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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와 씨름한 저녁… 그래도 '별 이불' 덮는 낭만

여행가/허기성 2014. 7. 15. 07:00

텐트와 씨름한 저녁… 그래도 '별 이불' 덮는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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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에 캠핑이라니, 매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초등 3학년 딸아이가 TV에서 텐트를 볼 때마다 "캠핑 가고 싶다"며 은근히 압력을 넣기는 했다. 대학 시절 시커먼 사내 넷이서 강원도 강릉·양양 해수욕장을 돌며 마지막 야영을 한 게 자그마치 20년 전이다. 텐트를 어떻게 세우는지조차 가물가물. 주말 캠핑은 "기말시험이 코앞"이라는 마눌님의 지엄한 반대에 좌초됐다. 그래? 그럼 평일에 떠나지 뭐.

    수렵시대 가장이라면 그날 사냥한 야생 짐승을 뜯어 먹으면서 무용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초보 캠퍼가 참나무 장작불에 한우 등심을 구우면서 고기를 언제 뒤집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캠핑초보 家長, 땀이 송골송골 맺힌 도전

    지난 2일 수요일 오후 2시. 모녀가 직장과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근처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정육 코너 앞에서 "캠핑 가는데 젤 좋은 고기로 주세요" 물어본 것 말고는 대충 장바구니에 담았다. 맥주 과일 야채 버섯 고구마 과자 컵라면 김치 수세미 물티슈 등등. 아차, 딸내미가 신신당부한 마시멜로를 깜박했다. 계산대 앞에서 유턴해 물어물어 해당 코너를 찾아내 마시멜로까지 챙겼다.

    오후 3시 15분, 드디어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소박하다. 김포시 하성면 전유리 김포한강오토캠핑장. 마음속에선 파도가 일렁였지만 이튿날 출근·등교하려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분이나 내는 수밖에. 캠핑장은 집에서 17.8㎞, 33분 거리였다. 일산대교를 넘어갈 때 오디오에서 로이킴의 '봄봄봄'이 흘러나오는데 온 가족이 휘파람까지 불면서 따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딸내미는 벌써 마시멜로 봉지를 뜯고 있었다. 그래, 달달한 캠핑이 될 거야.

    하늘은 뿌옇다. 스마트폰으로 날씨 앱을 보니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비 올 확률 60~65%. 초보 캠퍼가 우중(雨中) 캠핑까지 속성으로 경험하는구나, 하는데 운전대 잡은 마눌님이 툭 던지는 말. "캠핑 갔다 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텐트 칠 때, 불붙일 때 많이 싸운대." "…. 그럼 텐트 다 칠 때까지 차 안에 있어."

    가스 토치로 불을 붙이는 장면

    평일 초보 캠퍼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주말엔 예약이 필수라는 이 캠핑장에 손님이라곤 우리 가족뿐이다. 관리소에서 참나무 장작을 한 단 산 뒤 풍광이 괜찮은 자리에 차를 댔다. 경력 20년의 캠핑 전문가 한형석씨(이하 사부님)의 도움을 받았다. 텐트는 4~5인용(3.5m×6m×2m). 바닥에 팩으로 빌딩 테이프를 고정한 뒤 3개의 X자형 폴을 먼저 세웠다. 망치질을 하는데 뒤통수로 모녀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낫? 텐트 본체는 세워진 폴에 있는 클립에 거는 방식이었는데, 딸아이가 목말 타고 할 수 있을 만큼 간편했다. 텐트를 땅에 고정하느라 텐트 주변에 팩을 박고 끈으로 폴과 팽팽히 연결하는 동안 진땀이 났다. 매듭 법이 있다는데 아무렇게나 감아 맸다. 텐트 한쪽을 말아 올려 출입구를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 매뉴얼에는 15분이라고 적혀 있다.

