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엽서 / 이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때론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지나는
그 길을 조용히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어쩌면 우린
우리가 가는 길이
끝이 어디인지
그 길의 끝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잊은채
그냥 무작정 뛰어만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조용히
나의 시간으로
돌아오십시오
서두르지마십시오
우리네 인생
아주 먼 길을
가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