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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투자/평9만원 3필지(답)파주통일경제특구 유치

여행가/허기성 2014. 7. 20. 12:16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사업파주까지 연장 추진

 

파주시 통일경제특구 유치로 제2, 3의 개성공단 조성 계획도 밝혀 

 

파주를 교통과 생활이 편리한 통일 도시로 육성한다

2014527(), 31개 시·군과 정책협약을 추진 중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는 이재홍 파주시장 후보와 함께 발표한 「파주시 정책협약」에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조기 추진 하면서 GTX A노선을 파주까지 연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 을 약속했다.

파주시민들의 편안한 출퇴근을 위해 원안의 종점을 킨텍스에서 파주까지 11.6㎢ 연장한다는 정책이다. GTX A노선의 파주연장은 기존 사업비의 20% 이내 증액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추진이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킨텍스와 삼성, 동탄을 연계하는 GTX는 파주시의 새로운 경제동맥이 되어 기업유치나 각종 개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미군반환기지와 그 주변 지역을 개발하여 파주 시민들에게 돌려준다. 파주시에는 총 5, 1,615,124㎡의 반환 공여지가 있다.

교육시설 용도로 제한돼 몇 년째 빈터로 있는 반환 미군기지 4곳의 용도변경을 추진하여 주거·상업·산업단지·체육시설 등의 개발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4곳은 용도변경을 추진하고 반환기지와 주변 지역을 활용해서 파주시의 낙후된 도시기능을 회복과 지역균형발전을 꾀한다.

파주에 개성공단에 상응하는 통일경제특구를 유치 한다. 개성공단과 불과 20분 거리에 위치해 북한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난 파주는 통일경제특구의 최적지다.

통일경제특구는 저렴한 임금의 북한 근로자들과 전문성을 지닌 남한의 기술자들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출퇴근하는 남북 협력 산업단지가 될 것이다.  통일경제특구가 조성해 20여만 명의 일자리를 제공 하고, 파주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육성 할 것이다.

일자리 넘치는 안전하고 따뜻한 경기도” 만들기 위해 31개 시·군과 정책협약을 발표 중인 남경필 후보는 각 시·군의 특성에 맞는 도시맞춤형 정책을 계속 발표 해 나갈 계획이다

 

 이재홍 파주시장이 시민들을 만나며 파주개발에 대한 명쾌한 답변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7일 파평면을 시작으로 읍면동을 찾아 시민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에는 금촌1동 주민 100여 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 문산 간 도로 건설 사업, 통일로 전철, 율목지구 재개발사업, 금촌1동 행복센터 건립, 금촌 전통시장 활성화 등 지역 현안 사업에 대해 답변하며 산업 도시 교통 관리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 이번 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마련될 파주 신발전 계획을 6개월마다 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보고하며, 주민과 함께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 문산간 도로 건설 사업에 대해서는“서울 문산 간 도로는 금촌1동뿐만 아니라, 파주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주민들이 반대하면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어“도로에 수용된 분들은 반대하고 주변 분들은 환영하는 것이 문산 간 도로 건설 사업, 즉 선택적 사업의 특징”이라며“통행료 1000원에 진입할 수 있는 도로를 4000원, 5000원 내며 20분 30분 더 멀리 돌아가면서 이용하면 된다”고 전제했다. 역설적으로 주민 민원을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지축 조리 금촌 파주를 잇는 가칭 통일로 전철 사업에 대해서는“임기 충 착공은 장담 못하지만 최소한 중앙 정부 예산은 확보해놓겠다”고 밝혔다.

전임 이인제 시장이 옛 파주경찰서 부지인 금촌동 771―2번지 일대에 350억 원을 들여 지하 3층, 지상 8층(연면적 1만6500㎡) 규모로 신축하려던 금촌행복센터에 대해서는“지역 중심지인 만큼 더욱 유용하며, 더 큰 규모의 행복센터가 건설돼야 한다”며“취임 10일의 시장인 만큼 6개월의 기간을 주면 그 동안 예산의 절반으로 더 큰 규모의 금촌행복센터를 건설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율목지구 재개발사업과 금촌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6개월을 전제로 오는  12월 경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준수 초대 파주시의회 2기 1대 의장의“파주 민원만족도 꼴찌라는 오명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모든 민원을 1개월 이내로 단축함으로써 계획 사업의 가부가 예측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 시장은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함께 자리한 박재진 의장에게 즉답을 요구해 참석 주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통일시대 관문인 파주는 지금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며“이재홍 시장은 오는 14일까지 이어지는 17개 읍면동 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4년간의 시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일한국의 심장 파주 세계화 시대를 맞은 예부터 큰 세계(중국)로 향하는 길목이었던 파주는 추로지향(鄒魯之鄕), 즉 한국판 공맹의 고향으로 칭송받던 <br>‘문향(文鄕)’이었다. 문명의 젖줄인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통일한국의 수도로 각광받는 곳이다.

