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 같은 두집, 3대 가족이 공존하는 방식
노부모와 아들 부부의 다른 취향, 라이프 스타일 반영해 지은 경기도 안성 모아집
5시에 일어나는 부모
7시에 일어나는 아들 부부
프로방스풍을 사랑하는 부모
단순함을 추구하는 아들 부부
이들이 따로 또 같이 사는 집을 지었다
결혼한 자녀와 부모의 거리는 얼마나 되어야 할까? 가까우면 탈나고 멀어지면 서운하다. 외국에서는 부모님 집과 적정 거리를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라고 부른다. 장자도 "방 안에 빈 공간이 없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다툰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 서정석(35)·허주연(32)씨 집에서 부모 집까지의 거리는 6.7m. 아침저녁 얼굴을 마주볼 수는 있지만 부모와 자녀 두 세대가 각자의 생활 반경을 지키고 살자는 뜻이다. 한 지붕을 이고 두 세대가 따로 살아가는 경기도 안성 '모아집'을 찾아갔다.
안성 모아집은 멀리서 보면 두개의 뾰족지붕을 이고 있는 부정형의 전원주택처럼 보인다. 높은 봉우리와 낮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 가보면 6.7m 길이 데크를 사이에 두고 큰 집과 작은 집 두 채다. 데크에 지붕이 덮여 한 집처럼 보이는 이 집은 그래서 '모아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금 큰 집은 아들 서정석씨네가 살고 작은 집은 부모님을 위한 곳이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작은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웹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아들 서정석씨는 마침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었다. 두 세대가 함께 이곳 배나무 언덕에서 집을 짓고 살아도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집은 아니었다. "그전에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른 것부터가 불편했다. 부모님 기상시간은 새벽 5시인데 저희는 7시쯤 일어난다. 부모님도 자기 생활이 중요하니까 원래 살았던 대로 살고, 수시로 모여서 이야기할 수도 있는 그런 집을 원했다." 아들 가족의 말이다. 며느리 허주연씨는 "두 집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첫째는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고, 둘째는 집에 대한 취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세대가 각기 공간에 대한 다른 취향을 지키고 싶은 이 집의 설계는 유·경 건축 지정우·권경은·서주리 소장이 맡았다. 땅을 고르고 집을 짓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설계는 4~5개월 걸리고 공사는 지난해 7월말에 시작해서 11월말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대지면적 989㎡에 건축면적 151.13㎡, 동서 방향으로 길게 놓인 집이 완성됐다.
우선 서쪽 아들네 집. 최대한 단순한 집을 원한 부부의 취향대로, 집을 지을 때 붙박이로 만든 의자며 수납장을 빼면 가구도 거의 없다. 유일한 덩치 큰 가구인 탁자도 집 지을 때 잘못 건조된 문짝에 다리를 붙인 것이다. 대신 설계할 때부터 구석구석 수납공간을 꼼꼼히 넣었다.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거실 창 아래 길게 붙인 벤치 겸 낮은 책장이다. 마당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서정석·허주연씨와 5살 아들 아론이는 각자 일하거나 놀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나지막한 이 집 창문마다 걸터앉을 곳이 있다. 집을 설계한 지정우 소장은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아들네와 부모님네의 경계를 넓고 두툼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경계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집"이라고 말했다. '두툼한 경계'는 세대와 세대, 집 안팎으로 적용된다. 거실과 이어진 아이방에는 창문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아론이는 창턱에 걸터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며, 숨어 있기도 한다. 창문 바깥 데크 쪽에도 작은 쪽마루를 둘러 식구들은 각자 자기 집 쪽에 앉아 서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텃밭을 손보다가 잠시 앉아 숨을 돌릴 수도 있다.
아들 부부가 잠자고 일하는 안쪽 방은 압축적으로 설계됐다. 이중적인 공간이다. 거실과 주방에서 보자면 두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숨은 공간이지만 마당으로 통하는 뒷문이 달린 열린 곳이기도 하다. 침실 창문 밖 데크에는 미닫이로 가림문을 달았다. 오후에 해가 드는 창문을 가리고 싶거나, 마당 쪽 길에서 쳐다보는 시선을 가리고 싶을 때는 미닫이문을 창 쪽으로 옮기고, 밖을 내다보고 싶을 때는 밀면 그만이다. 데크에 미닫이문이 달리면서 아파트 발코니 같은 공간을 얻는 효과도 있었다. 아론이가 노는 다락방과 부부가 일하는 곳 사이엔 서로 눈맞춤할 수 있는 안쪽 창이 나 있다.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난간 대신 계단 모양의 높은 책장을 짜 넣었다.
동쪽 부모님 집은 아들네 집과 닮은꼴이다. 문을 열면 역시 작은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커다란 책장이 막고 서 있다. 방문으로 쓰려던 자재로 거실 가운데 커다란 탁자를 만든 것도 똑같다. 그런데 분위기는 좀 다르다. "어머님은 동화책에 나올 법한 프로방스풍의 온화하고 화사한 집을 원했다"는 며느리 허주연씨의 설명대로 알록달록한 타일이며 아기자기한 가구들이 놓여 있다. 다락을 제외하면 방 하나에 욕실이 딸린 훨씬 단출한 구조다. 처음에 집을 지을 땐 부모님은 다락방은 창고로 쓸 생각이었지만 지붕이 낮고 안정된 느낌이 좋아서 지금은 침실로 이용한단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다락방에 대한 로망이 있다. 각각 다락을 갖고 있으면서 높낮이가 다른 집을 잇다 보니 지붕이 날개처럼 펼쳐지고 자연스럽게 근처 산과도 모양이 비슷해졌다"는 것이 권경은·지정우 두 건축가의 설명이다.
집처럼 마당도 두 구역으로 나뉜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곳은 아들네 취향대로 깔끔한 잔디밭이고 집 뒤쪽엔 어머니 바람대로 풍성한 텃밭이 만들어졌다. 두 집이 각기 따로 아침밥을 먹고 각자의 공간에서 일한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대신 배나무밭과 산을 쳐다본다. 나무 골조에 투명한 지붕이 얹힌 데크에서 두 세대의 서로 다른 취향이 모인다. 바람이 훤히 통하는 이곳은 대청마루를 닮았다. 부모님 집 창문 안팎에는 쪽마루가 달려서 굳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아도 창문 앞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단다.
"이웃들은 한 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두 채의 집인 게 중요하죠. 요즘 3대, 4대가 같이 사는 집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은퇴를 해도 여전히 건강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부모님과 자식 세대가 공존하는 생활을 건축할 수 있느냐는 거죠." 같이 살고 싶다, 아니 따로 살아야겠다. 안성 모아집은 독립적인 동거를 꿈꾸는 두 세대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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