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최초 湖南 재선.. '朴의 남자' 이정현] "공천파동 리더십 없던 인간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려 여론조사 해주고 언론에선 매일 등장 시켜" "朴 대통령 '不通' 비판? 그렇게 안 보는 견해도 있어 그분 스타일을 바꾸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봐"
아침에 통화하니, 이정현(58) 의원은 "황송하다, 황송하다"고 말했다. 그런 단어가 몸에 밴 듯했다.
오후 비행기로 그의 지역구 전남 순천에 내려갔다. 그는 유세 차량을 타고 다니며 당선 인사를 하다가 약속 장소로 왔다. 얼굴은 빛이 날 만큼 검게 탔고, 입에선 쉰 소리가 났다. 목 때문에 오면서 병원에 들러 주사 한 대를 맞았다고 했다.
"저는 촌놈입니다. 오피니언 리더가 아닌 다수 유권자에게 맞춰 바닥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후보자의 학력과 경력이 뛰어난 게 먹혔지만, 지금 유권자들은 말 안 해도 자기네 속을 잘 알아주는, 자기와 똑같은 후보를 좋아해요. 제가 노인정에 들어가면 '보일러 고치러 오셨소?'라고 물어요. 새벽 인력 시장에 가면 같이 일자리 찾으러 온 사람으로 여기다가 제 목소리를 듣고는 '어, 이정현 아니야' 하고 돌아봅니다."
―선거 막판에는 유권자들에게 "살려달라"고 울면서 매달렸다면서요?
"너무 절박해서, '한 번만 더 도와달라'고 말하다가 울먹이기도 했지요.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손을 흔들어줄 때는 너무 감격해 유세차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과거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던 부인도 선거운동에 나섰다고요?
"아내는 선거 기간 세 번이나 입원했습니다."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아내를 못 하게 해야 남편의 도리지.
"아예 내려오지도 못하게 했지요. 그런데 아침에 나보다 먼저 나가버리니…."
여당(與黨) 최초로 그는 호남에서 재선했다. 한 번은 할 수 있지만 두 번 당선은 쉽지 않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게 20%포인트까지 밀렸다.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이 이렇게 혹독한 심판을 받았지만 저는 호남에서 살아남았습니다. 19대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로 1년 8개월간 순천을 오가느라 비행기를 241번이나 탔어요. 지구 두 바퀴를 돈 거리입니다. 지역구 사무실에 따로 제 방을 두지 않았어요. '주민들이 나를 만나러 왜 사무실까지 오나. 부르면 내가 뛰어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왔는데 공천 파동이 터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여기에 와서 상대 후보와 함께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하지만 순천 시민들은 제 진정성을 믿어줬어요. 위대한 겁니다…."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은 왜 일어났다고 봅니까?
"우리 정당에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의 생각·욕심·야심이 작용하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대통령이 다 되어 있다고 믿고는, 과거 3김(金) 같은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전 구성원을 이끌고 갈 큰 가치도 없으면서, 신뢰조차 못 받으면서, 혼자서만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게 먹혀들 리가 없었던 거죠."
―누구를 염두에 두고 말합니까? 김무성 전 대표입니까,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입니까?
"공천 파동은 모두의 책임입니다. 공관위원장과 당대표가 그런 행태를 보일 때 방치하고 굴러가도록 한 당 구성원들의 책임이지요. 방관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까지 몰려서도 제동을 못 걸었고, 그 순간에도 아무런 리더십을 못 보였어요."
뒤이은 그의 말에서 표적(標的)이 분명해졌다.
"지금 정당은 가치도 리더십도 없어요. JC(청년회의소)만도 못합니다. 기껏 선거만을 위해 있는데, 그 선거 대비도 못 하지 않습니까. 선거가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정치 일정에 정해진 것인데 이렇게 개판을 만들어 놓았어요. 이런 정치 지도자가 국가 어젠다는 어떻게 끌고 가겠습니까. 이런 감이 안 되는 인간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려 여론조사해주고, 언론에서는 날마다 등장시킵니다."
―이번 총선은 '박근혜의 선거'였고, 참패에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주장도 있는데?
"모두의 책임입니다."
―모두의 책임이라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선거 참패하면 몇 명을 마녀사냥하고 한 달쯤 지나 다 잊어버립니다. 지금껏 늘 그래왔습니다. 그러니 국민이 선거 심판을 해도 정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선거 참패로 당사자들은 죽었는데 '누구 탓 누구 탓' 하며 부관참시해 뭐합니까. 우리 정당과 국회의 근본 문제를 치료해야 합니다."
―근본 문제라면?