    집을 지을 때는 기초를 잡고, 거푸집을 세우고, 망치로 못을 박고, 시멘트 바닥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텐트는 그 과정을 단순화한 '움직이는 집'이다. 폴은 항공기 날개와 같은 소재라고 했다. 들락날락하며 생글거리는 딸을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 저녁 식사까지는 짬이 있어 배드민턴을 쳤고, 남는 끈으로 실뜨기도 했다.

    오후 7시, 화로대에 장작을 넣었다. 사부님이 준비한 착화제(불쏘시개)와 가스 토치가 없었다면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솔가지나 마른 나뭇잎, 종이만으로 장작에 성냥불을 붙이려면 약 10분이 걸린다고 한다. 날은 어두워지지, 옆 텐트에서는 벌써 지글지글 고기 냄새 풍기지, 애는 보채지…. 열통 터질 일이다. 우리는 곧장 장작이 타기 시작해 중간중간 땔감을 넣는 수고만 해주면 됐다. 당연히, 싸울 일도 없었다.

    힘들었으니 음식으로 보상할 때. 다른 건 몰라도 캠핑에서만큼
    ‘아빠가 요리사!!’라며 큰소리 한번 쳐보는 묘미도 있다.
    바깥바람과 분위기가 조미료가 됐을까.

    딸은 소시지부터 불에 올리고 싶어했다. 아뿔싸, 꼬챙이를 깜박했구나. 하는 수 없이 젓가락에 소시지를 끼우고 구웠는데 다 익지도 않은 걸 연방 입으로 가져갔다. 메인 메뉴는 두툼한 한우 등심. 석쇠에 올리고 뒤집고 자르고 먹고, 올리고 뒤집고 자르고 먹고…. 이 맛에 캠핑 오는구나, 싶었다. 텐트에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 소리도 입맛을 돋웠다. 어디선가 나타난 들고양이들이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사부님은 초간단 캠핑 요리를 손수 만들었다. 재료는 스팸, 김밥용 김, 찬밥. 먼저 스팸을 잘라 굽는 사이에 김밥용 김을 손바닥만 하게 접어 잘랐다. 스팸 깡통에 김을 넣고 구운 스팸을 깐 뒤 찬밥을 넣었다 빼면 '사각 김밥' 완성. 짭짤하니 자꾸 손이 갔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사부님이 20m쯤 떨어진 자리에 텐트 치는 것을 거들고 돌아오니 밤 9시 37분. 딸에겐 캠핑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있다. 학교 숙제. 동화책을 읽으며 독서록을 쓴다. 전자기기로부터 단절돼(disconnected) 있다는 것은 캠핑의 매력이었다. 집에서라면 모녀는 이승기가 나오는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넋이 빠지고 나는 게임을 하느라 손가락이 바빴을 것이다. 주말 캠핑장에서는 만끽할 수 없는 고요가 평일 그곳엔 있었다.

    칫솔 말곤 세면도구를 챙겨오지 않은 것은 초보 캠퍼의 실수였다. 캠핑장은 펜션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오늘은 양치질만 하고 내일 일찍 철수해 집에서 씻고 출근·등교하기로 했다. 딸은 금방 곯아떨어진다. 빗속에 길 잃은 모기 몇 마리가 텐트 천장에 붙어 있는 게 보인다. 모기향은? 마눌님이 눈을 흘긴다. '구멍'은 또 있었다.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를 듣다 세상 모르고 잤는데, 자정 무렵 굶주린 고양이들이 텐트 안으로 침입해 휘저어 놓았단다. 추워서 침낭을 덮었다. 땅심이 닿지 않는 18층 아파트에서의 잠에 비하면, 땅을 베고 자는 잠은 꿀잠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 4시 53분. 만물이 깨어나는 시각이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겹쳐졌다. 비는 그쳤구나. 찌르르르 삐오삐오 뻐꾹뻐꾹. 가만히 누워 인간의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 '자연의 교향곡'을 감상했다.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밤새 주린 모기들이 죽자고 달려든다.

