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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원대 땅 '재개발 커넥션'이 삼켰다"

여행가/허기성 2014. 3. 14. 04:51

"1000억원대 땅 '재개발 커넥션'이 삼켰다"

서울시는 2000년 7월 종로구 중학동 77번지 일대 8163㎡(2474평)를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한국일보 사옥 바로 옆에 위치한 금싸라기 땅이다. 자본금 3억5000만원의 작은 회사인 KCD가 사업자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이 회사 대표 송 아무개씨는 2002년 7월19일 사업 부지에 포함돼 있는 79㎡(24평) 규모의 한옥을 매입했다. 재개발 지정 만료를 5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시행 인가 신청서는 지정 만료 하루 전에 접수했다. 도시 재개발법상 토지 면적 3분의 2 이상, 토지 및 건물 소유자 총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사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송씨가 지주들로부터 동의를 받은 토지 면적은 40.49%에 불과했다. 소유자 동의율도 50% 수준이었다.

시행 자격 미달이기 때문에 재개발구역 지정도 해제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종로구청은 6개월 안에 3분의 2의 동의를 받는 조건으로 사업을 승인했다. 신청 마감일인 7월24일 이후에 접수된 서류를 편법으로 받아주기도 했다. 이후 군인공제회는 송씨에게 600억원을 대출해줬다. 송씨는 군인공제회 자금으로 인허가에 필요한 토지를 추가로 매입했다. 불과 22일 동안 4260㎡(1289평)의 토지를 쓸어 담았다. 토지 매입을 위해 나간 돈만도 600억원대에 달한다. 종로구청은 2003년 2월 KCD의 재개발사업을 최종 인가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더케이트윈타워.
지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시행업자 송씨와 종로구청 공무원, 군인공제회 간의 검은 유착설이 지주들 사이에 퍼졌다. 최영환 미진통상 회장은 2003년 5월 인허가 취소 소송까지 제기했다. 최 회장은 사업 부지에 1775.6㎡(538평)의 토지와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2005년 3월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 송씨의 재개발사업 인가도 취소됐다. 당시 송씨의 소송 대리인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었다. 이 전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대법원장에 취임하기 넉 달 전에 재심 청구 소장을 냈다가 두 달 만에 소를 취하했다.

이후 KCD는 법인명을 인크레스코로 바꾼 후 다시 사업 인가 신청서를 냈다. 이 과정에서 금호산업과 우리은행이 '백기사'로 등장한다. 우리은행은 인크레스코에 1500억원을 대출해줬다. 시공사로 나선 금호산업이 대출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다. 군인공제회는 2006년 4월 원금 600억원과 이자 190억원을 회수한 후 사업에서 손을 뗐다. 군인공제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군인공제회는 약속한 이자 11% 중 1%와 100억원의 확정 수익까지 탕감해주었다. 손해액만 150억원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종로구청은 2008년 3월 인크레스코의 사업을 최종 인가했다. 인크레스코는 이듬해 5월 250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본격적인 재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시공사였던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금호산업은 보증 채무를 줄이기 위해 중학동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뗐다. 시공사는 한화건설로 바뀌었다. 시행사와 대출 은행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가 교원공제회와 신한은행 등이 최종적으로 사업을 인수했다. 교원공제회는 2013년 5월 지하 6층, 지상 16층의 쌍둥이 빌딩인 더케이트윈타워를 준공했다. 부동산 개발이나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교원공제회가 이 사업에 투자해 큰 시세 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IB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돈 굴릴 곳이 없어 금융권이 고민하고 있다"며 "이 빌딩의 입지 등을 감안할 때 매년 수익률이 8%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에 출자했던 금융기관 역시 적지 않은 이자 수익을 챙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티'에서 소외된 이들도 있다. 개발 초기 사업을 반대했던 지주들이다. 최영환 회장은 "평가액만 1000억원 이상인 땅을 개발하면서 공시지가 수준인 250억원만 법원에 공탁했다"며 "재산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최 회장의 땅과 건물은 이미 시행사와 시공사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지분이 쪼개져 있었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입었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이 여러 차례 수사를 했다. 고소장도 제출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영환 미진통상 회장이 서울 중학동 재개발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탁금 수백억 원 아직도 안 찾아가

실제로 중학동 더케이트윈타워 초기 개발 과정은 의문투성이다. 종로구청이 자격 미달인 송씨에게 특혜성 승인을 해준 배경이 우선 주목된다. 송씨가 종로구청에 제출한 신청서에는 국유지와 공유지의 개발 동의를 받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현행법상 국·공유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관할 구청이 관리청과 협의를 마쳐야 한다. 송씨는 인허가에 필요한 자격이 되지 않자 국·공유지조차 동의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심지어 소송 중인 최 회장의 땅까지 시행사 소유로 위조했다고 한다. 종로구청은 이를 확인조차하지 않았다.