"당 구성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걸 바로잡아야 합니다. 당 최고 의결 기구인 최고위원회를 열면 매스컴에 보여주기식 발언만 하지, 국가적 정책을 위해 진지하게 회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비공개회의로 들어가면 환담·잡담만 합니다. 이게 1년에 6백억~7백억원씩 세금 지원받는 우리 정당의 모습입니다. 이번에 난리를 쳐도 좀 지나면 원상으로 돌아갑니다. 저 권력, 저 오만을 어떻게 이겨냅니까. 백약이 무효입니다. 국회 실상을 까발려야 하고, 독버섯을 햇빛에 드러내야 합니다."
―어떤 국회 실상을 말합니까?
"국민은 국회의 실상에 대해 10%도 알지 못합니다. 가령 국회에서 예산 386조원 심의가 이뤄지는 과정이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습니다. 예산 집행 결과에 대한 평가도 거의 형식입니다. 있는 그대로 실상을 다 까발리면 국회는 안 바뀔 수가 없을 겁니다. 국민이 국회의 부조리를 깨야 합니다."
―새누리당 대표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비쳤지요?
"제가 세상을 바꿀 재목은 못 되지만 정치만은 꼭 바꿀 생각입니다. 이 뜻이 꺾이면 기꺼이 정치판을 떠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새누리당의 대표성이 있다고 봅니까?
"굉장히 있다고 봅니다. 저를 간단히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23년간 호남에서 다섯 번 출마했습니다. 여기서 단련된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와는 다릅니다. 저는 새누리당 안의 정서도 알고, 새누리당과 떨어진 곳의 민심도 체험했습니다. 저처럼 예외적인 인물이 역사를 만드는 겁니다."
―선거가 끝난 뒤 박 대통령과 통화했습니까?
"그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1984년 민정당 당료(黨僚)로 들어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였다. 식사 자리에서 그가 "호남을 버리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자 "어쩜 말씀을 그렇게 잘하세요"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그는 당대표의 수석 부대변인을 맡았다. 그 뒤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 집권 뒤에는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에 발탁됐다.
―본인이 '박(朴)의 남자'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도자의 성공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게 옳지, 냉소하고 팔짱 끼는 게 옳습니까. 그걸 '누구의 남자'라는 말로 만들면…."
―나쁜 뜻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신임과 총애를 받는다는 수사(修辭)이겠지요.
"그렇다면 전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분의 정치 철학과 일치했어요."
―어떤 정치 철학을?
"사심 없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생각·열정만 있어요. 그것에 끌렸어요. 저 역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런 박 대통령의 단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글쎄. 제가 말하기에는…."
―단점이 없던가요?
"왜 없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과 많이 접촉했어요. 대통령이 된 뒤로 제약이 있었지만, 국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직접 대화하고 설득했으면 합니다."
―밀실 인사 등 폐쇄적 의사 결정과 소통 부재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이를 간언했습니까? 대통령의 뜻과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참모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까?
"그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모르면서 '혼자 결정했네. 주변 말을 안 듣네'라고 섣불리 말합니다. 모든 결정에는 과정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를 공개할 순 없는 겁니다. 보기에 따라 '밀실(密室)'일지 모르나, 어떤 대통령이 '공개(公開) 인사'를 합니까. 공개할 경우 발탁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책임지고, 인사 로비를 어떻게 감당할 겁니까. 언론인 중에는 자기 기준으로 '불통(不通)'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 견해도 있는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모든 사람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이런 인사와 국정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보여준 선택의 의미를 파악하겠지요. 아마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다가가고 소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대통령의 스타일이 바뀔까요?
"스타일은 자신의 시각(視角)과 같은 겁니다. 그게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면 고쳐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 관점에서는 그분의 원칙과 정도를 최고 가치로 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걸 바꾸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로 여러 가지 불필요한 낭비와 갈등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국가 이익을 위해 본인 스타일을 바꿀 수 있지 않으냐고 요구하면 안 되는 겁니까? 대통령의 원칙이 늘 옳다고 주장하는 게 맞는가요?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저도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과 의견이 맞지 않거나 갈등 관계가 된 적은 없었습니까?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바깥에서는 그렇게 안 보겠지만, 저는 대통령께 해야 될 말을 안 한 적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 의견과 다른 최종 결정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건 보스의 권한입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혹은 미덕은 뭘까요?
"진정성과 의리입니다."
―배신(背信)에 대해서는?
"아주 나쁘게 봅니다. 솔직히 그런 인간을 저는 사람으로 안 봅니다. 자기를 믿어주고 정을 나눈 사람에게 등 돌린다는 것은 아주 독한 심사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사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견해차 때문에 멀어지는 걸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등 돌리고 총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보스를 설득해야지요. 그래도 안 되면, 나 같으면 판을 떠나든지 끝을 낼 겁니다."
처음엔 쉰 소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웅변(雄辯)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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