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갈망하는 이 시대 중년 초상화… 마음 맞는 이성을 통해 자아확인 욕망
결혼 12년째를 맞은 변호사 정수남씨(가명·44)는 아내와의 사이에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생인 남매를 두고 있다. 잘 나가는 법무법인 소속으로 변호사로서 능력도 뛰어나 그에겐 사건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직무 스트레스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2~3번은 판·검사를 만나야 했다. 늘 파김치가 돼 귀가했고, 주중의 집은 그가 잠깐 잠만 자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그나마
아내, 자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내와의 대화에서 항상 벽을 느꼈다. 대화 내용은 주로 아이들 교육문제였는데 부부간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아내는 정씨에게 “바깥으로만 돌던 당신이 애들 문제를 뭘 알아?” 하는 투로 말하곤 했다. 결국 정씨는 집에서 입을 다물게 됐고 내심 ‘나는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인가?’하는 회의를 갖게 됐다.
농담 아닌 진담 “여자 좀 소개시켜줘”
그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한 여성을 알게 됐다. 사건의뢰인이었다. 다행히 승소를 했고 감사 인사를 한다는 그 여성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지금은 세상을 뜬 자신의 아버지도 변호사였다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마흔둘. 평범한 외모의 직장여성으로 남편과의 사이에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대화가 잘 통했다. 정수남씨는 “그녀는 변호사였던 아버지 때문인지 내 생활을 잘 이해했고 자녀 교육관도 비슷했다”며 “무엇보다 늘 불평만 늘어놓는 억센 아내와 달리 상냥하고 따뜻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퇴근 후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일이 잦았다. 정씨는 “친구 사이로 만나 그녀가 다른 의뢰인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안락감과 설레는 감정이 섞이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고백했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유혹에 정신이 흔들리지 않음)’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를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40대 중년이야말로 이래저래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40대라면 대략 결혼생활을 10년 이상 했고 자녀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일반 기업에 소속돼 있다면 과장, 부장의 자리에 올라 책임이 막중한 때다. 40대 돌연사가 많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대의 대다수 기혼남성은 공허감을 느끼고 방황하며 돌파구로 ‘여자친구’를 갈망한다.
주변의 40대 기혼남성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이 40대라면 자문해보면 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은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친한 여성동료에게 걸핏하면 농담처럼 하는 진담이 “여자 좀 소개시켜줘”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연애는 성(性)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로부터 깊은 이해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고, 그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요즘 소울 메이트(soul mate)라는 말이 유행하듯, 그들도 지적 대화가 가능한 누군가가 절실하다. 성공한 성형외과 개업의인 최영석씨(가명·43)는 “성적인 문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 않으냐”며 “그보다는 이야기가 잘 통하면서 연인 같은 느낌도 줄 수 있는 여성이 그립다”고 말했다. 기혼남성의 여자친구가 술집여성이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직장동료나 일 관계로 만난 여성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숨가쁜 인생에 회의, 안식처 찾아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를 저술한 이미나 서울대 교수(51)는 “중년기의 남성은 이성과도 성적 대상에서 벗어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한다”며 “청년기에는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찾아다녔으나 이제는 정신적 극치감에 다다르는 데 눈을 뜨게 된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미모의 다이애나와 이혼하고 두 살 연상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파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한 것은 이와 같은 중년남성의 심리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인 브뤼와 브레넌은 남성이 중년기에 접어들면 친구들과 술 먹고 노래하며 흥청거리거나 회사에 쏟는 감정적 에너지에 회의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진솔한 인간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정을 돌아보지만 이 시기에는 아내도 구원이 여성이 아니라는 것. 이에 40대 남성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5개월 전 만났을 때 대기업 부장인 김종식씨(45·가명)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회사에 충성하며 일에만 매달려왔다”며 “너무 외롭다”고 토로했다.
“일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뛰었어요. 덕분에 동기보다 부장 승진도 빨랐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연봉은 많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도 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고요. 위에선 찍어 누르고 아래에선 똑똑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죠. 그렇다고 박차고 나갈 수도 없어 이래저래 눈치만 보는 상황이에요. 사실 아내도 예전에 제가 사랑했던 그녀가 아니에요. 아이들도 용돈 달라고 할 때만 아빠를 찾는 것 같아 씁쓸해요.”
