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모란봉악단 베이징 공연 취소… 북·중 관계 이상기류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12일 저녁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한 모란봉악단의 첫 해외공연이 개막 4시간을 앞두고 전격 취소됐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 측이 공연을 중단시킨 게 아니라 북한 측의 불만 표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해빙의 흐름을 타고 있던 북·중 관계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연은 12일 오후 7시30분 베이징의 심장부인 천안문 인근 국가대극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악단은 11일 오후 공연장에서 현장 리허설을 하고, 12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숙소인 민쭈(民族)호텔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등 공연 준비는 순탄한 듯 보였다.
이상 기류가 감지된 건 정오 무렵이었다. 모란봉악단 단원 14명과 남성 공연단원 3~4명이 짐을 챙겨 나와 승용차 5~6대에 나눠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출국장이었다. 이들은 오후 4시7분에 이륙한 고려항공 편으로 귀국했다. 공연 시작 3시간여를 남긴 시각이었다. 곧이어 무대 장비가 국가대극원 밖으로 반출되기 시작했다. 모란봉악단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던 공훈국가합창단의 남성 단원들은 이미 공연장인 국가대극원에 입장해 있었지만 다시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합창단원들은 오후 8시가 지나 베이징역으로 이동해 전용열차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공연이 갑작스레 취소된 이유에 대해선 관계자 모두 함구했다. 공연단 관계자는 “공연을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면서도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오후 4시쯤 왕자루이(王家瑞) 전 공산당 대외연락부장(현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만나기 위해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1시간30분 만에 호텔 로비로 다시 나온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어 호텔을 빠져나간 지 대사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북·중 양측 사이에 심각한 마찰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표정이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공연 기간 연장에 합의할 정도로 순탄했던 상황이 번복된 건 예상 밖의 일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란 추측도 나돌았다. 정영철 서강대 북한학과 교수는 “모란봉악단의 상징성을 볼 때 평양 복귀 지시는 김정은이 내렸을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중국이 했던 모종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북·중 관계에 밝은 소식통들 사이에선 몇 가지 분석이 나왔다. 가장 유력한 건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 관련설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며 “오늘 우리 조국은 자위의 핵탄, 수소탄(수소폭탄)의 폭음을 울릴 수 있는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튿날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를 반박했다. 화 대변인은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수호 및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한다”며 “정세 완화에 도움 되는 일을 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공연을 취소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과거 행태에 비춰 개연성 있는 추정이다. 김정일은 2010년 5월 방중 때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과 북한의 대표적 예술단인 피바다가극단의 가무극 ‘홍루몽’을 함께 보기로 했다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고 귀국한 일이 있다.
또 모란봉악단 현송월이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해 ‘김정은의 옛 연인, 첫사랑’ 운운한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북한 당국이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인터넷에서 이와 관련한 기사나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것이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북·중 관계에 밝은 한 소식통은 “그만한 일로 공연 취소까지 가지는 않는다”며 가능성을 부인했다.
공연 취소 이유야 어떻든 북·중 관계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모란봉악단 초청공연이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물꼬를 튼 관계 복원 기류를 급상승시킬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지만 당분간 경색 국면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공연 취소가 ‘최고 존엄’의 권위와 관련한 북한 측의 항의 표시라 할지라도 북한 못지않게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엔 크게 체면을 손상시킨 일이다. 북한 공연단의 숙소에 나와 현장을 지켜보던 중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으로선 이번 공연이 모처럼 찾아온 기회였는데 이를 무산시켜버리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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