한강변 자유로를 시원하게 달려 일산을 지나치다 보면 출판단지 가는 길이 보인다. 오른편에 정자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산이 바로 심학산이다. 우뚝 솟아 있지만 해발 194m에 불과하고, 산 밑에서 정상까지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다. 하지만 심학산 정상의 팔각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라. 동쪽에서 굽이친 한강의 물줄기가 마치 한 폭의 그림으로 뻗어 북서쪽으로 흘러간다. 한강은 저 너머 북한 땅을 배경에 둔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끼고 동서로 흘러드는 임진강과 교회(交會)한다. 한반도 문명의 젖줄이었던 한강과 임진강은 다시 북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예성강을 만나 서해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쪽을 보면 서울과 일산이 지호지간(指呼之間)이다. 다시 눈을 동북으로 돌려 산 아래를 바라보면…. 해발이 102m에 불과한 장명산이 마치 용(龍)의 모습으로 능선을 토해내 오도리와 다율리, 당하리로 뻗어간다.

“옛 교하중 자리에 대통령 관저를…”

비록 교하신도시 건설로 아파트촌이 착착 들어서고 있지만, 장명산 좌우와 심학산을 둘러싼 곳에 펼쳐진 드넓은 평지, 그곳이 바로 파주 교하(交河)다. 그래, 바로 이 너른 들판이 당대 최고의 풍수가라는 최창조 교수(전 서울대)가 ‘통일한국의 수도’로 적극 추천했던 곳이지.어디 최 교수가 처음이었나.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1612년(광해군 4년)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이 왕에게 “국도(한양)의 기운이 쇠하였고 교하는 길지(吉地)”라 하면서 ‘교하천도론’을 적극 개진했으니까. 당시 미중유의 국란(임진왜란)을 겪어 도탄에 빠진 민심을 되돌리고 정치개혁을 시도하려던 광해군은 이 ‘교하천도론’을 의중에 두고 은연중 추진했다. 비록 대신들의 극력 반대로 뜻을 꺾었지만….

통일한국의 도읍으로 꼽힌 파주 교하 전경 <파주시청 제공>

그런데 지금 다시 교하천도론이 솔솔 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 교수에 따르면 “세월이 지나면 수도의 조건도 변하는데, 지금의 서울은 위로는 북한산·도봉산, 아래로는 한강에 가로막혀 더는 클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 지금까지의 국도(國都)를 풍수의 측면에서 보면 ‘장풍국(藏風局·경주와 개성처럼 산간분지와 평지의 점이지역)’→‘득수국(得水局·서울, 공주처럼 동북은 산지, 서남은 평야)’의 단계를 지나 ‘평지룡(平地龍)’의 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파주 교하는 국토의 남북을 관통하는 길목의 정중앙에 서 있고, 한강·예성강·임진강 등 3대 강의 교회지점이면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항만 입지가 뛰어나고 지성(地性)이 관후박대(寬厚博大)하다는 점에서 통일한국의 수도로 적격이라는 것이다. 최창조 교수는 특히 “교하의 주산인 장명산의 맥에 자리 잡은 옛 교하중학교 자리(지금은 다율 방과후학교)는 대통령 관저를 비롯해 주요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설 최적의 입지”라고 꼽았다.

고인돌 100기 넘게 있는 까닭

그런데 이의신도, 최창조 등 당대 유명한 풍수가조차 간과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지금은 옛 교하중학교 뒤 산책길을 따라 20여기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곳 교하읍 다율리·당하리 일대에 10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때 지체 높은 분들의 무덤이 아닌가. 그뿐인가. 교하신도시 터를 비롯한 파주 전역에서 무수한 구석기·신석기 시대 유물이 쏟아진다는 사실. 그러니 교하는 풍수가의 혜안(慧眼)이 아니라도 예부터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혹은 소국(小國)의 도읍으로 각광을 받았던 곳일 게다. 그곳에 신도시가 들어섰으니,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좋은 터를 찾아 보금자리로 삼는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이다. 이곳뿐 아니라 적성면 주월리에는 고구려 유리왕의 핍박을 피해 남하한 백제 온조 세력이 맨 처음 도읍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는 육계토성이 있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백제 최초의 도읍인 하북위례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그 형태가 어찌나 풍납토성(하남위례성)과 같은지….

한반도 경영의 요처

아닌 게 아니라 파주는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경영의 요처였다.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려는 남북 세력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고, 또 피어린 사투를 벌였다. 392년(혹은 39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21일간의 처절한 싸움 끝에 차지했던 관미성(탄현면 성동리 통일전망대). 지금도 한국군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대치 중인 곳이다.

