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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손 벌리기 싫다".. 가입자 가파른 증가세

여행가/허기성 2013. 10. 14. 06:01

많은 직장인들이 은퇴 후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열심히 저축해도 자녀 교육이나 결혼자금 등으로 지출하다 보면 노후에 손에 남은 건 집 한 채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노후에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ㆍ기초연금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이 있는 사람에게는 노후자금 마련 수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집을 은행에 맡기고 매달 일정액을 연금형태로 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을 담보로 분할 대출을 받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만기는 죽을 때까지다. 대출금 상환은 담보로 잡은 집, 즉 대물(代物)로 한다는 게 특징이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주택연금 가입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다가 은퇴 후에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덜컥 집을 팔아서 그 돈을 쓰기에는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재산세 감면에 이자 소득공제로 절세효과도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출시 첫 해인 2007년 515건이 가입된 주택연금은 해마다 가입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까지 누적 가입건수가 1만2,299건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서는 8월까지 3,527건이 새로 가입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가 늘었다. 지난 6월 사전가입 주택연금이 발표된 데 이어 8월 주택소유자가 만 60세 이상이어도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요건이 완화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종전에는 부부 모두 만 60세 이상이어야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었다. 부부가 공동으로 소유한 주택의 경우 종전에는 부부가 모두 만 60세 이상이어야 했지만 이제는 두 사람 가운데 연장자만 만 60세 이상이면 된다.

대출 만기는 사망시점이며 대출금은 가입자가 보유하고 있는 집을 팔아서 갚는다. 물론 가입자가 직접 집을 팔아서 갚을 필요는 없고 주택금융공사가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넘겨서 청산한다. 이같은 대출-상환구조 때문에 주택연금을 '역(易)모기지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택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종신형인데다 보유 주택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가입할 때 보장했던 연금이 그대로 지급된다. 또 다른 장점은 부부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사망하더라도 나머지 한 사람이 해당 연금액을 계속 승계해 수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우자의 거주 역시 계속 보장된다. 별도의 중도상환 수수료 없이 전액 또는 일부 정산도 가능하다. 또 주택연금 대상 주택가액이 5억원 이하면 재산세가 25% 감면되고 이자비용은 200만원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도 받을 수 있어 절세 효과도 있다.

집이 있는 은퇴자라고 모두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선 1가구 1주택자로 집값은 9억원 이하여야 한다. 가격은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 시세가 기준이다.

1가구 1주택자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지만 토지나 상가 등 주택외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보유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가입자의 신용도 역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입하려면 비용을 내야 한다. 우선 집값의 2%에 해당하는 보증료를 내야하고 근저당 설정비 등과 같은 부대비용도 들어간다. 미래에 팔 집값을 미리 당겨서 쓰는 것인 만큼 대출 이자도 내야 한다. 다만 금리는 3개월 CD금리에 1.1%를 가산하기 때문에 일반 주택담보대출금리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기대 수명 늘고 있어 빨리 가입하는 것이 유리

=주택연금이 모두에게 좋은 상품은 아니다. 이자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만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 한 채 외에는 별다른 자산과 소득이 없는 경우라면 주택연금 가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주택 가격이 너무 낮거나 높은 경우에는 효용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재 주택연금 가입자 대부분은 서울 강북권 등 수도권 소재 2억~4억원대의 주택 소유자들이다.

주택금융공사가 2007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주택연금 가입자를 분석한 결과 평균 2억8,000만원의 집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지급되는 연금은 평균 103만원이었다. 연령대로는 70대가 49.6%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하(35.2%), 80대 이상(15.2%)이 뒤를 이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60대 가입자의 비중이 30%에 불과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조기 퇴직 증가 등에 따라 올해부터 가입이 부쩍 늘면서 평균 가입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주택연금을 가입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빨리 가입할수록 유리하다. 연금 수령액을 책정할 때 쓰는 기대 수명 추정치가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통계청의 2005년 생명표를 기준으로 했지만 2010년 생명표를 기준으로 바뀌면서 기대여명이 7~9% 가량 늘어나 수령액이 줄었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제도 도입 초기에는 정착을 위해 아무래도 최대한 가입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지만 가입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혜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노년층이 늘고 있어 향후 주택연금 가입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올 4월에 실시한 '2013년 주택연금 수요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노년층 중 보유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25.7%에 달했다. 특히 일반노년층의 주택 비상속 의향은 2008년 12.7%, 2010년 20.9%, 2012년 21.3%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장상인 주택금융공사 연금부장은"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보유 주택을 담보로 평생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지 않는 대신 손 벌리지 않고 노후를 안정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