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떠받치기 위해 국민을 호구로 취급하는 정부
정부가 13일 기업들로 하여금 중산층을 겨냥한 중대형 임대아파트를 공급하게 하는 정책을 내놨다. 그동안 부동산업계나 건설업계 이해를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숱하게 해온 주장을 반영한 것이라 대체로 예상했던 내용이기는 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야기한 적 있지만, 지금 정부는 전세난을 완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의 전세난은 정부가 집값 떠받치기를 지속하면서 만들어낸 전세난에 가깝고, 여전히 높은 집값 수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도 전세가 상승은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 기조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며 전세자금 대출 등으로 집주인들이 높여 부르는 전세가를 합리화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부실 기업이 시장 매각을 통해 건실한 주체에 돌아가야 그 기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 경우 부실기업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하우스푸어 집주인들이 가진 부실 주택, 이 집에 세들어 있는 ‘불안한 전세’가 시장에서 손바뀜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는 집값을 악착같이 떠받쳐서 가로막고 있다. 그러면서 저금리와 각종 부동산 부양책들을 동원해 집주인들에게 ‘버티라’는 신호를 주고, 집주인들은 정부 부양책에 기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전세 물량 공급을 더욱 줄이고 있다.
즉, 정부는 전세 세입자들을 매매나 월세 쪽으로 ‘토끼몰이’를 해서 어떻게든 집값을 떠받치고 부동산 다주택자나 건설업자들의 이익을 챙겨주고자 할 뿐이다. 어제 발표에서도 별도의 전세 대책이 없을 것임을 밝힌 것만 봐도 정부 속내가 무엇인지는 분명해진다. 부동산 대세 하락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전세물량이 줄 수밖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주는 측면에서 전세시장이 가급적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는 게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이다. 그런데 기업들로 하여금 민간 임대아파트 왕창 지어서 월세 전환을 촉진하겠다니 어이없다.
▲ 정부가 1월 13일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사나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등에 세제·금융·택지 공급 등에서 다양한 '당근'을 제시해 이들이 민간임대주택 시장에 적극 뛰어들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우면동 서초보금자리지구 공공임대아파트. ⓒ 연합뉴스 | ||
정부는 공공과 민간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전혀 없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5% 수준으로 10~30% 수준인 OECD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할 생각은 없고 민간에 공공에 준하는 온갖 특혜 주면서 공급해달라고 하는 꼴이다.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는 택지, 세제, 자금의 전방위적 지원책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임대료 상한선 5% 제한과 8년 임대 지속 조건 외에 거의 아무런 공공성도 확보하지 않았다. 공공성도 거의 확보하지 않은 채 이런 혜택을 주는 건 건설업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혜를 주겠다는 것뿐. 특히 민간 건설업자가 제안하면 그린벨트 지역까지 풀 수 있도록 했다. 이건 건설업자나 자산가들이 땅 사놓고 개발하는 식으로 투기를 버젓이 할 수 있게 하는 그린벨트 투기 조장책에 가깝다.
중산층 주거 문제가 정말 염려된다면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도록 하면 될 일인데, 집값은 억지로 떠받치면서 각종 혜택을 줘 8년짜리 임대주택을 늘리는 게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효성도 문제다. 전세를 포기하고 싸지도 않은 8년 짜리 임대주택에 살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부는 서울 평균 보증금을 2억 4000만원 정도로 잡아 기업형 민간임대의 보증금을 1억원, 월세 70만원 수준일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평균은 몰라도 실제로 중산층이 선호하는 전세가는 최소 3억~4억 수준을 넘는다. 이 경우 보증금 2억에 월세 100만원에 육박할 수 있다. 웬만한 중산층이면 자기 집을 소유하거나 전세를 살지 2억 보증금에 월세를 100만원 이상 내가며 민간임대주택에 살까. 입지 좋은 몇몇 곳을 제외하면 크게 수요가 없다.
정말 필요한 건 공공임대주택 확보다. 국민연금 등을 활용하면 건설 재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주장해왔듯이 상당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낮추면서도 채권 등에 투자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여줄 수도 있다. 재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만, 정말 재원이 부담된다면 민간 건설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온갖 혜택을 주택협동조합에 제공해보라. 훨씬 싸고 오래 살 수 있는 임대주택 협동조합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 선분양제 하에 오랫동안 계약금과 중도금 형태로 내오던 것을 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하게 해 각종 혜택을 그 조합에 주고 건설업체 이윤을 뺀 저렴한 시공비로 조합원이 구미에 맞는 주거를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
정말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전세가를 안정화하고 싶다면 과거 서울시가 공급한 장기전세(시프트)를 대량 공급하면 된다. 실제로 서울시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고, 높은 경쟁률까지 보였다. 이런 걸 왜 안 하나? 결국 할 마음이 없는 것일 뿐이다.
결국 이번 대책에 대한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공이 해야 할 건 하지 않고 각종 특혜 주며 하게 해보겠다는 것. 그런데 공공성은 거의 확보하지 못하고, 주거 부담을 낮추는 효과도 없다. 다만 그린벨트 투기 조장 효과 하나는 확실하다. 이게 정부가 할 짓인가.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근본적인 정책 기조의 전환이다. 한국의 주택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은 매우 왜곡돼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제도인 선분양제 등의 영향으로 주택 공급자에 비해 주택 소비자의 지위가 한없이 취약하고, 임대시장에서는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거의 없는, 세입자에게 매우 불리한 시장구조다. 이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정책방향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된 시장구조를 바로잡기는커녕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설업 비중을 개발연대가 끝나가고 생산가능인구와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도 계속 지탱하기 위해 집값 떠받치기에 올인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부동산 부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눈이 벌겋고 가계는 이 같은 부동산 기득권 구조 아래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빚 내서 집을 사게 하는 호구로만 취급하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이런 호구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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