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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원동력 ‘거침없는 하이웨이’

여행가/허기성 2008. 9. 11. 12:15

 

전국 고속도로 28곳 3300㎞ 방방곡곡 뻗어… 일부 구간 정치적 이유로 건설 효율 떨어져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최근엔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며 지방분권 시대를 열었다. 사진은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의 분기점인 신갈IC. <한국도로공사 제공>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족, 선물, 고향 등 그 대답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TV나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것은 귀성 또는 귀경 행렬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 광경이다. 국토해양부는 올 추석에 전국적으로 3440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며, 연휴가 짧은 만큼 정체가 더욱 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명절뿐 아니라 고속도로는 평소에도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라디오 ‘57분 교통안내’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 메인으로 등장하는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외에도 논산천안고속도로, 88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당진상주선, 고창담양선 등 지선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총 28곳, 3300㎞에 달한다. 모든 고속도로의 현재 하루평균 이용 차량은 357만 대, 통행료 수입은 81억 원에 이른다.

경부고속도로 ‘한강의 기적’ 이끌어 가장 오래된 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경부고속도로다. 1970년 7월 7일 개통했으니 올해로 38년이 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가 개통되면서 당시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부산에서 먹을 수 있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첫 삽을 뜰 1968년 2월 당시에는 국내 사정은 자본도, 기술도 전무한 상태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난코스였던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구간을 헬기로 공중 답사하던 중 위험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도 했고, 대형 낙반 사고가 자주 발생해 희생자가 늘어나자 인부들이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임금을 두 배 이상 올린 일화도 있다.

총길이 3300㎞에 달하는 고속도로엔 한국인의 땀과 기술이 녹아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모습(위). 하지만 정치적 논리로 건설한 고속도로는 많은 폐해를 불러오고 있다. 중앙분리대도 없이 왕복 2차선인 88고속도로(아래).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인 1968년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64달러에 불과했으나, 이 축을 중심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결국 2007년 1인당 GNP는 약 125배 증가한 2만45달러가 됐다.

호남고속도로는 정부의 간선도로망 구성 계획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건설한 고속도로로 1, 2차로 나누어 공사를 진행했다. 1970년 4월 착공해 12월에 완공한 대전∼전주 구간은 외국 자본이 아닌 순수 국내 자본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호남고속도로는 남해고속도로, 88고속도로와 함께 영·호남의 활발한 교류 및 호남권 지역 개발을 촉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휴가철이나 연말이면 극심한 정체를 일으키는 영동고속도로는 강원도의 경제를 살려놓은 도로다. 치악산국립공원과 오대산국립공원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동해에 이르면 이어지는 설악산국립공원, 낙산도립공원, 주문진, 경포도립공원, 정동진 등 수많은 해수욕장과 관광지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영동고속도로다. 개통 당시 수도권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운송 구조는 국도와 철도, 항공이 있었지만 이용하기가 불편했다.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은 서울~강릉을 3시간대로 줄이면서 교통 편의와 물류비 절감으로 경제와 지역 개발을 촉진했다.

중앙고속도로는 3조6659억 원이라는 총 사업비가 말해주듯 수많은 인원과 장비, 자재가 투입됐으며, 257개의 교량과 28개의 터널 등 구조물이 전체 노선의 20%나 차지할 정도로 높은 기술력으로 건설한 도로다. 험준한 죽령고개를 관통하는 연장 4600m의 국내 최장 도로터널인 죽령터널과 고속도로 최초로 트러스트 공법을 이용해 건설한 호저대교는 순수 국내 기술진이 건설한 토목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해주는 사례로 손꼽힌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의 의미도 크다. 대천해수욕장 등 관광지가 많은 곳이었으나 마이카 시대 이후 동해안에 사람을 빼앗겼던 이 지역이 서해안고속도로의 완전 개통으로 활력을 되찾은 것이다.

88고속도로 ‘죽음의 도로’오명 한편 정치적 목적으로 건설한 고속도로의 경우 고속도로 본연의 역할은 물론이고 경영 실적도 최악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88고속도로로, 개통 24주년이 넘었지만 수익은커녕 운영과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정치 논리가 개입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88올림픽 고속도로는 1981년 10월에 착공해 1984년 6월 개통했다. 당시 존재했던 고속도로 가운데 유일하게 지역 이름을 붙이지 않은 독특함만큼이나 영남과 호남을 직통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은 고속도로였지만, 탄생 배경에는 영-호남 간 교통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차원보다는 1980년 광주항쟁을 불러온 신군부의 ‘동서화합’이라는 정치적인 고려가 상당히 작용했다.