친구보다 뜨겁고, 애인보다 차갑게
그런 그가 최근엔 눈에 띄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거래처인 중소기업의 여성 CEO와 친구가 됐다는 얘기였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지만 사회경험이 풍부한 데다 이혼녀인 그녀는 그를 깍듯하게 대하면서도 푸근했다. 그는 “가끔 퇴근 후 술을 한 잔씩 하며 인생을 이야기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섹스까지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아내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40대 기혼남성들이 말하는 여자친구 개념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성관계가 포함되지 않는 순수한(?) 관계부터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관계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씨(45)는 “비즈니스가 아닌 이상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자주 만나면서 어떻게 순수한 친구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느냐”며 “기본적으로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연애 감정이 없는 남녀간 소울 메이트라는 것은 언어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원 박찬호씨(41)도 “지적 대화가 통하는 대상을 찾는다는 말은 그럴 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며 “진심은 대화가 잘 통하면서 성적 매력도 있는 여성을 만나고 싶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보통신분야에서 근무중인 민석종씨(가명·43)는 ‘친구보다는 뜨겁고(hot), 애인보다는 차가운(cool)’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의 가정 또는 일상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만날 때는 서로에게 여러 모로 위안이 될 수 있는 관계를 일컫는다. 그는 “동성의 동료들과 퇴근 후 소주를 마시는 것도 일의 연장처럼 여겨져 지루하고, 아내와는 말이 안 통한다”며 “매력적인 여자친구가 있어 가끔씩 맥주라도 마시면서 일 외에 사는 이야기를 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까지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당장 그게 목적은 아니다”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라고 했다. 중년이 되면서 인간은 이전까지 외형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렬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결과 30대까지만 해도 직업적 성취를 위해 집중해 쏟던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에 쏟아 붓게 된다고 한다.
40대 기혼남성이 “외롭다”며 아우성이다. 잘 나가는 일부 40대 중년 남성들은 “넌 여자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넌 여자친구가 몇 명 있느냐”를 술자리의 화두로 삼는다. 물론 10대나 20대, 30대 남성은 물론 70대 노인까지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다. 하지만 40대 중년 기혼남성들이 찾는 여자친구는 얼굴 예쁘고 쭉쭉빵빵하기만 하면 그저 ‘선(善)’으로 여기는 젊은 남성들의 이상향·이상형과는 뭔가 다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바람났다”며 “큰일났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절반을 건너온 40대 중년의 기혼남성들.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그들은 왜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고지에서 짙은 고독감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여자친구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결혼 12년째를 맞은 변호사 정수남씨(가명·44)는 아내와의 사이에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생인 남매를 두고 있다. 잘 나가는 법무법인 소속으로 변호사로서 능력도 뛰어나 그에겐 사건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직무 스트레스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2~3번은 판·검사를 만나야 했다. 늘 파김치가 돼 귀가했고, 주중의 집은 그가 잠깐 잠만 자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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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내와의 대화에서 항상 벽을 느꼈다. 대화 내용은 주로 아이들 교육문제였는데 부부간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아내는 정씨에게 “바깥으로만 돌던 당신이 애들 문제를 뭘 알아?” 하는 투로 말하곤 했다. 결국 정씨는 집에서 입을 다물게 됐고 내심 ‘나는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인가?’하는 회의를 갖게 됐다.
농담 아닌 진담 “여자 좀 소개시켜줘”
그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한 여성을 알게 됐다. 사건의뢰인이었다. 다행히 승소를 했고 감사 인사를 한다는 그 여성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지금은 세상을 뜬 자신의 아버지도 변호사였다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마흔둘. 평범한 외모의 직장여성으로 남편과의 사이에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대화가 잘 통했다. 정수남씨는 “그녀는 변호사였던 아버지 때문인지 내 생활을 잘 이해했고 자녀 교육관도 비슷했다”며 “무엇보다 늘 불평만 늘어놓는 억센 아내와 달리 상냥하고 따뜻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퇴근 후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일이 잦았다. 정씨는 “친구 사이로 만나 그녀가 다른 의뢰인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안락감과 설레는 감정이 섞이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고백했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유혹에 정신이 흔들리지 않음)’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를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40대 중년이야말로 이래저래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40대라면 대략 결혼생활을 10년 이상 했고 자녀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일반 기업에 소속돼 있다면 과장, 부장의 자리에 올라 책임이 막중한 때다. 40대 돌연사가 많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대의 대다수 기혼남성은 공허감을 느끼고 방황하며 돌파구로 ‘여자친구’를 갈망한다.
주변의 40대 기혼남성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이 40대라면 자문해보면 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은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친한 여성동료에게 걸핏하면 농담처럼 하는 진담이 “여자 좀 소개시켜줘”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연애는 성(性)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로부터 깊은 이해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고, 그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요즘 소울 메이트(soul mate)라는 말이 유행하듯, 그들도 지적 대화가 가능한 누군가가 절실하다. 성공한 성형외과 개업의인 최영석씨(가명·43)는 “성적인 문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 않으냐”며 “그보다는 이야기가 잘 통하면서 연인 같은 느낌도 줄 수 있는 여성이 그립다”고 말했다. 기혼남성의 여자친구가 술집여성이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직장동료나 일 관계로 만난 여성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숨가쁜 인생에 회의, 안식처 찾아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를 저술한 이미나 서울대 교수(51)는 “중년기의 남성은 이성과도 성적 대상에서 벗어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한다”며 “청년기에는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찾아다녔으나 이제는 정신적 극치감에 다다르는 데 눈을 뜨게 된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미모의 다이애나와 이혼하고 두 살 연상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파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한 것은 이와 같은 중년남성의 심리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인 브뤼와 브레넌은 남성이 중년기에 접어들면 친구들과 술 먹고 노래하며 흥청거리거나 회사에 쏟는 감정적 에너지에 회의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진솔한 인간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정을 돌아보지만 이 시기에는 아내도 구원이 여성이 아니라는 것. 이에 40대 남성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5개월 전 만났을 때 대기업 부장인 김종식씨(45·가명)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회사에 충성하며 일에만 매달려왔다”며 “너무 외롭다”고 토로했다.
