낸 김치찌개. 가요프로 생방송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오느라 매니큐어도 못 지웠다고 했다.
10시 정각에 취중토크 팀이 나타나자 이효리가 기다렸다는 듯 시계를 쳐다본다. "아깝다. 조금만 늦으면 먼저 일어서려고 했는데…." '지각 효리'의 조크였다.
이효리는 "사진까지 찍는 인터뷰는 거의 2년 만"이라며 평소 주량인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일과 사랑, 가족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이효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지만 늘 외로움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건 사실 아닌가?"
논현동의 이 포장마차는 이효리의 3년 된 단골집. 울적하거나 녹초가 됐을 때, 생일 맞은 동생들이 있을 때 만나는 1차 '베이스 캠프'다. 문을 등지고 벽에 기대 앉을 수 있는 이 자리가 효리 지정석이다.
"여기서 마시다가 좀 더 달리고 싶을 땐 집 근처 서초동으로 가요. 작지만 아지트 같은 가라오케가 있거든요."
9년 전 핑클 때부터 같이 일한 코디네이터 언니와 기자에게 차례로 술을 따라준 뒤 첫잔을 부딪쳤다. "(김)제동이 오빠 뭐하지? 그 오빠랑 술 마신 지 벌써 두 달 됐네. 요즘 연애하나?"
취중토크에 앞서 기자는 이효리에게 두가지 양해를 구했다. '오늘 주고받는 얘기는 가감없이 기사화할 거니까 필요하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나 노 코멘트를 신청하라'와 '당신을 무조건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 본대로 느낀대로 쓸 텐데 불만 없죠?
"바라던 바예요. 근데 동의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지금까지 어떤 언론도 저를 포장하거나 미화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섹시하고 매력적인거 그건 사실 아닌가요? 하하."
-술은 언제 처음 마셨죠?
"서문여고 3학년 때 마신 100일주가 처음이었어요. 친구들과 태평백화점 뒷쪽에 있는 먹자골목에서 레몬소주를 마셨는데 '아, 이런 게 술이구나' 실감했죠. 술은 잘 사귀면 좋은 친구가 되지만, 잘못 사귀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필름 끊길 때까진 안 마셔요."
▲유난히 산수에 약했던 학창시절
지난 겨울 집 앞에 쓰러진 취객을 구해 미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새벽 1시에 겁나지 않았을까.
"저 혼자였으면 망설였겠죠. 마침 옆집 사는 친구가 함께 있었고, 그냥 지나치면 그분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호자가 저를 못 알아보신 줄 알았는데…. 그 일 있은 뒤 만나는 사람마다 '너한테 그런 면이 있었냐'며 놀래더라고요. 유명인은 잘못해도 크게 욕 먹고, 조금만 잘해도 크게 칭찬 듣는구나 생각했죠."
이효리는 술도 넙죽넙죽 잘 마셨지만 의외로 '안주발'이 셌다. 쉴 새 없이 오이와 당근을 먹어대는 이효리에게 "칼로리 부담 같은 거 안 느끼냐"고 묻자 "에이, 먹은 만큼 빼면 되죠. 몸무게 신경쓴 적 한번도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학창시절 쎄씨 별책부록인 칼로리북도 안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사회성이 좋아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반대였다. 특히 연예인 친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새벽 2시에 달려나와 고민 상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김제동·옥주현·SG워너비 정도. 연예인들은 빨리 친해지지만 그만큼 또 금세 멀어져요. 다들 바쁘니까."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은 모두 몇 명인가요?
"234명이네요. 남녀 비율은 말 안 해도 되죠? 어릴 때부터 산수에 약해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돼요."
-숫자랑 안 친한가 봐요.
"예. 학교 다닐 때도 언어·외국어 영역은 성적이 제법 좋았어요. 언어는 만점도 받아봤고요. 그런데 수리·탐구는 완전히 꽝이었어요. 거의 바닥권? 선생님들도 싫었을 정도니까요. 수능 볼 땐 거의 포기했죠."
'산사춘' CF를 찍은 이효리는 "정작 소주 광고는 못 해봤다"며 "'참이슬' 보다 '처음처럼'이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특별한 술버릇은 없지만 "기분 좋을 땐 마이크를 놓지 않고, 기분이 다운될 땐 소리내 운다"고 털어놨다.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잖아요?"
-천하의 이효리가 눈물 흘릴 때도 있나 봐요.
"그럼요. 자주 울어요. 세상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어떤 날은 아무 이유없이 눈물날 때도 있어요. 베개를 흠뻑 적시고 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져요. 눈물이 마음 정화기인가 봐요."
-'지각 효리'란 말 때문에 속상했죠? 그때도 많이 울었나요?
"아니오. 오히려 그런 비상 상황에선 또 눈물이 안 나와요. 이걸 어떻게 대처하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9년간 활동하면서 가장 억울하고 답답한 사건이었어요. 준비한 의상은 마음에 안 들죠, 기자들은 '왜 대기실에서 안 나오냐'고 성화죠, 설상가상으로 어린 여학생들한테 '재수없다'는 얘기까지 들었거든요. 정말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이었어요. 대기실에서 엉엉 울고 나와보니 기자들이 다 철수했더라고요. 기자회견 보이콧 당한 기분은 안 당해보면 모르실 거에요."
