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 <7> 모델 하영은의 누드▶ 돌이켜보면 알몸으로 세상을 마주한 건 태어날 때뿐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도 샤워할 때,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알몸이 되긴 하지만 제대로 응시해본 적은 없네요. 여전히 전 부끄럽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꼭꼭 숨겨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누드 모델’ 하영은씨는 그 몸속에 자신이 있다고 하네요. 웃는 나, 슬픈 나, 기쁜 나, 힘든 나…. 저도 제 몸에 새겨진 나이테를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발가벗다. 알몸이 되도록 입은 옷을 모두 벗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발가벗는다’는 단어에는 그것이 몸이든 무엇이든, 어떠한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타인의 시선 앞에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의 몸이라 할지라도 알몸 상태를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이들에게 발가벗은 몸은 자연스레 부끄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몸을 가릴수록 우리의 마음은 편하다.
발가벗는 것이 당당한 사람이 있다. 26년 경력의 누드모델 하영은(45)씨다. 하영은씨에게 벗은 몸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순수함이다. “누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인지. 저 사람이 떨고 있는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발가벗은 몸은 그 사람의 실체와 욕망, 본래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제게 몸은 순수함이죠.”
데뷔 무대는 아찔했지만 카메라는 달콤했다
오랫동안 몸은 수치스러움, 욕망, 나약함, 열등함의 상징이었다. 서양철학에서는 늙고 병들어 죽는 몸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정신보다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몸과 정신을 분리하고, 몸을 정신보다 아래에 두는 이원론은 플라톤에게서 시작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 이어졌다. 내가 나이고,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몸이 아닌 정신에서 찾아온 것이다. 기독교도 나체를 멀리했다. 성경 창세기 편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뒤 비로소 발가벗은 몸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아담과 하와(이브)가 나온다. 그 뒤로 벗은 몸은 수치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여자의 발가벗은 몸은 남자의 그것보다 더 찬밥 신세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자 누드 조각상이 많았다.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고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리스에서 남자의 발가벗은 몸은 곧 완전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반면 시민이 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인 여자의 누드는 금기시됐다. 남성을 유혹해 ‘비이성적’인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성도 있었다. 여성의 몸에는 몸에 대한 편견과 여성에 대한 편견 등 이중의 굴레가 덧씌워져 있다. 하영은씨는 누드모델로 일하며 이런 사회적 편견을 몸으로 깨달았다. 한국누드모델협회 회장으로 있는 하영은씨를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몸은 정신보다 못한 것으로
여성의 몸은 때론 성적대상으로
오랫동안 오해받고 왜곡됐지만
그에게 몸은 순수함이다
“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어요
평소에는 옷과 화장에 가려진
성격이나 생활습관, 삶이
그대로 묻어나거든요”
하영은씨는 “여자가 배워서 어디다 쓰냐”던 광주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7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결혼할 게 아니면 나가라”던 아버지의 불호령에 20살 때인 1988년 혼자 서울에 왔다. 낮에는 형부가 소개해준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종로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 월급과 아르바이트 주급을 동시에 받아 모처럼 마음이 든든했던 어느 날, 집이 있던 강북구 미아동 달동네에서 강도를 만나 가방을 통째로 뺏겼다. “10원 한 장 없으니까 눈앞이 돌아버린 거죠. 그때 누드모델 일 해보라고 꼬시던, 사진을 하는 선생님들이 생각났어요. 레스토랑에 자주 왔었거든요. 사람이 다급하면 뭐든지 혹하게 돼요. ‘얼만데요?’라고 물어봤다가 코 꿴 거죠. 그때 여직원 월급이 15만~16만원 하던 때인데 누드모델 한번 하면 10만원이니까 한달은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해 여름 하씨는 다른 누드모델 3명과 한탄강에 갔다. 6대 대형버스가 꽉 찼고 승용차에 봉고차까지 모여든 큰 사진대회였다. 한달 월급과 비슷한 누드모델료에 누드모델 자체가 귀한 시대라 각지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었다. 남자와 손 한번 못 잡아봤던 하씨는 두려웠다. “가운 한자락만 벗으면 되는데 죽어도, 때려죽여도 못 벗겠는 거예요. 누가 볼까봐 목욕탕도 못 가던 저였는데, 벗는 게 두렵고 겁이 났어요. 그랬더니 협박을 하더라고요. 네가 안 하면 여기 돈 내고 온 사람들 손해배상 하라고. 완전히 ‘쫄아서’ 눈에 초점도 없이 ‘얼음’ 상태에서 찍었어요. 사람들은 시커멓지, 카메라 소리는 찰칵찰칵 들리지, 햇볕은 어지럽지….”
