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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한국엔 왜 알파고 없나/기업은 눈앞이익 좇고 정부는 뒷북만

여행가/허기성 2016. 3. 15. 07:07

기업은 눈앞이익 좇고 정부는 뒷북만…20년 뒤처진 한국 AI

AI산업화 큰소리친 정부 고작 70억 예산으로 생색
알파고 등장하자 용어만 바꿔 부랴부랴 대책 내놔
기업 미래기술 투자 꺼려…`한국판 딥마인드` 요원

◆ AI 혁명 /  한국엔 왜 알파고 없나 ◆

 


"이세돌 9단은 한국에 있지만 알파고는 없다."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한국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과학기술계에서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지난해 벌인 정보통신기술(ICT) 수준 조사에서 우리나라 인공지능기술은 선진국 대비 2.6년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을 100점 만점이라고 했을 때 한국 수준은 70점이라고 평가했다.

서정연 서강대 컴퓨터학부 교수는 "100점과 70점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이 분야에서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승수 이화여대 컴퓨터학부 교수도 "불과 2년 뒤처졌다는 발표도 믿을 수 없다"며 "선진국과 20년가량 차이날 정도로 한국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는 많은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단기 연구에 편중돼 있다. 박승수 교수는 "대학은 기업이나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기면 연구를 계속할 수 없다"며 "인공지능 학자들이 지난 10년간 연구 분야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성은 사전에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업 성과는 없다. 시범적 실행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휴대폰에 음성인식기술 등 비교적 간단한 인공지능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관련 분야인 사물인터넷(IoT)과 모바일 헬스케어 분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구글이 인수한 가전기기 제어 스마트홈 솔루션을 연구하는 네스트랩처럼 실내 가전을 연결하는 스마트홈 분야에 인공지능을 접목한다는 계획을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가정용 로봇개발 벤처업체인 지보(JIBO)에 200억원을 투자하고 이달 스마트카 전자장비 사업에 뛰어들며 인공지능 관련 기술 개발을 예고하기도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SK플래닛과 엔씨소프트 등 인터넷·게임회사들이 음성인식과 딥러닝 기술을 개발하고 일부 제품·서비스를 선보이고 인공지능 팀을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세라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도 직접 기술을 개발한다기보다 인공지능 강자 구글, 애플과 협력을 맺고 차량 인포테인먼트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인공지능의 중앙처리장치를 만드는 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미래 지향적인 순수기술에 대한 투자를 꺼려왔다"며 "미래를 이끌 기술이 부족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 네이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기술이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등 언어인지와 사진·동영상 속 대상과 행동을 파악하는 시각인지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주요 IT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면서 이미 시장이 형성된 분야다.

자체 연구가 부족하다면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패스트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만 한국 대기업은 이마저도 소극적이다.

한국 IT 대기업의 M&A는 주로 기술력 좋은 중소·벤처기업을 싼값에 인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글이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4800억원에 인수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좋은 기술이라면 비싸더라도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재들이 회사를 창업하는 일도 드물다. 김진형 소장은 "딥마인드의 경우 3명이 공동 창업했고 이후 10여 명의 학생이 모여 기술력을 높였다"며 "한국의 뛰어난 인력들이 벤처 생태계가 척박한 한국에서 이 같은 일을 시도할 리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소극적이라면 정부라도 큰 그림을 그리며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알파고가 화제가 되자 부랴부랴 인공지능 관련 정책을 내놓는 게 고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인공지능 응용·산업화 간담회를 열고 인공지능 응용·산업화 추진단을 설치하고 인공지능 기반 항법 기술개발에 종전 130억원에서 70억원 늘린 2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기초과학을 책임지는 미래창조과학부도 마찬가지다.
알파고가 한국에 상륙하자 미래부는 "지능정보 사회 플랜을 연내에 발표하고 민간과 인공지능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민간연구소 설립을 이야기하며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래부가 집중 투자하겠다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모두 인공지능과 연결되는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것은 탁상용 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이미 발표한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와 지능정보 사회는 같은 의미"라며 "화제가 되면 부랴부랴 '용어'만 바꿔서 대책을 내놓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