    아침 식사는 눌은밥에 김치. 담백해서 좋았고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아 좋았다. 식기는 물티슈로 애벌 설거지를 한 다음 끓는 물에 넣고 마른행주로 닦으면 끝. "아빠, 방학하면 우리 또 캠핑 가자." 차가 캠핑장을 빠져나오는데 딸이 말했다. 이정표에 올림픽대로가 보인다. 내비게이션이 불쑥 끼어들었다.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일상으로 진입하니 각오하라는 경고 같았다.

     

    캠핑 초보자, 뭘 사야 할까?

    캠핑에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

    컵 하나에 3만원. 조명 하나에 10만원…. 캠핑 장비는 대개 비싸다. 그럼에도 캠핑 초보자에겐 왠지 전부 다 필요해 보인다. 보면 다 사고 싶어진다.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캠핑에 빠진 남편이란 대개 집안의 골칫덩이가 된다.

    캠핑을 몇년간 꾸준히 해온 고수(高手)들에게 "장비를 꼭 다 사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처음엔 "글쎄요…"라며 말을 아꼈다. 함께 물건을 '질렀던' 동료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질문에 이들은 결국 입을 열었다. "꼭 다 사야 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초보자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게 있긴 하죠." 이들에게 꼭 사야 하는 것과 살 필요 없는 물건을 캐물었다.

    사지 마라, 진짜 고수가 아니라면

    월간 '산' 김기환 기자는 '더치 오븐'을 꼽았다. "잘 쓸 줄 안다면 좋죠. 여기에 음식을 조리하면 맛있고요. 그렇지만 진짜 고수가 아니라면 1년에 몇 번 못 써요. 워낙 무거운 데다 다루기도 어렵거든요."

    (왼쪽부터) IGT 테이블 세트 / 더치 오븐

    캠핑 마니아로 소문난 사진가 김준영씨는 'IGT 테이블 세트'를 꼽았다. 구이 요리용 화로(iron grill)가 포함된 탁자와 의자 세트다. 김씨는 "물론 있으면 폼 나고 좋지만, 없어도 상관은 없다"고 했다. "덩치가 커서 싣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접고 펴는 것도 은근히 번거로워요. 사실 버너나 화로만 있어도 되죠."

    매주 주말마다 캠핑을 즐긴다는 네모갤러리 부관장 황영진씨는 캠핑용 수납테이블을 꼽았다. "이것저것 음식이나 그릇을 수납하기 위해 접었다 펴서 쓰는 테이블인데, 사실 그냥 종이상자에 담아놔도 괜찮아요. 폼은 좀 안 나겠지만."

    캠핑 장비 업체 '가야미' 임종진 팀장은 에어 매트와 서큘레이터, 그리고 난로를 꼽았다. 임 팀장은 "캠핑을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장비를 줄이게 된다. 등산하면서 짐 많이 안 싸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에어 매트는 있으면 푹신하고 좋긴 하지만, 없어도 견딜 만해요. 서큘레이터는 텐트 안 공기를 순환시키는 도구인데 역시 없어도 괜찮죠. 난로도 아이 없이 성인들끼리만 캠핑 다니는 집이라면 사실 굳이 필요 없어요. 두꺼운 침낭이나 전기장판으로도 충분히 추위를 견딜 수 있죠."

    그래도 이건 사라

    (왼쪽부터) 텐트 / 타프

    꼭 필요한 물품에 대해선 거의 의견이 일치했다. 텐트, 타프(그늘막), 버너, 침낭, 컵. 먹고 자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이다.

    나머지 물품에 대해선 조금씩 의견이 엇갈렸다. 황영준 부관장은 "스피커와 빔 프로젝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캠핑이란 결국 놀러 가는 거 아닌가요. 긴긴밤을 즐겁게 견디기 위해선 있어야 해요."

    임종진 팀장은 "여름엔 음식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쿨러도 필수"라고 했다. "이것 없인 음식이 금세 상하니까요." 김준영씨는 "랜턴과 무드 램프는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캠핑은 분위기예요 은근한 불빛 없는 캠핑은 뭔가 허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