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만든 집' 모듈러 주택 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거주하는 사업가 이모 씨는 최근 강원도 원주시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기 위해 업체를 찾던 중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포스코A & C에 의뢰해 '모듈러(modular) 공법'으로 단독주택을 지었다.
이 씨가 모듈러 주택을 선택한 것은 원주시 주택의 부지가 산 중턱에 있어 공사장 인부나 자재를 실어 나를 차량의 진입이 쉽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공장에서 제작이 가능한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45일 내외면 준공이 가능하고 내진·내풍·단열·내화 등 기능적인 면도 뛰어나다는 사실에 마음을 굳히게 됐다.
이 씨처럼 모듈러 주택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모듈러 주택은 한마디로 공장에서 만든 집을 말한다. 구조체·설비·배관·전기배선·조명·온돌 등 전체 공정 중 70~80% 정도를 공장에서 진행하고 현장에서는 단순 조립 및 내·외장재 마감 등 마무리 시공을 한다.
무엇보다 약 2개월이면 집 한 채가 완성되기 때문에 일반 철골구조에 비해 현장 공사 기간을 최대 50% 이상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면 원가도 낮출 수 있고 차후에 집을 통째로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는 데다 구조물의 재활용도 가능해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 모듈러 주택 사업에 뛰어든 대표적인 업체로는 포스코A & C·(주)유창플러스·금강공업·(주)스타코 등이 있다. 특히 유창플러스와 금강공업은 군대 내의 미혼 장교, 부사관 등을 위한 독신자 숙소 건립에 주력하고 있다.
기자는 8월 14일 포스코A & C가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강남구 청담동의 '뮤토(MUTO) 청담'을 찾았다. 지난해 6월에 준공된 뮤토 청담은 총면적 513㎡, 지상 4층 규모(1층은 필로티)로 전용면적 36㎡의 원룸형 주택 18가구로 구성돼 있고 현재 포스코의 외국인 직원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원룸은 천안의 모듈러 공장에서 구조체를 비롯해 부엌 가구 등을 빌트인 시스템으로 최대 80%까지 제작해 현장 운송했고 시공 현장에서는 크레인으로 단 3일 만에 조립 후 설치했다. 전체 공정 기간은 겨우 한 달 남짓이었다.
공장에서 만드니 시간·돈 아껴
엄경흠 포스코A & C 홍보 매니저는 "직원들의 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만든 주택이라는 것 때문에 튼튼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단열·층간소음·내진·내풍 등에 더욱 탁월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포스코A & C는 국내시장을 키우는 동시에 호주·러시아의 근로자 숙소, 일본의 이재민 임시 거주 시설, 아프리카 말라위의 병원 등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모듈러 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주택 정책인 행복주택 사업 지역에 '모듈러 주택'을 시범 공급한다고 밝혀 대중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가좌지구에 들어서는 행복주택 650가구 가운데 30㎡, 5층 이하의 원룸형 주택 20가구를 모듈러 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노원구 공릉동에 모듈러 공법을 적용해 총 18호 규모의 기숙사를 공급한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올해 9월 착공을 거쳐 11월에 준공할 예정이다.
정부는 건축 기간이 짧고 설치와 철거 등이 간편해 자원의 재활용 효과가 크기 때문에 모듈러 주택을 공공주택에 활용할 만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역시 건축비 인하다. 모듈러 주택을 1만 가구 이상 대량생산하면 건축비를 3.3㎡당 300만 원대 중반까지 낮출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의 시세가 3.3㎡당 100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이처럼 모듈러 주택이 인기를 끌자 해당 주택 사업에 뛰어든 건설사도 속속 늘어나고 있고 일본 업체들도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국내시장 공략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본 업체들의 한국 진출에 가속도가 붙은 것은 그간 한국 업체들에 비해 '고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엔저의 영향으로 건축비가 3.3㎡당 800만~900만 원대로 내려와 경쟁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은 세키스이하임·미사와홈·카세창고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속속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마케팅의 시동을 건 상태다. 대개 일본에서 80% 이상 만들어 부산항을 통해 들여오는 식이다.
일본의 유명한 조립식 주택 업체인 세키스이하임은 최근 한라건설 계열사와 손잡고 한국 법인인 한라하임을 세웠다. 세키스이하임의 한국 영업을 총괄하는 권재범 한라하임 부장은 "우리는 공장에서 제작한다는 측면에서 건축업보다 제조업에 가깝다. 한국에서 주문해도 두 달 정도면 집을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용인·판교·일산 등 전원주택 단지 등에 모듈러 주택을 판매했다. 고객들은 복층 구조의 148~198㎡(45~60평대)를 가장 선호한다.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리히터 규모 8.2의 지진에도 견디는 등 튼튼한 내진 설계 등으로 일본 업체가 만들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간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어 권 부장은 "자녀들이 결혼해 부부만 남게 됐거나 3세대가 함께 살게 될 때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집을 새롭게 조립할 수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가져갈 수 있는 등 주택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이라는 개념의 새로운 주택 트렌드가 향후 10년 내에 퍼지게 될 것이란 해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국내의 모듈러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유일한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03년에 도입된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2010년 427억 원 규모 정도였는데 2012년말 기준 1500억 원 이상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비록 모듈러 주택 시장의 전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성장률만큼은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2020년에 최소 9400억 원에서 최대 3조4000억 원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주택' 모듈러 도입에 관심
유 연구원에 따르면 모듈러 주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영국과 일본이다. 영국은 1950년대부터 공공 주택 등에 모듈러 기술이 적용돼 왔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듈러가 고층 건물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여름과 겨울의 강우량이 많은 영국은 현장 시공이 중단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날씨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장 제작용 주택에 일찍부터 눈을 떴다.
일본도 워낙 소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한 정교한 건설 기술이 오래전부터 발달했기 때문에 자연히 모듈러 공법을 주택에 활용해 왔다.
유 연구원은 "1인 가구 등 소형 가구의 증가 등에 따른 도시형 생활주택 활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공기 단축의 효과가 뛰어난 모듈러 건축 시스템이 민간 부문의 소형 주택에 적용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공공 임대 등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주거 안정화 대책으로 모듈러 주택을 활용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올해 주요 연구 과제 중 하나로 모듈러 주택을 선정한 SH공사 도시연구소의 김형근 연구위원은 "현재는 3~4층 정도의 저층에만 적용되는 모듈러 방식을 10층 이상의 공공 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모듈러 주택에는 컨테이너 방식으로 만들어 쌓아 올리는 방법과 별도의 철골구조 프레임을 짜 놓고 그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방법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 모듈러 공법의 강점이 희석되기 때문에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기대하는 가격대와 업계의 주장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어 조정에 시간이 걸릴 듯하다. 건설업계의 한 시공 담당자는 "정부와 시장가격 간의 갭이 너무 크다. 현재 한국 업체는 3.3㎡당 500만 원 선이며 일본 업체는 900만~1000만 원 선이다. 정부가 원하는 300만 원 정도의 가격에 공급하려면 저렴한 재료·부품을 사용해 야 하기 때문에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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