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미래는 왜 어두울 수밖에 없나
지난 몇 세기 동안 특히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종교는 영향력을 잃어왔다. 몇 번인가 일시적으로 지엽적인 부흥의 기운이 감돌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쇠퇴 속도는 가속화됐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지지자가 많은 종교 그룹 중 하나는 10억 명 이상이 속한 ‘무교(Nones)’다. 미국인 6명 가운데 한 명이 이미 무교이며,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50년 경에는 4명 중 한 명꼴로 늘어날 전망이다. 교회들은 수백 개씩 무더기로 문을 닫고 주거시설, 사무실, 레스토랑 등으로 세속화돼 다시 태어나거나 그냥 버려지곤 한다.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종교는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사고방식이나 관습에 있어 일반 사회와는 더욱 이질화된 사람들로 구성된 극단적인 종교활동은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는 갈등과 분쟁만 야기할 공산이 크다.
상황을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다. 세계를 신음하게 할 질병, 물이나 석유를 둘러싼 전쟁, 인터넷(과 그에 따른 거의 모든 전자적 의사소통)의 붕괴, 혹은 아직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재앙이 남은 인류를 불행과 두려움에 빠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종교가 최고로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기도 하다.
쇠퇴의 배경
종교는 인간의 안전과 웰빙 수준이 높아지면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나온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 사실이지만 16세기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제네바를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앙 운동을 펼쳤던 그는 사람들이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수록 신앙에 덜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종교가 쇠퇴하는 작금의 세태를 개탄할 만큼 의식있는 이들이라면, 아무리 그것이 종교에 부흥의 날개를 달아준다 해도 인류가 재앙적인 상황에 빠지는 걸 반기지는 않으리라.
종교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없으며, 이유는 비교적 명백하다. 전자적 디지털 의사소통의 확산으로 이제 인류는 어떤 사실에 대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호지식(mutual knowledge)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어떤 조직이든 지나친 방해나 호시탐탐 엿보는 눈길 없이 사업을 수행하고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내세운다. 종교 기관들은 수천년 전 탄생 당시부터 비교적 쉽게 비밀을 유지하고, 다른 종교나 자신이 속한 종교의 내부사정 등 신도들이 접하는 모든 정보를 통제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종교 존립에 치명적인 요소는 호기심 많은 몇몇이 파헤치게 될 은밀한 정보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공유하는 편재지식(ambient knowledge)이다.
퍼니 비즈니스
웃음은 특히나 치명적이다. 한 몰몬교도가 자신의 종교를 풍자한 ‘사우스 파크’ 만화를 보고 있다고 치자. 그녀는 단순히 외부인들이 자기 종교를 조롱한다고 여기지 않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종교를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으며, 가소롭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해당 종교를 얕보는 내용을 쓴 작가나 이를 방영하기로 한 방송국의 결정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는 종교에 대한 그녀의 신념을 고조시킬 수도 있지만 신념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불변하는 진실이 아니라 불안한 인간의 삶에 의미와 힘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소위 ‘미끄러운 경사(slippery slope)’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공지능을 창안한 컴퓨터 과학자 존 매카시는 생전에 “미끄러운 경사가 보이면 나는 본능적으로 단(壇)을 쌓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수백년 동안 신학자들이 해 온 일이다. 대대로 지켜온 교리를 무너뜨리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수하겠다는 결의로 말이다. 어떤 종파의 경우 성직자가 의무적으로 성경에 쓰인 모든 문장의 “참된 진리”를 받들 것을 맹세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의심을 막아줄 방패가 아니라 민망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일례로 오늘날, 노기등등한 구약성서의 야훼(여호와)를 믿는 혹은 믿고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의 사랑을 강요하는 여호와란 심보 고약한 존재일 뿐이며, 수세기에 걸쳐 인간과 덜 닮은(하지만 “사랑”과 “용서”는 더 많은), 우리 기도의 응답 같은 존재로 대체돼 왔다. 여호와에겐 귀가 없지만 우리 기도를 “듣기는” 하며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한다”는 말은 그가 우리 기도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애둘러서 점잖게 표현한 것일 따름이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이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06년 발표한 벤슨 연구를 기억하는가? 타인을 위해 대신 기도해주는 중보기도의 효과에 관한 연구인데, 심장수술 환자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가 효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일부 경우엔 수술후 합병증이 작지만 측정가능한 정도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디어의 친종교 성향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상기 연구를 보도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금방 잊어버렸다. 하지만 만약 벤슨 연구가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냈다면 분명히 신문∙방송에 대서특필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지닌 친종교적 성향은 무너지기 쉬운데, 일단 와해되고 나면 신학자들은 경사면의 좀 더 아래쪽에 또 다른 단을 쌓을 것이다. 이제는 돌이 부족할 듯 하다.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종교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설문조사를 통해 교리보다 신의와 친교를 중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만약 운이 좋아서 인간의 건강과 안전 수준이 계속 향상되고 이것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면, 교회들은 선행을 일삼는 인도주의적 공동체 겸 친교 단체로 진화할지 모르겠다.
운이 나빠서 재앙이 덮친다면, 우리의 불안과 불행은 우리가 없어도 된다고 믿었던 종교가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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