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도시의 삶을 바꾼 10년
10년 전인 2004년 4월, 서울 청계천은 ‘뜨거운 감자’였다. 2003년 7월 청계천 상인들을 가까스로 설득해 고가도로를 철거했지만 이번엔 문화재 복원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광교와 수표교의 청계천 원위치 복원을 주장했다. 광교는 원래 자리였던 중구 남대문로1가 광교 사거리에서 청계천 상류 쪽으로 150m 옮겨진 서린공원 앞에 복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구 청계3가에 있던 수표교(현재 장충단공원에 보관)는 석재가 심하게 훼손돼 원형 복원이 불가능했다. 결국 수표교는 시간을 두고 복원하기로 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1년 뒤인 2005년 4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기자와 함께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동아일보 사옥) 앞 청계천 시작점부터 성동구 마장동 신답철교까지 5.84km를 걸었다. 그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청계천을 바라보며 이렇게 장담했다. “수많은 논란이 있지만 두고 보세요. 청계천은 서울의 삶을 바꿔놓을 테니.”
그해 10월 1일 청계천의 ‘물길’이 열렸다.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이던 청계천에 한강과 지하수를 끌어와 하루 12만 t의 물을 흘렸다. 1976년 고가도로가 세워져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청계천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청계천 복원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이었다. 근대화 이후 뜯고 부수고 새로 세우기만 하던 서울에 처음으로 복원과 재생이 시작된 것이다. 한양도성 살리기 등 서울 600년 역사 재조명의 출발이기도 했다.
청계천 복원으로 도심 속 자연이 되살아났다. 사람들이 청계천으로 몰리며 카페 음식점 같은 새로운 업종이 자리를 잡았다. 인근 전통시장 상권도 활력을 되찾았다. 서울의 이미지 개선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 등 경제 효과도 컸다.
반면 고가도로가 철거된 뒤 청계천에 의지해 생활하던 영세 제조업자, 노점상 등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교통 불편으로 손님이 크게 줄었고 대체 상가로 이전한 곳 역시 썰렁하기만 하다. 인공적으로 물을 흘리는 청계천을 온전한 생태 하천으로 꾸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계천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을 만나 그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 봄 내음 따라 걷다가 빈대떡 한점… “이게 사는 맛” ▼
“산책하러 나온 김에 한잔하러 오고… 청계천 덕 좀 봤지.”
지난달 29일 청계천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주말 저녁. 청계천 바로 옆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먹자골목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빈대떡 김밥 순대 떡볶이 생선회 등을 파는 각양각색의 음식점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청계천 물길이 열리면서 돌아온 건 자연만이 아니다. 사람들도 물길을 따라 모여들면서 삭막하고 썰렁했던 도심을 넉넉함으로 다시 채우고 있다.
물길 열리니 시장 상권까지 ‘활짝’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2005년 10월 청계천이 복원된 뒤 지난해 말까지 모두 1억6300만 명(연인원)이 청계천을 찾았다. 하루 평균 방문자는 4만9000여 명이나 된다. 이들은 청계천에만 머물지 않고 광장시장 등 인근 시장들도 찾았다. 시장 상권까지 살린 것이다.
조병옥 광장시장 상인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청계고가도로가 사라져 시각적으로 뻥 뚫렸고 환경도 좋아져 시장 방문객이 복원 이전의 3배 수준”이라며 “원래대로라면 섬유산업 하락세와 함께 시장도 전체적으로 어려워졌겠지만 요즘은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빈대떡집을 하는 이모 씨(50)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씨는 “청계천을 복원하면 그나마 있던 손님까지 다 떨어져 나가는 거 아니냐고들 했는데 산책길, 데이트 코스가 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마약 김밥’(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의 김밥)을 파는 주서원 씨(50)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메뉴판을 만들어 놨다. 그는 “대를 이어 42년째 장사하는데 청계천 복원 이전에 비해 매출이 최대 50% 이상 늘었다”며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곳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걷기와 먹을거리가 결합한 코스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명동 상권에 밀려 주춤했던 청계천로, 종각역 상권도 청계천 재개발 이후 10, 20대가 많이 찾는 젊음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패스트푸드와 식음료, 커피전문점이 들어섰고 이에 따라 다시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청계광장 앞의 한 프랜차이즈 점포 영업담당자는 “2010년 말 문을 열었는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정도 늘었다”며 “청계천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덩달아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청계천 바로 앞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박영희 씨(68)도 “이 자리에서만 장사를 23년 했는데 주말에는 자리를 비울 틈이 없다”고 말했다.
