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지난 2007년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해오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여행기는 부부의 여행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유라시아 횡단 부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단행본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여행자의 마음가짐
이탈리아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이 왔다. 떠나기 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독주인 그라파의 본 고장 바사노 델 그라파에 들러 알피니 다리를 구경하고 그라파도 한 잔 시음해 봤다. 술맛은 잘 몰라 뭐라 딱히 이야기할 순 없으나 정말 독하긴 독했다.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 들렀던 바사노 델 그라파의 명물, 알피니 다리.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촬영장소로도 알려졌다.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달려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은 것은 처음. 슬로베니아 역시 솅겐 조약이 적용되는 유럽 연합국이기에 입국 심사가 까다롭진 않았다.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듯이 그냥 표지판 하나 달랑 놓여 있을 뿐이라 오히려 약간 김이 샜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기념사진을 찍고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두 번째인 나라 슬로베니아에 입국했다. 지금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 하지만 끝자락이라고 해도 그 산세가 굉장히 험하다. 사실 나는 오르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쪽에 가깝지만, 이대장은 나와 반대로 산을 좋아하고 비포장도로를 좋아한다. 그래도 언제나 한 사람의 취향대로 다닐 수는 없는 법이니 이번만큼은 이대장의 의견을 존중해 험난한 산세를 타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고 정 안돼서 포기해도 후회는 없을 테니까.
*알프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두 친구를 만난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시작해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두 친구는 짐이 진짜 많았다. 패니어 뒤에는 트럭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식을 붙여 놓는가 하면 심지어 통기타까지 싣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짐을 싣고 가파른 알프스 산맥을 여행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저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슬로베니아에 들어서자 위풍당당한 알프스 산맥이 우리를 반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대화 끝에 헤어지며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캠프장에 자전거 여행자 친구들 몇 명이 또 있으니 가서 만나보라 권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두 팀이나 만나게 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것도 이런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서.
*가파른 경사 중간에서 만나 짧은 이야기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반가웠어.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앞서 그들이 말한 캠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안쪽에 들어가니 한참 떠날 채비를 하는 자전거 여행자 한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오후 3시, 우리는 잘 곳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이들은 이제 떠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여행 방식이다.
*자전거 여행 중인 독일 친구들과의 첫 만남. 도대체 빨래를 며칠 동안 안 한 거니.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던 그들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자전거로 유럽 여행 중이긴 하지만, 주목적은 암벽등반이라던 그들에게 자전거는 장비와 사람을 실어주는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친구들도 아까 만난 두 명과 마찬가지로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짐이 많은 멤버는 심지어 자전거조차 고장은 안 날까 싶은 고물이었다.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인지라 여행은 고사하고 앞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캠프장을 미처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자전거에 고장이 나 한참을 고친 후에야 그들은 겨우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며 내게 없던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여행을 그 자체로 즐기는 마음.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이들은 이런 고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즐거운 도전이라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짜면 어때. 유쾌하고 즐거웠던 독일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념하며.
나는 왜 저들처럼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 긴 오르막은 단지 자유로운 여행에서의 힘든 과정일 뿐 우리의 여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순간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을 보며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한 발 한 발 페달을 꾹꾹 밟아 나아갔다. 힘들 때마다 몰려 오는 모든 짜증을 벗어 던지기 위해 독일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지었던 해맑은 표정을 기억했다. 내 마음이 바뀌니 기분도 좋아졌고,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졌던 오르막도 어느새 즐거운 여행길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스 산맥의 정상에 섰을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환희가 나를 감쌌다. 힘든 오르막을 정복한 것 때문이 아니라 힘든 것도 즐겁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맛본 희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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