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경제의 "눈"

“잘될 것이라는 믿음 있다면 모든 일 행복”

여행가/허기성 2009. 1. 13. 16:04

 

“잘될 것이라는 믿음 있다면 모든 일 행복”
[위기를 희망으로] 강현송 화진화장품 회장
2009년 01월 02일 (금) 남궁창성
“일에 몰두하면 저절로 행복이 찾아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재의 일에 ‘진실·정성·봉사’의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화진화장품의 최고 경영자인 홍천 출신의 강현송(62) 회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행복하게 일하는 법’을 꼽았다.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강 회장은 그동안 무려 37차례나 다른 직종을 전전하며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화진화장품을 직원 5만명의 굴지 기업으로 키워낸 성공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강 회장은 도전정신과 긍정의 힘을 믿고 원칙을 지킨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강 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본다.


   
▲ 강현송 화진화장품 회장
# 허약하고 소극적인 아이


유년기 시절 몸이 허약했던 강 회장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가 3명이라는 사실은 유년기 시절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고 큰 어머니의 이혼과 두번째 어머니였던 자신의 어머니가 9살때 돌아가시면서 그의 유년시절은 불운했다.

그러던 중 셋째 어머니를 맞은 아버지가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반대했던 새 어머니와 자주 다투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없으면 부모님이 다투시지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17살에 가출해 험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후 강 회장은 영월의 나무젓가락 공장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묵호의 오징어 잡이, 막노동, 사진사, 택시기사, 개 장사, 노점상, 건강보조식품 판매 등 무려 37개 직업을 전전하며 20대와 30대 초중반을 보냈다. 강 회장은 무려 37개 직업을 전전했던 것과 관련, “그때의 다양한 경험은 세상을 두루 다 볼 수 있는 깊은 안목을 생기게 해줬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배려심이 생겨 회사 경영에 큰 밑거름이 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 화진화장품을 만나다

강 회장과 화장품과의 인연은 30대 중반, 그가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고 있을 당시, ‘화장품을 팔아보라’는 주변의 권유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강 회장의 화장품 판매 실적은 주위를 놀라게 했다.

베테랑 영업사원이 보통 한달에 한박스(50개)를 팔 때 강 회장은 그것을 하루만에 다 팔아 판매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화장품 회사에서는 그에게 화장품 대리점을 시작해보라고 권유했지만 강 회장은 금전적인 문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단돈 3000원으로 회사 귀퉁이에 책상과 전화 한대를 놓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시작한 화장품 판매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한동안 순조로웠다. 하지만 위기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1980년대 후반, 할인코너들이 난립할 당시, 화장품 회사에서는 소비자 가격의 50%로 제품을 할인코너에 내놓은 것이었다. 강 회장이나 그의 대리점 직원들은 정상 가격에 물건을 팔고 있었던 만큼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회사에 찾아가 부탁도 하고, 사업계획서를 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한 때 100명 가까운 직원들은 모두 빠져나가 47명만 남았다.

강 회장은 위기 타개를 위해 뜻을 함께하는 직원들과 함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화장품을 생산해 판매했고 이것이 바로 화진화장품과 강 회장의 첫 인연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첫 6개월은 괜찮았지만 이후부터 이상하게 반품률이 높아졌다. 당시 공장에서는 처음엔 제품을 좋게 생산하다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재료를 적게 넣거나 싼 것으로 바꾸어 이익을 챙기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강 회장은 그 공장과의 거래를 끊고 직접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손해를 보더라도, 재료를 속인다는 것은 자신의 원칙과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강 회장은 원칙을 고수하며 참된 회사경영을 이끌어갔다.

하지만 안정도 잠시, 외환위기가 닥치며 1998년 2월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문제는 판매를 잘하는 직원들이 후배를 키우지 않아 그들의 영업실적이 나빠지자, 매출과 이익은 급감했고 결국 부도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강 회장은 200억원대의 빚을 졌고, 당시 30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100명으로 줄었다. 전국 70여개 대리점도 5개만 겨우 남았다. 재고품은 100명이 10년 동안 팔아야 할 만큼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결국 그는 ‘입소문 마케팅’을 생각했다. 어차피 제품을 팔지 못하면 수억원의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업사원과 그들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제품을 무상으로 주기 시작했고 한 번 제품을 써본 사람은 ‘좋다’는 입소문을 내 결국 재고를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부도 이듬해 1월 드디어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고 3년정도 돼서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강 회장은 “시련은 이길 수 있을 만큼만 준다는 것을 믿었고 그래서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내고향 강원도

강 회장은 “‘강원도’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며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고향인 홍천에 부모님의 선산이 있어 명절때 강원도를 가면 옛날 생각이 나 가슴이 벅차다”면서 “누구보다도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보다 살기좋은 강원도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강 회장의 애틋한 고향 사랑에 대한 마음은 그의 고향인 홍천에 화진화장품 공장 유치에도 나타난다.

홍천읍 연봉리 일대에 추진 중인 화진화장품 홍천공장은 5만9914㎡에 화장품 및 의약외품 생산공장, 미용기기 생산공장, 건강기능식품 생산공장 및 연수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기반공사 실시설계 용역중으로 2009년도 말 홍천공장이 완공되면 고용창출과 지역경기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강 회장은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도움이 되는 한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며 “내 고향 발전을 위한 일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 ‘일복 운동’ 전도사

(사)국민일복운동의 총재이기도 한 강 회장은 “‘일복운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을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노동에 불과하다”며 “진실·정성·봉사의 마음으로 일에 몰입하면 모든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원천인 한(恨)을 중화시켜 부와 성공, 행복, 행운을 끌어온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일복 운동 전도사’라고 부르는 강 회장은 중학교 졸업 후 막노동 등 37개 직업을 거쳐 국내 굴지의 전문경영인이 된 현재까지도 “일이 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있다.

강 회장은 “일복 정신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경제 부흥시대는 다시 한번 찾아올 것”이라며 일복 운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서울/박지은 pje@kado.net



TO. 강원도민

   
▲ 강현송 화진화장품 회장
주위에서 ‘내년에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라는 말이 자주 들리며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어려워진다면 지금의 위치에서 2~3배 더 노력해 현명하고 지혜롭게 위기를 타개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내년엔 더 잘 될 것이고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 본인이 선도에 서서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에 몰입한다면 ‘그까짓 위기쯤이야’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배우고 일하며 즐기는 것이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열심히 갈고 닦아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여러분들의 ‘일’이 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일을 행복하고 즐겁게 해낸다면 어떠한 위기가 내 앞에 닥쳐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원도민 여러분! 희망찬 새해에는 더욱 힘내시고 자기의 위치에서 보다 최선을 다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멋진 인생을 알차게 설계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