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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장의 힘!!

여행가/허기성 2010. 7. 5. 00:30

 

 

 

대한민국 성장의 힘

경부고속도로 40년

 

앞에 장애물도 없었을 뿐더러 보지 못하던 유리알 길을
평생 처음 100km로 달려보는 거니까. 황홀했죠
-최초의 고속버스 운전사, 유병호 氏

사람으로 말하면 심장부를 통하는 혈관. 혈통이죠.
그게 중심이 되니까 다른 것들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거지
-윤영호 (경부고속도로계획조사단장)

경부고속도로 없었으면 아마 지금 여기 살지도 않았을 거예요.
도로가 생기면서 우리 부락은 식당으로 번창했고
-금암리 마을 주민

 

■ 방송일시 : 2010년 7월 4일 일요일 오후8시 1TV
■ 연 출 : 이 재 오 PD

1970년 7월 7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총 428k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가 탄생했다. 연간 900만명의 인원이 투입되었고 동원된 장비만 165만대, 총 공사비는 429억에 이르는 이 공사는 착공 2년 5개월만에 이뤄졌다.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단기간에 최소의 비용(1km당 1억원) 으로 이뤄진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동력으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KBS 스페셜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에서 부터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나 국토 대동맥의 어제와 오늘의 의미를 살펴본다. 한국인의 가슴에 최초와 최고라는 자긍심을 불어넣은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의 미래상을 살펴본다.

■ 한국인의 의지와 열정의 산물, 경부고속도로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강휴게소 인근에 당재 터널이 위치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최대 난공사로 악명이 높았던 이 터널 공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두개의 산 사이에 터널을 뚫는 이 공사는 잦은 홍수와 발파만 하면 쏟아지는 지층탓에 인명 피해가 컸다. 이 구간의 (옥천-영동 24km)의 주감독을 맡았던 심완식외 2명의 건설 담당자들은 40년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지금은 김치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는 터널 앞에서 심완식씨는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밤낮없이 일해도 하루에 4m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당시를 회고했다. KBS 스페셜은 장비도 재원도 녹록치 않았던 그 시절, 의지와 열정으로 공사에 임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토목공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故전몽각 선생님의 사진을 통해 경부고속도로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 도로가 도시의 운명을 바꾸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기존의 3분의 1수준으로 단축시키며 물류혁명을 이끌었고 이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점이 되었다. 69년 구미 공업단지가 조성, 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인구2만3천명의 구미시는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입주한 코오롱 구미공장은 원자재를 들여 오고 생산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경부고속도로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얘기한다. 코오롱 박병용 회장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이 구미시를 일으켜 세운거나 다름없다” 고 얘기했다.

■ 브랜드가 된 도시들 (성주?천안)

국내 참외 생산량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경북 성주군은 지금 참외 수확이 한창이다. 성주 참외의 연간 판매량은 3200억원. 현재 국내뿐 아니라 영국, 일본, 말레이시아등의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60년대 수박을 재배했던 성주군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참외로 재배 업종을 바꿨다. 물류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유통기한이 짧지만 소득이 높았던 참외 재배가 가능해진것이다.

휴게소 대표 먹거리 간식으로 알려진 천안호두과자. 34년 천안의 작은 제과점에서 만들어진 호두과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휴게소를 중심으로 팔려나갔고, 천안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1만대에 불과했던 하루 이용차량은 오늘날 100만대에 이르고 있고, 3,4 곳에 불과했던 휴게소는 현재 160개(경부선에 36개)에 달한다.

■ 내 인생을 바꿔놓은 길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마을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난공사 구간인 당재터널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6월 취재진은 마을 어귀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전제구(72)씨를 만났다. 당시 삼십대 초반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잡역부로 일했던 그는 “하루 일당이 300원밖에 안되었지만, 그 돈으로 소를 사고,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개통 당시 국내 최초의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의 1기 운전기사 유병호씨는 “태어나 100km로 달려본 그때의 경험을 황홀했다”고 표현했다. kbs 스페셜은 경부고속도로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특별한 경험을 들어봤다.

■ 소통을 넘어 미래로, 경부고속도로

과거 40년 동안 경부고속도로는 국가의 대동맥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향후 4,50년을 내다보는 미래의 경부고속도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것인가. KBS스페셜은 진정한 소통과 화합으로 나아가는 경부고속도로의 미래상을 모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