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교환대학생의 유럽여행기]작별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올 여름 터키 빌켄트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가게 돼 6개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런데 9월 개학을 앞두고 꿈에 그리던 유럽을 먼저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독일에 사는 친구와 함께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여행기를 시리즈로 실어본다.<14회>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인천공항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속을 밟고 출국장 들어갔을 때 그 감정과 비슷하다.'어부의 요새' 가는 길에 바라본 세체니 다리와 페스트 지역 풍경.
이곳 일주일 여정은 어느새 내 마음의 한쪽을 떼어갔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한 귀퉁이가 조금씩 부다페스트 거리, 여기서 만난 사람들, 숙소 구석구석에 묻혀버렸다. 근데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오전 7시 반에 눈을 떠 언제나 그랬듯이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씻고 방으로 돌아와 간밤에 온 메일과 카톡을 확인했다. 곧이어 조식이 차려졌다는 사장님의 방문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아침식사 패턴에 익숙해져 오늘도 한식 뷔페려니 하고 식당으로 갔다.
김치, 오이무침, 돼지고기당면볶음, 김치찌개, 김, 계란프라이 등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 식탁에 앉았다. 영진 언니, 강인 오빠, 은주, 사장님, 지현 언니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즐거운 한식 아침식사를 마쳤다. 또 어제의 지현 언니, 영진 언니, 강인 오빠와의 채무 관계를 정리한 뒤 커피까지 한 잔 했다.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날이니까 짐을 대충 싸놓고 지혜 언니, 세은 언니랑 같이 환전하러 나가서 9유로를 바꾼 뒤 헤어졌다. 그리고 은주랑 우리나라 교보문고 급 서점인 알렉산드라로 향했다. 안드라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오페라 역과 옥토곤 역 사이에 있다.알렌산드라 북카페 내부 모습.
영어로 된 헝가리 요리책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이렇게 멋진 건물이 서점이라는 것도 즐거웠다. 현대식 인테리어의 우리나라 서점과는 달리 유럽문화가 느껴지는 웅장하고 우아한 공간이다. 사실 우리는 책보다 북카페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단순히 모던하고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북카페를 상상했는데 일단 굉장한 고급 호텔카페 느낌이다. 서점에 있는 카페라서 북카페지 책은 한 권도 없고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벽 장식품들과 높은 천장에 멋진 벽화들이 카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우리가 주문한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케이크 두 개를 다 합쳐서 1380포린트(약 6000원)로 가격도 적당하다. 하나는 초콜릿 케이크인데 나는 자허토르테 보다 이게 맛있다. 입안도 모자라 온몸을 감싸는 초콜릿 맛이 일품이다. 또 다른 '보로쉬 토르타(Boros Torta)'라는 헝가리 전통 케이크도 느끼하지 않으면서 달고 맛있다.북카페 계단
이곳에서 4시간 정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행운의 시간이다. 다음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루트 짜고, 숙소·교통·도시 정보를 알아보는 좋은 기회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좋은 사람들을 정신없이 만나다 보니 다음 여행 준비를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갈 즈음에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너무 오래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옥토곤 비스트로. 1190포린트(약 5500원)에 뷔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싼 가격에 장사가 되나 싶을 정도로 멋진 식당이다. 더 좋았던 건 대부분 헝가리 음식들이어서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저트 케이크 종류만 10가지 정도다. 가장 유명한 굴라쉬를 포함해 수프는 3가지, 그릴 코너가 따로 있어서 4종류의 고기요리를 담아 주면 즉석에서 요리해 준다. 이 외에도 헝가리식 피클, 파스타, 피자, 치킨, 각종 고기요리, 밥, 볶음요리 등 음식 종류가 많다.
사실 먹는 거에 지쳐서 쉬는 시간에 은주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같이 여행하면서 은주가 얄미운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큰 마찰 없이 마무리한 것을 서로 격려하고 대견해 했다. 함께하는 이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된 점을 하나씩 얘기했다.
먼저, 은주는 나에 대해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에, 특히 어른들과 잘 친해지고 말을 잘 이어가는 것을 알게 됐다고 꼽았다. 생각이 많고 감정과 표현이 풍부하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남들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서는 걸 보고 존경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은주에 대해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만 친구들을 좋아해서 지금도 교환학생 때 만난, 다시 만나기 힘들 그들을 그리워하는 걸 알았다. 안정적인 삶을 좋아하는 편이며 사회적인 부나 명예보다 평범하고 소박한 인생을 꿈꾼다. 공부를 좋아해 여행하면서도 그 나라 정보와 언어,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여행하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구 관계, 단점, 아니면 여행 중에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 서로의 습관들을 얘기하다 보니 정말 끝이 없었다. "우리가 서로 많이 알게 되었구나" "이렇게 함께 무언가를 알아가고 즐겼구나"하면서 은주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마음의 앙금도 싹 녹아내렸다. 오히려 나와의 여행이 매우 뜻깊었고 늘 즐거웠고 행복했다는 은주의 말에 미안해졌다. "은주야,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질 것 같은 우리는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나서 부다민박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사장님이 배웅을 해주시면서 초코파이 두 개를 주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목이 메어 고맙다는 말도 못 꺼냈다. 사장님이 얼른 가라고 해서 뛰어가는데 갑자기 전공이 뭐냐고 뒤에서 소리치신다.
"사회학이랑 미디어에요. 일단은 피디가 꿈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신다. 아무튼, 데악 광장 역까지 가는 내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저녁때 사장님께 진 빚을 청산하는데 사장님도 아쉬워하신다. 이 빚 돈으로 갚지 말고 스태프로 일하면서 갚으라는 식으로 자꾸 권유하신다. "꼭 다시 올게요. 여기 정들었는데 어떻게 다시 안 와요." 부다페스트가 나한테 이런 의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 노트북을 끄고 누웠는데 춥고 비좁고 불편하다. 제일 구석자리라 화장실 가기도 힘들어 간신히 나왔는데 다른 칸은 몇 자리씩 비어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자리를 옮길 걸 왜 얘네랑 부데 끼면서 힘들게 쪽잠을 자고 있는지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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