이효리는 "그 일 이후 기자들이 더 무서워졌다"고 했다. "1~2년 전만 해도 안면 있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누가누군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때는 사진 기자분들이 잘 나온 사진 골라주고 그랬는데 요즘엔 무대에서 바지가 찢어지면 1분 안에 인터넷에 떠요. 수치스러워 죽겠는데 그분들한텐 속도가 '장땡'이잖아요. 씨야도 그런 일 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인간미가 많이 아쉽죠. 물론 예전보다 홍보가 쉬워진 면도 있지만 전 옛날 방식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낯가림이 심한 편인가요?
"맞아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잘 웃지 못해요. '쟁반 노래방'이나 '해피투게더' 덕분에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꼈다가 막상 무표정한 저를 보면 실망하고 심지어 불쾌하시기도 한가 봐요."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건 어때요?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 특히 힘들어요. 일거수 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알려지니까요. 사생활 침해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악플 때문에 목숨을 끊는 연예인도 생기잖아요. 유니씨와 정다빈씨가 저와 친했다면 어떻게든 도왔을 텐데…. 많이 슬펐어요."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다고 생각하나요?
"예. 연기도 점점 나아질 수 있는 거잖아요.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는데 욕과 비난은 좀 속상하죠. 제가 공자나 맹자는 아니잖아요. 그냥 열심히 노력하는 동생이나 누나처럼 봐줬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때까지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았어요"
이효리는 부모님과 10분 떨어진 곳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이유가 있나요?
"아버지가 이발소를 하셨는데 중학교 때까지 가게 딸린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어요. 고등학교 때 전세로 이사갔는데 그때도 언니들과 방을 써야 했죠. 막내였거든요. 핑클 때도 숙소 생활 하느라 제 방이 없었어요. 그래서 독립 생활하는 게 꿈이었어요."
-집에선 어떤 딸인가요?
"경제적으론 든든하고 정신적으론 철이 덜 든 딸이죠. 안 좋은 기사 나오면 엄마한테 꼭 전화 와요. 별 일 아니라고 말해도 걱정 되시나 봐요."
-보통 여자 연예인들이 돈 때문에 가족과 불편하게 지내던데…. 슬그머니 회사 그만두는 언니 오빠들도 많잖아요.
"저희집은 안 그래요. 다들 헝그리 정신이 강해요. 강하게 자라서 그런지 남들한테 기대지 않아요. 저도 중3때까지 언니들 옷 물려 입었어요. 간혹 다른 연예인 부모님들이 도박도 하고, 무리하게 사업에 손대기도 한다는데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지하철 타고 다니세요. 작년에 체어맨 사드렸는데 모셔놓고 안 타세요. '딸이 어렵게 번 돈인데 기름 값 아깝다'면서요."
-힘들 때마다 통잔 잔액 보면 행복하겠어요.
"실제로 그래 본 적은 없지만 또래들에 비해 엄청난 돈을 벌었죠. 저보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적은 돈을 버는 분들이 많잖아요. 며칠 전 비오는 날 친구와 집에서 돌솥비빔밥 2인분을 시켜먹었는데 아저씨가 만원을 달래요. 아빠 같은 분이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2만원 드리면서 '고맙습니다' 했어요. 그런 일 있으면 '힘들다 투덜대지 말자' 결심하게 돼요. 그런 생각이 사흘을 안 간다는 게 문제지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효리와 실제 나는 어떻게 다른가요?
"많이 다르죠. 마냥 행복에 겨워 사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무슨 말을 해도 상처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알고보면 저도 전형적인 A형이거든요. 얼마나 소심한대요.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인일 뿐 나머지는 똑같아요. 하루 세끼 먹고 때 되면 화장실 가고, 다 똑같죠."
▲"'방배동 그분'과 사귀지는 않았어요"
내후년이면 서른. 슬슬 결혼 생각은 없을까. 이효리는 연애, 결혼 얘기가 나오자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다는 표정. 한때 열애설이 있었던 '방배동 그분'에 대해 묻자, 옆 테이블에 있던 매니저에게 SOS를 친다. "오빠, 기자분이 자꾸 이상한 거 물어봐. 헤헤."
-이상형은 자주 바뀌나요?
"전에는 무조건 잘 생긴 남자한테 끌렸어요. 돈은 제가 충분히 버니까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남자들한테 많이 데어서 그런지 지금은 따뜻하고 스위트한 사람이 좋아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그것마저 보듬어줄 수 있는 남자가 좋아요."
-'방배동 그분'과는 왜 헤어진 건가요?
"사귄 거 아니라니까요. 같은 CF 찍고 친해진 건 맞지만 연인 사이는 아니었어요. 요즘 그분 진짜 연애하시는 것 같던데."
-한때 두 사람이 청계산에 다닌다고 해서 그곳에 잠복한 기자도 있었어요.
"하하. 어떡해. 허탕치셨겠다. 청계산은 매일 코디 언니랑만 다녔는데."
이효리는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좀 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며 "연애도, 일도 모두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 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인연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소개팅 해달라고 조르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네요. 코디 언니도 9년 동안 한번도 소개팅 주선 안 해줬어요. 다들 '뒷짐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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