88고속도로는 한때 전두환 정권이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서둘러 건설을 결정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게다가 당시에는 기술도 생소한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이때 전두환 대통령의 후견인이자 아주 가까운 인척이 한국양회공업협회장으로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88고속도로의 하루 통행량은 5만 대 정도. 하지만 적은 통행량에도 불구하고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2007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88고속도로의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은 31.8명으로 집계됐다. 88고속도로의 교통사고 이유로는 ‘중앙선 침범’이 61%로 압도적으로 많으며 다음으로 안전운전 불이행이 37.7%를 차지했다. 다른 고속도로에서는 중앙선 침범으로 인한 사고가 최고 8.3%에 그친 것과 대조적인 결과로, 이는 88고속도로가 국내 유일의 왕복 2차로 고속도로인 데다 곡선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등장으로 이용객 유치 경쟁 결국 88고속도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지난해 호남·영남 주민 대표들이 인권위를 찾아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 요지는 급경사와 급커브 구간이 많은 기형적 도로 구조로 인해 교통사고 치사율이 높아 지역 주민이 희생되고 있으니 국가 인권 차원에서 시정해달라는 것이다.

이상재 ‘함께하는 거창’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어찌됐든 영남·호남의 주민들은 88고속도로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서로 이해를 높이며 화합을 다져왔다. “거창의 사과가 광주 공판장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고, 나주 홍어가 영남인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었다”는 이 정책위원장은 “법으로 고속도로가 맞네 아니네 따지기에 앞서 안전을 위한 최소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당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다녀야 하는 지역 주민들은 국가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경우도 김대중 정부 당시 목포~무안만 서둘러 개통하면서 ‘정치적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목포-광양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경우 사업 타당성이 낮게 나왔지만 예비 타당성 분석을 통과해 특혜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역시 모든 일정을 대통령 임기 내에 급하게 맞추다 보니 개통 이후에도 노반침하 현상과 잘못된 교통량 예측에 따른 상습 정체 등으로 운전자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했다.

고속도로가 거미줄같이 전국 방방곡곡에 깔리자 상대적으로 지방 공항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승객을 뺏겨 파리만 날리던 예천공항이 2004년 문을 닫았고,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여 명에 불과한 양양공항도 폐쇄 직전이다. 여수·포항·울산·청주 공항도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역시 최근 고속철도라는 초스피드 운송 수단에 밀리고 있다. 부산까지 3시간이면 달리는 고속철도는 항공 이용객뿐 아니라 고속도로 이용객 수요마저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올 추석 연휴가 짧아 지난해 추석보다 하루 평균 교통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귀성길은 13일 오전, 귀경길은 14일 오후가 가장 혼잡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경부고속도로 수도권 일부 IC에서는 진·출입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진화

휴게소는 이제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즐길 거리와 특화한 서비스로 이용객을 유인하고 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랴.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착지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곳이 휴게소다. 급한 용변을 보고, 허기나 달래던 휴게소에 이색 공간이 생기고 문화공간은 물론, 휴게소가 호텔급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볼거리. 안동휴게소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홍보 공간을 마련해 안동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선보인다. 칠곡휴게소 하행선에는 132㎡(40평) 규모의 갤러리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마련해 서양화가 김만식 화백의 유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의 ‘영호남 화합 갤러리’에도 영남과 호남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문산휴게소에선 공연장처럼 꾸며 놓은 분수대에서 통기타, 사물놀이, 라이브 공연 및 이벤트가 열리고, 칠곡휴게소 상행선 휴게소 자율식당에서는 필리핀 부부 가수의 그랜드 피아노와 색소폰 연주를 들으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여주휴게소의 중앙 광장 무대에서도 인디언 복장을 한 음악가들이 공연한다. 이 밖에 망향휴게소와 군위휴게소, 산청휴게소에 들러도 귀가 즐겁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서해안도로 고창휴게소 녹지대에 마련된 6홀 규모의 미니 골프장 ‘파크 골프장’에서 몸을 풀고 가는 것도 좋다.

고속도로에서 제대로 식사를 해결하는 이용객이 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도 등장했다. 특히 도로공사가 매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맛자랑 경연대회’를 개최하면서 맛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 우선 경부선 라인에서는 경주휴게소의 봉계한우 우장탕(6000원)과 천안휴게소의 삼치구이정식(6000원), 칠곡휴게소의 평양온반(3000원)이 유명하다. 안성휴게소 한방인삼곰탕 복육개장 및 복지리(각 6000원), 옥산휴게소 황태구이백반(5000원) 등도 입맛을 돋운다. 중앙선 및 중부내륙선에선 괴산휴게소의 연잎밥 정식(6000원)과 안동휴게소의 안동 간고등어 백반(6000원), 헛제사밥(6000원)이 인기다. 춘천휴게소에는 웰빙 버섯된장덮밥(5000원), 단양휴게소에는 남한강 올갱이 부추어탕(6000원)이 인기 메뉴다.

서해안 라인을 따라 화성휴게소의 장단콩순두부청국장(5000원)과 서산휴게소의 어리굴젓백반(6000원)이 맛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고, 영동선에선 용인휴게소의 삼합누룽지탕(6000원), 강릉휴게소의 곤드레 돌솥밥(6000원), 횡성휴게소의 제육직화구이정식(6000원)이, 대전통영선에는 산청휴게소의 허준 한방라면(3500원)이 인기다. 이 밖에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의 지리산흑돼지 떡갈비(6000원)와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의 청매실재첩비빔밥(5000원)과 청매실쭈삼불고기(6000원)도 인기 메뉴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