숨통 트인 도심… 시민 휴식공간 정착
포근한 봄 날씨가 이어지면서 요즘 낮이면 청계천에서 와이셔츠, 넥타이 차림의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씩 들고 느긋하게 산책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청계천변 5.5km에는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 산수유 매화가 아름답게 피어 나들이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이지윤 씨(32·여)는 “점심을 일찍 먹고 일부러 동료들과 산책하러 나온다”며 “청계천이 숨 막히는 도심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건강명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천은 꽉 막힌 도심의 혈관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대표적 시민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청계천시민위원회가 지난해 9월 15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고궁(38.7%), 남산타워(32.4%), 광화문(21.1%)에 이어 네 번째로 청계천(19.4%)을 꼽았다.
응답자 중 83.0%가 최근 1년 사이에 청계천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고, 찾아온 목적으로는 휴식과 산책(30.9%), 약속, 만남 등 교제(27.7%)가 절반을 넘었다. 이들은 최소 30분에서 최대 2시간 정도 머물렀다.
직장인 황중연 씨(43)는 “답답할 때마다 산책하고, 중구 무교동에서 동대문 방향 집까지 운동 삼아 걷기도 한다. 청계천은 일상의 여유를 주는 보물 같은 존재다”라며 웃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경복궁∼광화문∼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길은 필수 코스가 됐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온 징리(r례·72) 씨는 “한국 방문은 처음인데 돌아가면 청계천을 친구들에게 추천할 생각”이라며 “고가도로가 있던 도심 한복판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하천으로 바뀌었다는 게 신기하고 부럽다”고 말했다.
청계천 인근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이준환 씨(33)도 “외국인 바이어가 오면 청계천을 꼭 함께 걷는데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감탄한다”면서 “우리 회사로선 청계천이 비즈니스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도심으로 돌아온 자연
청계천은 인공 하천이지만 자연까지 복원시키고 있다. 환경부와 청계천시민위원회에 따르면 청계천의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화학적산소요구량(COD), 총인(T-P)은 복원 전 6등급(매우 나쁨)이었고, 부유물질(SS) 농도는 4등급(약간 나쁨)이었다. 그러나 복원한 지 2년이 지난 뒤부터 지난해까지 BOD, COD, T-P는 1b등급(좋음), SS는 1a(매우 좋음)∼3등급(보통)으로 수질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계천의 어류 역시 복원 전인 2003년 7종 175개체에서 2012년에는 피라미, 버들치, 돌고기, 참붕어 등 23종 2050개체로 크게 늘었다. 특히 수온이 따뜻해지는 5월이 되면 청계천은 물고기 세상이 된다. 산란기를 맞아 무리지어 한강에서 올라오는 잉어들과 수백 마리의 어린 물고기 떼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식물도 복원 전 44과 121종에서 2012년 80과 365종으로 크게 증가했다. 곤충과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야생 조류들이 물길을 따라 날아들면서 복원 전 9종에서 2012년 48종으로 급증했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교량을 둘러싸고 뻗어 있는 담쟁이넝쿨은 청계천이 조금씩 자생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며 “청계천을 명실상부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자연학습장으로 꾸밀 것”이라고 말했다.
