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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전주 사람만 아는 전주의 맛 6

여행가/허기성 2007. 12. 3. 20:28

 


[중앙일보 유지상]  양반가대한민국의 1등 맛 고을은 역시 전주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떡 벌어지게 차린 한정식의 앞에 ‘전주’가 붙으면 더 푸근하고 푸짐한 기분이다. 황·백·적·청·흑의 오방색 재료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비빔밥에도 ‘전주’가 앞서야 더 맛깔스럽다. 서민들의 해장 음식인 콩나물국밥도 마찬가지다. ‘전주’가 들어가야 숙취가 더 빨리 풀리는 느낌이다. 외지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전주의 유명 음식점엔 서울 등지에서 맛 나들이 온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전주 토박이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단다.

 “아쉽긴 해도 좋은 일 아니겠어요?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에 좋은 자리는 양보해야죠.” 서른세 살 전주 아가씨 양문희(아래 화심순두부 사진 속 인물)씨의 얘기다. “대신 우리는 실속을 찾아다녀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뛰어난 곳이지요. 외지 사람들에겐 나들이가 되지만 우리에겐 생활이니까요.”

 ‘2007 전주 천년의 맛잔치’가 9일부터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주를 찾았다. ‘명분보다 실리! 전주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신흥 맛집’을 양씨로부터 소개받았다.

<전주>글·사진=유지상 기자

30가지 넘는 푸짐한 반찬

 ■양반가=전주 사람들끼리도 대접하고 접대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상대에게도 부담을 덜 주며 모실 수 있는 곳이다. 4인상 한정식이 6만원.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받는 푸짐한 밥상엔 땅과 바다의 음식이 골고루 펼쳐진다. 밥상 중앙을 차지한 삼합. 묵은 김치를 깔고, 그 위에 알맞게 삭은 홍어와 껍질이 달린 돼지고기를 올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굴비구이가 대가리까지 씹고 싶을 정도로 알차다. 모양새를 보존하고 있는 손가락 크기의 황석어젓. 한 마리 그대로 뜨거운 밥 위에 올려 짠맛의 호사에 푹 빠져본다. 노란 알이 드러난 간장게장. 국물에 숟가락까지 갈 정도로 짜지 않은 게 매력이다. 젓갈과 장아찌를 포함해 기본 밑반찬 20여 가지, 굵직한 일품요리급 반찬 대여섯 가지, 청국장찌개와 된장국까지 넉넉한 밥상이다. 경기전 후문 근처. 첫째 셋째 일요일은 휴무. 063-282-0054.

오붓한 전통찻집

 ■고신(古新)=상호처럼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어우어진 전주 한옥마을의 전통찻집이다. 한옥 내부를 세련된 인테리어 감각으로 아름답고 편안하게 꾸몄다. 노란 조명이 포근한 온돌바닥에 친구와 앉으면 속 깊은 이야기가 절로 나오겠다. 상대의 푸념과 하소연을 어찌 모른 척할쏜가.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에 같이 귀 기울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는 고신차(8000원). 체리와 귤 등 과일을 말려 만들었다. 장밋빛에 감미로운 향기가 진하다. 무엇을 마실까 주저하는 손님에게 주인이 강력 추천하는 차는 황차(6000원). 녹차를 반발효한 것인데 몸 안의 묵은 기운을 씻어준다. 교동 한옥마을 내. 063-232-8922.

 

나들이 필수 간식 찐빵·만두

 ■백일홍 찐빵만두=주말에 여행을 떠날 때 전날 꼭 챙기는 간식 메뉴다. 찐빵·만두 모두 식어도 그 맛이 변치 않는다. 찐빵피랑 만두피가 똑같은 것이 특이하다. 한 가지를 만들어 두 가지로 나눠 쓰는 게다. 크기도 똑같다. 남자 어른 한입에 쏙 들어간다.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찐빵은 겉이 반질거리고 검은 빛이 돈다. 만두는 반대로 겉이 주글주글하고 붉은 빛이 돈다. 또, 찐빵은 매듭이 바닥 쪽으로 나있는 반면 만두는 위로 올라와 있다. 찐빵과 만두 모두 그 날 준비한 재료만큼만 판다. 출출한 오후 5시쯤 직원들끼리 사다리를 타서 사러갔다가 “오늘 다 떨어졌는데요”란 대답을 듣고 허탈하게 돌아설 수 있다. 1인분(8개)에 각각 2500원. 매주 일요일은 쉬는 날. 063-286-3697.