데뷔 무대는 아찔한 기억이었지만 ‘한번 했으니 두번 못하랴, 두번 했는데 세번 못하랴’ 하다 보니 1991년부터 직장 생활을 접고 전업 누드모델의 길을 걸었다. 그 사이 부끄러움은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 받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학교에선 있는지도 몰랐대요. 엄마, 아빠는 바쁘셨고 형제들도 많아서 집에서도 관심을 못 받았어요. 엄마한테 ‘나 어렸을 때 어땠냐’고 하면 ‘자식새끼가 한둘이냐, 먹고살려고 뛰어다녔는데 느그들이 어땠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하셨죠. 고등학교 때까지 호적에 남자로 돼 있는지도 모르셨으니…. 그런데 모델 생활을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만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카메라 소리도 유혹을 했죠. 내가 주인공이라고. 절 찍은 작품으로 선생님들이 상 받았다고 하면 나도 뿌듯하고.”
몸과 마음은 서로의 거울일까. 누드모델의 몸에는 모델의 감정도 묻어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느끼는 게 제각각이다. 하영은씨의 또다른 누드사진. 이성재 사진작가 |
성별·나이·몸매가 중요하지 않은 일
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건 19세기 말 “나의 몸은 나의 전부다”라고 선언한 니체 이후다. 그 뒤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도 ‘의식이 몸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도 “나의 존재를 보장하는 것은 의식이나 정신이 아니라 몸”이라고 말했다.(이상 <여성의 몸: 시각·쟁점·역사>에서 재인용) 생각이 바뀐 탓일까. 발가벗은 몸, 곧 나체를 장려하는 자연주의자들이 등장했고,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등 예술가들이 누드를 통해 금기에 질문을 던졌으며, 나체시위는 효과적인 정치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심오한 철학이나 사회운동까지 가지 않아도 하영은씨는 경험적으로 ‘몸은 나’라고 말한다. “정말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모델이 있었는데, 벗은 몸을 보니 차가움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어요. 평소엔 옷과 화장에 감춰진 성격이나 생활 습관, 삶이 그대로 묻어나거든요. 저도 옛날에 찍은 제 누드사진을 보면 그때의 제가 금방 떠올라요. 몸이 사람의 나이테고, 일기장인 거죠.”
<나체의 역사> 저자 필립 카곰은 단순히 옷을 입지 않은 상태를 나체로, 옷을 입지 않고 고의로 시선을 끄는 것을 누드로 정의했다. 그래서 나체는 욕실에서, 누드는 예술 활동에서 일어난다. 누드모델은 단순히 옷을 벗는 사람이 아니다.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문법과 단어를 배울수록 언어능력이 늘어나듯, 몸으로 말하는 법도 특별한 노력을 거쳐야 배울 수 있다.
“누드모델 하겠다고 오면 처음에는 그냥 모델로 서게 해요. 그다음에 다른 사람의 누드를 보고 그리게 하죠. 세번째 땐 본인이 포즈 취한 거나 그린 그림을 거울을 보며 다시 해보라고 해요. 눈이나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해야 하거든요. 누드모델은 몸짓으로 감정이나 어떤 이미지를 전하는 사람이에요. 무언극이나 일종의 퍼포먼스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새롭고 다양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몸짓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뇌하죠.”