임진강의 곡류 모습 <파주시청 제공>

적성면 구읍리 해발 148m에 자리잡은 칠중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신라, 신라-당나라 간 혈투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는 고구려와 당나라를 꺾고 676년 한반도를 통일한다. 한국전쟁이 절정을 이루던 1951년 4월22일. 칠중성은 캐슬고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쟁터로 변한다. 영국 그로스터 부대는 중국군 3개 사단의 총공세에 3일을 버텨준다. 덕분에 서울은 재함락의 위기를 모면한다. 파주가 이렇게 전쟁의 얼굴만 내비쳤을까. 아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길목인 파주는 두 얼굴을 수시로 바꿔간 고을이었다. 정(正)과 반(反)의 두 얼굴이 그대로 갈등을 이루기도 했고, 때로는 합(合)을 이루기도 했다. 즉, 이곳은 한반도 역사의 ‘멜팅포트(Melting Pot)’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격렬한 화학반응으로 폭발해버린 고을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파주의 두 얼굴

남북 세력 간 시공을 초월한 ‘전쟁의 얼굴’과 함께 다양한 ‘평화의 얼굴’도 내비쳤다. 한국전쟁이 시작됐고, 서울을 목표 삼아 격렬한 전투를 벌였지만, 그 전쟁을 끝낸 곳도 바로 파주(판문점·진서면 어룡리)였으니 말이다. 155마일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기점도 바로 파주(장단면 동장리)였다. 분단이 고착화한 것이다. 이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며 파국을 막아낸 곳도 바로 파주다. 끊어진 경의선이 이어져 남북화합과 교류의 시대를 연 곳도 역시 파주이다.

교류와 통일의 전초기지인 도라산 역 <파주시청 제공>

바로 ‘갈등과 화해’, ‘분단과 통일’이라는 상반된 ‘두 얼굴’인 것이다. 지금, 비무장지대 안에 자리 잡은 도라산 전망대에 올라보라. 파주의 두 얼굴이 극명하게 보인다. “앞쪽은 북한 땅, 그리고 경의선 연결도로와 철도 저기 문산 쪽을 보세요. 산 사이로 아파트가 우뚝 솟아올랐네요.”(이우형 국방문화재연구원 조사팀장) 여전히 민간인통제구역과 군사격장·훈련장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비포장 도로 양 옆으로 시뻘건 지뢰 표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데, 이곳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문산 인근 월롱 산업단지엔 1만 명의 일꾼이 일하는 대규모 LCD단지(171만1000㎡)가 그야말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들어섰다. 거대한 성벽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인근 선유산업단지(문산읍 선유리·131만3000㎡)와 당동산업단지(64만㎡), 월롱산업단지(84만2000㎡)까지를 묶어 이른바 LCD 클러스터라 한다. 임진강 너머 북한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인근엔 영어마을과 함께 헤이리 예술인 마을이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들어서 있다. 현재 382명의 예술인 회원 가운데 141명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를 꾸미고 있다. 심학산 서쪽엔 213개 출판·인쇄업체가 입주한 대규모 출판단지가 조성됐다. 2011년까지 160여 개 업체가 참여하는 2단계 사업이 시행 중이다. ‘통일한국의 수도’로 꼽힌 교하에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통일의 길목, 한국판 공맹의 고향

무시무시한 대남 방송의 메아리 속에서 해만 지면 너무 무서워 얼씬도 못했다는 파주가 이처럼 ‘천지개벽’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논둑길을 따라 두루미의 화려한 비상을 감상하며 끝없이 걸을 수 있는 곳 역시 파주다. 착착 건설되는 첨단도시를 바라보면서 농촌의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두 얼굴의 고을 파주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이 기분을 만끽할 날도 머지않았으니….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신 자운서원 <파주시청 제공>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잊지도, 변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역사적으로 남북의 사람과 문화를 ‘통’하게 했던 파주의 몫이다. 여전히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주는 변치 않는 통일을 염원하는 고을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파주는 예로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 즉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고을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율곡과 성혼 등이 중심이 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율곡은 제왕학의 대표 저술인 <성학집요>와, <격몽요결><학교모범><경연일기> 등을 파주에서 집필하였다. 화석정자산서원 등은 모두 이율곡의 유적이다. 이뿐이랴.

고려시대 여진을 정벌한 윤관 장군과 조선시대 ‘대표 재상’인 황희 정승도 파주 출신이며, 조선 초기 예약제도를 정비한 허조, 경국대전 편찬을 총괄 지휘한 노사신, 파산학을 태동시킨 백인걸, 동의보감을 편찬한 의성(醫聖) 허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파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묻혔다. 바로 이 ‘추로지향’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천지개벽의 변화 속에서도 절대 버려서는 안 될 전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