군인공제회가 2002년 10월 600억원대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내준 배경도 석연치 않다. 사업 초기 중학동 부지는 지주들의 반발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PF 대출의 지급을 보증할 시공사도 선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주들의 동의서도 제대로 대출 서류에 첨부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인공제회는 이사회 회의를 거쳐 600억원의 자금을 내줬다. 이와 관련해 군인공제회 측은 "이사회 서류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사업 인허가가 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사업성을 판단해 대출이 나간다"며 "당시 이사회 서류를 확인해본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는 달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06년 중학동 재개발사업 편법 인허가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사업에 관여했던 시행사 대표 송씨와 종로구청 간부, 군인공제회 직원뿐 아니라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경찰에 소환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경찰의 피의자 진술조서에 따르면 송씨는 군인공제회 대출 담당 직원 정 아무개씨에게 여러 차례 향응을 제공하고 성접대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씨와 군인공제회 직원 정씨, 종로구청 인허가 담당 신 아무개씨가 별도로 만나 인허가, 대출과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송씨가 구명 로비를 위해 권력층에 줄을 댄 정황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관계를 부인했지만, 송씨를 만난 날짜나 참고인 진술 등이 일관됐다는 점에서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금호산업-우리은행 수상한 대출 거래

서울경찰청은 2007년 7월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종로구청 공무원과 군인공제회 직원, 시행사 대표 송씨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재개발 인허가 로비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 역시 중단됐다. 최 회장이 2009년 2월 서울지검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서울고등검찰청을 거쳐 대검까지 사건이 올라갔다. 대검은 뒤늦게 시행사 대표 송씨에 대한 수사 재기 명령을 내렸지만 송씨는 이미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때문에 검찰의 초기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시공사인 금호산업과 우리은행의 관계도 의문이다. 대법원 판결로 사업 인허가가 취소된 상태였으나 시행사가 법인명을 인크레스코로 바꿔 사업을 다시 추진하면서 최 회장 소유 540여 평에 대한 소유권 분쟁도 또다시 벌어졌다. 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1500억원을 대출해줬고 금호산업은 지급보증을 섰다. 최영환 회장은 "대출이 나간 것은 2006년이었고, 600여 평의 소유권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2009년이었다"며 "2006년 수사에 착수한 경찰도 시행사와 금호산업, 우리은행 간의 연결 고리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하다가 압력을 받고 접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중간에 대출금과 이자를 회수하고 빠져나온 군인공제회 측도 비슷한 설명을 내놓는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사업 리스크가 커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시행사 이자를 탕감해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측은 "오래전 일이어서 확인이 쉽지 않지만 대출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업성만 있으면 대출이 가능했던 게 당시 상황"이라며 "1차로 사업성을 보지만 문제가 생겨도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가 변제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손해 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안국포럼 임대료 수억 원 떼먹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재개발 의혹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2009년 말 철거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5층짜리 빌딩(미진빌딩)이 있었다. 최영환 미진통상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건물 부지는 명당이었다. 내가 일본 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조금씩 부지를 매입해서 5층짜리 건물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미진빌딩은 유력 대선 후보들의 선거 캠프로 자주 사용됐다. 1992년 대선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빌딩 4층을 빌려 대선 캠프로 사용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는 김현철씨가 그대로 4층 사무실을 썼다. 최 회장은 "유력 정치인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웬만한 정치인들은 한 번쯤 이 빌딩에 와봤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건물 1층을 빌려 안국포럼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소개를 받고 찾아와 "사무실을 대선 캠프로 사용할 수 있겠느냐"고 타진해왔다. 당시 최 회장은 재개발 문제로 법정 다툼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 측근에게 어려운 점을 얘기하니 "종로구청장도 우리 대선 캠프 팀 밑에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이 빌딩은 2년 가까이 이명박 후보의 대선 캠프로 임대됐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캠프 측은 임대료뿐 아니라 열쇠도 반납하지 않고 떠났다. 그동안 밀린 임대료만 수억 원에 달했다. 최 회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후 민원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대통령을 찾아가 서류도 직접 전달하고 당선자 축하 파티도 최 회장이 자비를 들여 마련했음에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최 회장은 "답답한 마음에 여러 차례 이 대통령의 측근을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았다"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나를 두 번이나 죽였다"고 분노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