“일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뛰었어요. 덕분에 동기보다 부장 승진도 빨랐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연봉은 많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도 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고요. 위에선 찍어 누르고 아래에선 똑똑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죠. 그렇다고 박차고 나갈 수도 없어 이래저래 눈치만 보는 상황이에요. 사실 아내도 예전에 제가 사랑했던 그녀가 아니에요. 아이들도 용돈 달라고 할 때만 아빠를 찾는 것 같아 씁쓸해요.”
친구보다 뜨겁고, 애인보다 차갑게
그런 그가 최근엔 눈에 띄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거래처인 중소기업의 여성 CEO와 친구가 됐다는 얘기였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지만 사회경험이 풍부한 데다 이혼녀인 그녀는 그를 깍듯하게 대하면서도 푸근했다. 그는 “가끔 퇴근 후 술을 한 잔씩 하며 인생을 이야기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섹스까지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아내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40대 기혼남성들이 말하는 여자친구 개념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성관계가 포함되지 않는 순수한(?) 관계부터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관계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씨(45)는 “비즈니스가 아닌 이상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자주 만나면서 어떻게 순수한 친구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느냐”며 “기본적으로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연애 감정이 없는 남녀간 소울 메이트라는 것은 언어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원 박찬호씨(41)도 “지적 대화가 통하는 대상을 찾는다는 말은 그럴 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며 “진심은 대화가 잘 통하면서 성적 매력도 있는 여성을 만나고 싶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보통신분야에서 근무중인 민석종씨(가명·43)는 ‘친구보다는 뜨겁고(hot), 애인보다는 차가운(cool)’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의 가정 또는 일상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만날 때는 서로에게 여러 모로 위안이 될 수 있는 관계를 일컫는다. 그는 “동성의 동료들과 퇴근 후 소주를 마시는 것도 일의 연장처럼 여겨져 지루하고, 아내와는 말이 안 통한다”며 “매력적인 여자친구가 있어 가끔씩 맥주라도 마시면서 일 외에 사는 이야기를 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까지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당장 그게 목적은 아니다”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라고 했다. 중년이 되면서 인간은 이전까지 외형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렬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결과 30대까지만 해도 직업적 성취를 위해 집중해 쏟던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에 쏟아 붓게 된다고 한다.
40대 기혼남성이 “외롭다”며 아우성이다. 잘 나가는 일부 40대 중년 남성들은 “넌 여자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넌 여자친구가 몇 명 있느냐”를 술자리의 화두로 삼는다. 물론 10대나 20대, 30대 남성은 물론 70대 노인까지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다. 하지만 40대 중년 기혼남성들이 찾는 여자친구는 얼굴 예쁘고 쭉쭉빵빵하기만 하면 그저 ‘선(善)’으로 여기는 젊은 남성들의 이상향·이상형과는 뭔가 다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바람났다”며 “큰일났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절반을 건너온 40대 중년의 기혼남성들.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그들은 왜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고지에서 짙은 고독감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여자친구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40대
기혼여성도 ‘애인’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국성과학연구소가 기혼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과 한 달에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는 섹스리스 부부가 28%에 달했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1만6947명 중 43.3%의 기혼여성이 남편 외에 교제중인 애인이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애인이 없다면 앞으로 애인을 사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59.9%가 기회가 닿으면 애인을 사귀고 싶다고 밝혔다. 40대 기혼여성만 대상으로 한 조사는 아니지만 응답자의 상당수가 40대 여성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기혼여성 사이에서 남편 외 애인이 없으면 바보 취급당한다는 말도 우스갯소리로만 넘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세 자녀를 둔 전업주부 김미영씨(가명·43)는 다섯 살 난 막내아들이 자폐증을 앓고 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은 주말에만 올라왔고 김씨는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자폐 아들을 돌보느라 늘 녹초가 됐다. 그러나 주말에만 얼굴을 내미는 남편은 그의 이런 어려움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살림이 엉망”이라며 타박을 놓기 일쑤였다.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부부갈등은 골이 더 깊어졌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 어느 날부터 한 남자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들의 자폐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는데, 담당 의사에게 연정을 품게 된 것이다. 아이 치료를 위해 상담을 하면서 속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고, 담당 의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김씨는 “가끔 밖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며 “나를 가정부 취급하는 남편과 달리 한 여자로 사랑스럽게 봐주는 그의 눈길에서 행복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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