▼ 밀려난 풍물시장 “우린 누가 복원해주나” ▼
“저기 청계천에 흐르는 게 그냥 물이 아니라 우리 피눈물이여….”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청계천 공구·조명상가. 낡은 저층 건물에 작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가는 고요했다. 건물 벽에는 금이 가 있고 문을 닫은 곳도 더러 눈에 띄었다. 가게 앞에서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상인 김모 씨(62)는 “하루에 손님 한두 명 보기가 힘들 때도 많다”며 “청계천이 복원된 뒤 물가에 인파가 몰려든다지만 우리는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계천 상인의 눈물
청계천은 푸른 물길을 되찾았지만,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상인들의 마음은 ‘복개(覆蓋)’되어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이 일대에 집중된 영세 제조업은 한때 한국 경공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지금도 종로3가에서 동묘 앞까지 3km 남짓을 걷다 보면 전기·전자, 조명, 의류·신발, 가구 등 3000여 개의 공장과 점포가 밀집해 명맥을 잇고 있다. ‘청계천에서 만들지 못하면 한국에선 못 만든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된 뒤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상원 세운상가협의회 사무국장은 “청계천과 상가의 연결이 끊어졌다. 상가들이 떠나면서 집적 효과도 떨어졌다”며 “차로가 좁아졌고 주차공간마저 줄어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고 말했다. 40∼50년 된 낡은 건물과 정비되지 않은 노후 골목이 오랫동안 방치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청계천시민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종로2가 사거리∼동묘역 일대 5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계천 복원 이후 변화된 주변 환경이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73.4%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주 대상 고객층의 감소’(27.0%) ‘주정차 공간 부족’(19.3%) ‘교통 혼잡의 심화’(14.2%) ‘주변부 시설의 개선 미흡’(13.6%) 등이 꼽혔다.
이 사무국장은 “재개발로 철거된다는 소문이 돌아 세운상가가 없어진 줄 아는 사람도 많다”며 “한창때 수입이 100이었다면 지금은 10∼20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청계천변에서 노점을 하다가 복원공사 이후 터전을 옮긴 풍물시장 상인들 역시 청계천은 아픈 기억이다. 지난달 말 찾은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가게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골동품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서울의 명물이었던 황학동 벼룩시장을 포함해 청계천 주변 노점상들은 청계천 복원과정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밀려났다. 어느 정도 정착할 때쯤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를 발표하면서 2008년 다시 짐을 싸 신설동으로 옮겨왔다.
상인 이모 씨(63)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이제는 손님이 뜸해 할 일 없이 나와서 자리만 지키는 꼴”이라며 “청계천 도로가에서 자동차 매연 마시며 좌판 열던 때가 훨씬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청계천을 떠난 사람들 “남은 건 절망뿐”
복원 이후 희망을 품고 청계천을 떠난 이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청계천 상인들을 위해 대체상가로 조성한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는 개장한 지 4년이 됐지만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있다. 1일 오후 가든파이브는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에만 사람이 몰렸을 뿐 개인 점포는 한산했다. 대부분 불이 꺼진 채로 가림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리빙관 지하 1층에서 수입품을 파는 유산화 씨(53·여)는 “2010년 입주 후 4년간 제대로 장사해 본 적이 없다”며 “요즘은 아예 가게를 비워두고 다른 곳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동안 옷을 팔던 청계천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지만 서울시민들에게 청계천을 돌려준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깨끗한 새 상가에서 장사하면 돈도 더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게 23m²당 7000만 원에 분양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도 믿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건 절망뿐이다. 가든파이브의 실제 분양가는 2억 원에 가까웠다. 빚을 내서 분양을 받았지만 장사가 안 돼 빚이 더 늘어났다. 유 씨는 “청계천에선 새벽부터 저녁까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바빠 보는 게 소원일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도 서울시와 SH공사는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상인들을 지원하는 대신 백화점 등 대형 임차인을 입주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이 때문에 관리비와 임차료를 체납했다는 이유로 가게에서 쫓겨나는 상인들도 늘고 있다.
상인들에 따르면 가든파이브에 이주할 청계천 상인 대상자 6097명 가운데 실제 입주자는 600∼70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돈이 없어 포기했다. 그나마 입점했던 상인 상당수가 점포를 팔거나 쫓겨나 남아 있는 사람은 150∼200명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 현재 명도소송이 진행 중인 상인도 20∼30명에 이른다. 한 상인은 “가게마다 빚이 기본적으로 3000만 원이 넘는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인공 어항’ 비판도 여전
복원된 청계천은 도심 속 시민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생태적 측면에서 보면 청계천은 본래의 사행하천(뱀처럼 굽이져 흐르는 하천)이 아닌 인공적인 직강하천의 형태로 복원해 ‘콘크리트 어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계천의 건천화를 막기 위해 1일 최대 14만 t의 물을 인위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계천 수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봄가을에 녹조가 발생하고 있다. 청계천 상류구간에선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지만 여름이면 대장균 수가 크게 증가한다. 진·출입로가 적고 보도 폭이 좁은 열악한 보행환경도 개선할 대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이 지속가능한 도시 하천으로서 역사성과 자연생태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세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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