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세 놓습니다.'
비상 걸린 '신림동' - 로스쿨 도입에 고시생 급감… 학원들 '공무원 준비반' 신설
지역 정치인들도 긴장 - 재선거 출마 예비후보들, 저마다 "사시 존치" 공약
최근 서울시 관악구 서림동(옛 신림동)에 있는 검은색 7층(지상 6층, 지하 1층)짜리 건물에는 새로운 임차인을 찾는다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연면적 800평 규모의 이 건물은 '신림동 고시촌의 양대 학원'으로 불리는 A 고시학원이 세 들어 있던 곳이다. 원래 '구관(舊館)'으로 불리던 인근 건물에서 사법시험 준비반을 운영하던 A 학원은 한 달에 1000명이 넘는 고시 준비생들이 강의실마다 꽉 차면서 2007년 신축된 이 건물에 추가로 학원을 열었다. 7개층 전체를 쓴 A 학원의 임대료가 보증금 10억원에 월세 4600여만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림동 고시촌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일로 꼽혀왔다.
사법시험 폐지가 2017년으로 다가오면서 '고시계의 메카'로 불렸던 신림동 고시촌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선발 인원이 1000명으로 늘면서 한때 2만5000명에 육박했던 사시 응시자가 로스쿨 도입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는 6000명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여기다 정부가 지난해 공무원 경력직 선발 확대와 함께 행정고시 선발 인원을 점차 줄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행시 준비생들도 줄었다. 4만명에 육박했던 신림동 고시생(사시·행시·외시) 숫자는 현재 2만명 이하로 준 것으로 고시촌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과거 '3대 고시'로 꼽히는 사시·행시·외시 강의만 개설했던 일부 고시학원은 최근 7급 공무원·경찰공무원시험 준비반을 새로 개설했다. A 학원과 함께 신림동 양대 고시학원으로 꼽혀온 B 고시학원은 지난해에 변리사 준비반 등 각종 자격시험 강의를 신설했다. 신림동의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사시 수강생이 80% 이상 줄었다"면서 "올해부터 사시 준비반을 아예 없애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고시생이 신림동에 몰려들면서 함께 성장해온 고시서점·고시생 식당들도 줄줄이 도산하거나 업종을 바꾸고 있다. 2000년대 초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 15개가 넘었던 고시 전문 서점은 현재 5곳만 남았고, 10개 이상이었던 헌책방도 4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가 한때 운영해 유명했던 '광장서적'이 2013년 부도난 일도 이런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16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장모(52)씨는 "새책을 파는 서점들이 줄도산하면서 헌책방들이 반짝 호황을 맞았지만 결국 헌책방도 상당수가 망했다"고 했다. 4년째 고시생 식당을 운영 중인 손모(53)씨는 "개업 때만 해도 식당마다 고시생들이 줄을 늘어섰었는데 3년 전쯤부터 '저 고향 내려갑니다'하고 사라지는 학생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고시원과 독서실도 높은 공실률 때문에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2000년부터 고시원을 운영하는 이모(65)씨는 "예전엔 방이 비었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70% 정도 방이 비어 있다"며 "고시생이 아닌 일반인용 '고시원'으로 업종 전환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때 자리가 없어 입실 대기자가 20명이 넘었다는 한 독서실은 현재 전체 325석 중 60%만 차 있다. 독서실 주인 한모 (77)씨는 "전체 입실자 가운데 사시 준비생이 90%가 넘을 때도 있었지만, 현재 사시 준비생은 16명뿐"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고시촌이 쇠락하면서 지역 정치인들도 긴장하고 있다. 오는 29일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은 저마다 '고시촌 살리기'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는 최근 고시촌을 찾아 "국회에 가면 '사시 존치'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다. 12년째 고시촌에서 복사 집을 운영하는 박모(42)씨는 "주변 상인들은 '사시 존치를 정말 이뤄낼 수 있는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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