 굵은 면발, 구수한 국물 칼국수

  ■베테랑 칼국수=‘성심여고 앞 칼국수집’이라고 하면 작은 분식점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20여 년 전까지도 그랬다. 방과 후 남녀 학생들이 몰려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그런 분식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넓은 주차장과 홀이 있는 제법 규모를 갖춘 음식점으로 발전했다. 20여 년 전의 학생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동안 꾸준히 찾아준 덕인 모양이다. 겉모습이 달라졌어도 맛은 그대로란다. 칼국수라고 하는데 납작한 면발이 아니다. 소면보다 굵은 면을 칼국수처럼 푹 끓인 국수다. 마지막에 고명으로 올리는 계란이 살짝 익도록 낸 것이 특징. 그 위에 김·고춧가루·들깨가루로 올렸다. 먹을수록 면이 퍼지면서 구수한 국물 맛이 걸쭉하게 다가온다. 쫄면은 양배추와 콩나물과 함께 주는데 탄탄하게 씹는 맛에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반갑다. 칼국수와 쫄면은 각각 3500원. 063-285-9898.

 

땀 뻘뻘 흘리며 먹는 순두부

 ■화심순두부 중화산점=‘시설과 서비스는 전주 최고’를 내세우지만 ‘맛은 아직 부족하다’며 겸손함을 보이는 곳. 그래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깔끔한 음식점으로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환히 들여다보이게 만든 주방이다 보니 위생 걱정할 필요 없고, 상냥한 종업원들 서비스에 인상 찌푸릴 일이 없었다고. 대신 뚝배기에서 펄펄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는 경계 대상. 호호 불어서 입에 넣어도 입안을 데기 일쑤다. 밥 한 숟가락씩 살살 말아도 마찬가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워’ ‘매워’를 연발하다가 콧물까지 훌쩍이게 된다. ‘꿀꿀’한 날 혼자서 후후 불며 먹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겠다. 주인이 두부로 빈대떡도 만들고, 도넛·아이스크림까지 개발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순두부찌개 4000원, 두부빈대떡 5000원. 063-231-6500.  

낮엔 수퍼마켓, 밤엔 맥줏집

 ■전일슈퍼=낮엔 이름대로 수퍼마켓인데 저녁엔 술을 파는 맥줏집이 된다. 1층도 부족해 2층까지 운영한다. 실내에는 술손님이 가득하고, 그들의 식탁엔 술병이 빼곡하다. 어른 네 명이 앉은 곳이라면 10병은 기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왁자지껄한 장터분위기가 된다. 싼 술값과 황태·갑오징어 안주가 이곳의 매력. 술은 500mL 한 병에 1800원. 10병을 마셔도 고작 1만8000원이다. 황태는 부드럽게 손질해서 통구이(6000원)로 낸다. 갑오징어(1만3000원)는 쇠망치로 두드려 잘게 뜯어낸다. 중요한 포인트는 황태와 갑오징어를 찍어 먹는 검갈색 소스에 있다고 손님들이 입을 모은다. 다진 청양고추와 들깨를 가득 넣어 주는데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 해외여행 갈 때 따로 얻어간다는 사람도 있단다. 적당히 짜고 매워 계속해서 술을 마시게 만드는 맥주 귀신이다. 063-284-0793.  

■2007 전주 천년의 맛잔치=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화산체육공원·한옥마을·전주 시내 지정음식점 200여 곳에서 열린다. 주 무대인 화산체육관에선 매일 오전 10시부터 한국음식 세계화 대표음식 선정하기, 전주 8미(열무·콩나물·모래무지·황포묵·애호박·미나리·무·게)를 이용한 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경연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