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였던 월셋집 연금·건보료 부메랑
임대소득 국세청 노출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연간 수백만원씩 내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임진규씨(53)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졸지에 연간 수백만원의 보험료 등을 부담해야 할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임씨의 고민은 지난 2011년 다니던 모 공기업에서 명예퇴직, 받은 명퇴금 등으로 서울 공덕동에 사놓은 아파트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당시 급매물로 나와 주변시세보다 저렴한데다 아들이 결혼하면 물려줄 생각에 선뜻 매입했다. 이후 월세를 통해 세입자를 들인 임씨는 지난 2년여 동안 이곳에서 월세(월 160만원)를 받아 효자 같은 아파트였다. 그러나 정부가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 보완대책을 통해 2주택자이면서 연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소규모 임대소득자에 대해 임대소득을 신고토록 하면서 아파트가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정부는 임씨 같은 소규모 임대사업자 과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015년까지는 임대소득에 비과세하고 2016년부터 과세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오는 6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임대소득이 드러남으로써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신규 가입해야 하고 연간 수백만원대 부담을 새로 져야 하는 것이다.
■세입자 신고 땐 임대소득 노출
9일 기획재정부, 국세청,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직장가입자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지역가입자로 구분되며 만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다. 은퇴자들은 소득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지역가입자로 구분돼 임대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료다.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돼 있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소득이 거의 노출돼 근로소득만을 바탕으로 산정되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부동산 등 보유한 재산과 차량, 소득을 기반으로 부과한다.
임씨처럼 일정 근로소득 없이 임대소득으로 가계를 꾸리는 소규모 임대소득자들은 이번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소득이 노출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신규 가입해야 하는 등 임대소득자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부담을 져야 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들 소규모 임대소득자에 대한 임대소득 관련 과세를 2년간 유예하지만 세입자가 소득공제를 신청하면 임대소득이 발생한 사실이 국세청에 통보되고 이로 인해 임대소득자로 분류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은 신규 가입자로 분류하게 된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임대소득도 소득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 소득이 국세청에 신고되면 국세청 자료에 따라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알아본 결과 국세청에 소득자료가 들어가면 임대소득으로 월 150만원 정도 벌 경우 한 달에 13만5000원씩 내야 한다고 안내하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임씨는 앞으로 국민연금으로만 새롭게 해마다 162만원씩 지출하게 된다.
■국민연금·건강보험료도 수백만원
임씨가 새로 부담해야 하는 돈은 이뿐만 아니다. 건강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어 별도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으나 월세소득 노출로 지역가입자 대상으로 분류되기 때문. 건강보험료는 소득과 재산 규모 등을 바탕으로 산정되고 임씨의 경우 주택만 2채여서 건강보험료를 월 20만원씩 계산하면 연 240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임씨는 예상한다.
이에 따라 임씨는 이번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으로 당장 올해부터 국민연금보험료와 지역 건강보험료로만 해마다 최소 400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임씨는 공덕동의 월세 주택을 급매로라도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임씨 입장에서 월세로 연간 1920만원을 번다 해도 당장 소득세법이 통과되면 올해부터 연간 400만원이 넘는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료에다 2016년부터는 연간 56만원씩 임대소득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제하고 나면 사실상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돼 차라리 파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퇴자들의 임대소득이 드러나면서 국민연금료와 건강보험료까지 새로 내야 한다면 주택임대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며 "정부가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득공제율은 크게 높여…정부 "성실신고 은퇴자, 세금 더 낼 일 없다"
정부가 '2·26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으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임대소득 연 2000만원 이하 수십만 은퇴 생활자의 세 부담을 원안보다 70~90%가량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월 100만원의 임대소득을 올리는 은퇴자의 세 부담은 원안(92만원)에서 80% 가까이 줄어든 17만원으로 대폭 낮아진다.4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2주택자에게 14%의 분리과세 단일 세율을 적용키로 했지만 같은 조건으로 임대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에 한해서는 세부담을 현재보다 늘리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5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을 확정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그동안 소득 신고를 성실히 해오던 은퇴자들은 단돈 1만원이라도 더 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임대소득 외에 특별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에 대해선 14%의 분리과세 단일세율을 적용하지 않고, 현행대로 종합소득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100만원의 월세를 받는 은퇴자의 경우 14%의 단일세율 대신 종합소득세 최저세율인 6%를 적용한다는 의미다. 임대사업을 하면서 필수적인 비용이라고 여겨져 소득에서 빼는 단순경비율(45.3%)을 높이는 등 공제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정부는 월세소득 연간 2000만원 이하 임대사업자에 대한 분리과세 적용 자체를 2년 동안 유예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월세 소득으로 생계를 꾸리는 은퇴 임대소득자가 2주택 이상 다주택 보유자(136만5000명)의 30%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은퇴자가 달라진 세제의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이에 따라 지난달 발표된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도 부분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대책의 핵심은 세액공제를 통해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집주인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집주인의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2주택 이하이고 월세소득이 연 2000만원이 안 될 경우 월세소득을 종합소득에서 따로 떼서 14%의 세금을 매기는 '분리과세'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었다. 근로소득은 기존처럼 계산하되 월세소득엔 14%의 고정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책 발표 다음날부터 분리과세의 허점이 노출됐다.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 소득자들은 분리과세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소득세 최저 세율(6%)을 적용받는 과표구간 1200만원 이하(각종 공제를 제외한 금액으로 실제 소득은 2000만원 이상) 은퇴자들의 세율만 6%에서 14%로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100만원의 월세 소득으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은퇴자 A씨의 사례를 보자. A씨는 그동안 임대소득을 국세청에 신고, 본인과 배우자 공제(360만원) 등을 포함해 연 17만7840원(종합소득세율 6%)의 세금을 냈다.
하지만 '2·26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에 따른 소득세법 개정으로 A씨는 1200만원의 임대소득에서 단순경비(임대소득의 45.3%)를 제외한 656만4000원의 14%에 해당하는 91만9000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한 달치 월세에 육박하는 소득세 부담을 더 떠안게 되는 셈이다. 같은 조건에서 연 2000만원의 임대소득을 올리는 B씨의 세 부담은 44만원에서 153만원으로, 연 600만원일 경우 세 부담은 1만9000원에서 45만9000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에 대한 전체 세금을 종합소득세율 6% 수준에 맞추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세금 부담은 당초보다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다만 그동안 소득세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은퇴자들이 새로운 세금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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