인체의 멋과 맛을 살릴 수 있는 몸짓, 감정을 담은 몸짓을 위해 하영은씨는 스포츠댄스, 발레, 한국무용, 탭댄스, 연기, 덤블링, 애크러배틱, 무술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배웠다. 침실이나 화장실 한 벽면에도 통거울을 설치해 자신의 몸을 늘 바라본다. 보디로션 바를 때, 화장할 때, 옷을 갈아입을 때, 스트레칭할 때마다 몸은 늘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누드모델이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일에는 성별, 나이, 몸매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한국누드모델 다음 카페에도 ‘체형이나 나이는 관계없다’고 쓰여 있다. “오전에 키가 188㎝인데 깡마른 남자 한 분이 찾아왔어요. 뼈밖에 안 보이는데도 오케이 했어요. 가만히 서 있는데도 그림이 될 수 있는 예술적인 이미지가 풍겨 나오더라고요. 날씬한 몸, 살이 삐져나오는 몸, 키 큰 몸, 키 작은 몸 전부 각자 풍겨 나오는 이미지가 달라요. 거기서 새로운 영감을 받으려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거죠. 전 오히려 20대 초반의 키 크고 쭉쭉빵빵한 여자 모델 보내달라는 곳엔 절대로 사람 안 보내요. 진정으로 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협회 회원 중 혼자서만 이름 공개하는 사연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누드에 흔히 붙는 꼬리표다. 여성을 쉽게 상품화, 성적 대상화 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선 벗은 여성의 몸은 금기 또는 호기심의 틀 안에 갇혔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지식의 미술관>에서 “서양미술사에서 관자(보는 사람)는 항상 남성으로 전제되어 있었고 여성 누드는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객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하영은씨가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든 것도 이런 편견에 맞서 당당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누드모델 하영은’이라고 명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한명도 제 명함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어요. 누드, 누드모델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니 명함을 집에 가져가면 부인이 술집 여자 취급했다고 해요.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이상한 여자도 아닌데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요. 하나보단 여럿이 뭉쳐 소리를 내야지만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협회 만들었어요. 제가 당당해지고 싶어서요.”
협회 회원수는 400여명이지만,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건 1996년과 마찬가지로 하영은씨뿐이다. 공개적으로 나설 수 없는 동료가 모델료를 떼이거나 성희롱, 협박을 받는 경우 대신 상대를 혼내주는 것도 회장인 하영은씨의 일이다. 협회를 만들고 나서도 요정이나 룸살롱 등에서 종종 전화가 걸려왔다. ‘그림을 그린 뒤 만져도 되느냐’, ‘그림 안 그리고 눈으로만 보면 안 되냐’는 문의 전화도 온다. 하영은씨는 특히 인터넷이 발달해 성인물과 쉽게 접촉하게 된 2000년대부터 누드를 외설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몸 상태를 깐깐하게 따지거나, 일대일로 수업하려 하거나, 믿을 수 없는 곳에는 절대 모델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하영은씨는 비혼이다.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봤다고 한다. 일과 자신의 몸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때론 그 몸이 사람 사이에서 벽이 됐다. “누드모델 활동을 오래하다 보니 남자들이 접근해 올 때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을 의심하게 돼요. 제 모든 걸 좋아해서 쫓아온다고 못 믿는 거죠. 남자는 다 똑같은 놈이구나 하고. 하하.”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그 몸이 느끼고 지각하고 대상과 부딪친 결과물이 마음이다. 그래서 몸과 정신은 분리된 게 아니라 서로 얽혀 있다. “모델의 몸은 그냥 몸이 아니라 그의 삶과 고뇌, 희로애락이 배어 있는 몸이죠. 한 사람의 인격이 그 몸에 녹아 있는 겁니다. 그런 몸을 ‘성적 대상’이란 한가지 관점으로만 제한하는 건 폭력이 될 수 있죠. 몸은 그 내용을 읽어줘야 한다는 점에서 텍스트하고 똑같아요. ‘I am my body’라는 문장은 영어를 알지 못하면 흰 종이 위에 찍힌 검은 잉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김종갑 몸문화연구소장(건국대 영문과 교수)이 말했다.
26년간 몸으로 말하며 살아온 하영은씨에게 “왜 누드모델을 계속 하느냐”는 질문은 바보 같은 물음이었을 게다. 26년은 내가 곧 누드모델이고 누드모델이 내가 되기엔 차고 넘치는 시간일 테니. “제 생명과도 같아서요. 이 일을 하면 살아 숨쉬는 것 같거든요. 제게 기쁨도 슬픔도 주면서 많은 걸 느끼게 해준 이 일이 아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을 못하겠어요. 이게 내 삶이니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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