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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펑크 가수'귀농일기 "오늘도 소박한 일상이 주는 큰 행복에 감사하죠"

여행가/허기성 2014. 8. 1. 12:56

유기농 펑크 가수'사이'주은진 가족의 귀농일기 "오늘도 소박한 일상이 주는 큰 행복에 감사하죠"

귀농을 차근차근 준비해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도 많지만 자연이 무작정 좋아서 시골살이를 택한 사람들도 있다. 충북 괴산에 사는 한 개성 강한 가족이 그 주인공. 뮤지션 남편과 농사짓는 아내, 일곱 살 아들 느티가 전하는 시골살이의 즐거움.

충북 괴산군 칠성면 밤실마을은 정겨운 흙벽돌집이 드문드문 자리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집 뒤로는 작은 저수지와 이를 둘러싼 무성한 수풀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고, 집 앞쪽으로는 탁 트인 절경을 자랑한다. 아담한 시골 마을이라 더 정겹고 평온하게 느껴진다. 이곳에 음악 하는 아빠와 밭농사 짓는 엄마, 일곱 살 느티 세 식구가 산다. 아빠 사이 씨는 음반까지 낸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로 서울을 비롯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 엄마 은진 씨는 농사를 짓고 싶어 시골살이를 계획했을 정도로 농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즘 한창 수확 시즌이라 뒷밭에서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등을 수확하는데 8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었지만 오히려 해가 갈수록 농사일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는 '시골 아줌마'다. 매년 겨울마다 '내년엔 조금 줄일까?' 생각도 들지만 이듬해 막상 씨를 뿌릴 때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시골이 좋아 무모하게 시작한 자연적인 삶

26년을 서울 토박이로 산 은진 씨는 시골살이에 대한 바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간 귀농학교에서 강사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둘이 어찌나 생각이 잘 맞았는지, 만난 지 6개월 만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 산천 산속에 터를 잡았다. 결혼식은 마을 뒷산에서 손님 스무 명만 불러놓고 소박하게 치렀다. 각자 입고 싶은 예복을 직접 만들어 입었고 축가도 부부가 지어 불렀다. 이 부부의 신혼은 더욱 특별했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 하나 없이 냇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하고, 추운 겨울에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우고 가마솥에서 끓인 물로 생활했다. 그렇게 세 번의 겨울을 났다. 주변에서는 미쳤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남들 시선은 중요치 않았다. 이들 부부는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자연적인 삶이라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걸 하고 있다는 약간의 만족감도 있었다."정말 자연적으로 살았어요. 둘 다 꾀죄죄했죠. 도시가 싫고 자연이 좋아서 무작정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몰라서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둘이 먹을 만큼 농사를 짓고 각자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았어요.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고 싶은 게 시골로 내려온 이유중 하나예요. 도시에서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투성이잖아요. 남편은 음악을 하고 저는 옷이나 가방을 만들었어요. 또 둘이 책을 좋아해 만날 책을 빌려다가 엄청나게 읽었죠."

1 집 뒤쪽에 자리한 저수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 때문에 이 곳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2 아빠가 들려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느티.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한 덕분에 감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랐다.

3 환한 웃음이 꼭 닮은 세 가족.

4 느티는 자연과 함께 살다보니 일찍부터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했다. 돌맹이 하나로도 즐겁게 논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출산

신혼을 재미나게 즐기던 어느 날 뱃속에 아이가 찾아왔다. 때마침 살고 있던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부부는 골짜기에 묵은 논을 사 직접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가진 돈도 없고 기술도 없었지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있는 아담한 집을 완성했다. 은진 씨는 집을 짓는 4개월 동안 만삭의 배를 안고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대나무 숲에 있던 폐가에서 잠을 잤다.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던 건 모두 아들 '느티' 때문이었다. 아이를 편안하게 세상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산부인과가 아닌 집에서 자연스러운 출산을 하고 싶었던 부부의 바람이었다.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자기도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며 엄마는 본능으로 낳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집에서 낳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분이 봐주신다고 해서 조산사 같은 것도 안 알아봤는데, 문제는 그 아주머니가 진짜 와서 '보기만' 하신 거예요. 아이를 받는 방법을 전혀 몰랐던 거죠. 밤 10시부터 진통을 시작했는데 아침 7시까지 둘이 낑낑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진주에 있는 병원으로 가 아이를 낳았죠.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무모했나 싶어요. 정말 큰일 날 뻔 했으니까요. 그때 그 트라우마로 남편은 지금까지 둘째를 못 갖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출산 후 느티를 집으로 데리고 오니 돈독했던 부부 사이에도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느티가 태어난 2007년 7월은 폭염이 찾아와 매우 더웠다. 화장실도 마땅치 않아 아이를 안전하게 씻길 데가 없고 집 안도 너무 더웠다. 둘이 살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큰 문제로 떠올랐다. 또한 부부가 24시간 붙어 있는 상황도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방이 딱 하나라 아이가 울거나 보챌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것에 자주 부딪히고 서로 짜증도 부렸다. "세탁기도 없는 집에서 남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천 기저귀를 손빨래하는 등 고생이 많았죠. 이 집에서는 도저히 어린아이를 키울 수 없겠다 싶어 서울 친정에 가서 한 달쯤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어요. 3년 전에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구입했는데 그 기능에 남편이 너무 감탄을 해요. 예전에는 이렇게 대단한 기계인지 몰랐대요. 이 일을 계기로 저희 부부는 무조건 생태적인 삶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아이를 키우려면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부모의 역할을 알게 해준 느티

부부는 아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문화를 자급자족하는 차원에서 아빠와 함께 공연을 다니며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의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모의 뜻대로만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 내년이면 느티가 여덟 살이 되는데 어떤 교육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홈스쿨링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고 대안학교는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느티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동네에 또래가 없다 보니 네 살 무렵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더란다.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해 유치원 가는 걸 매우 좋아한다. 시골 유치원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아침 9시에 등원하면 정규 교육은 오후 2시 반에 마치고 그 후에는 체육·영어·예절교육 등 방과 후 수업을 받는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지만 '교육'보다 '놀이'에 중점을 둔 곳이라 은진 씨의 마음에 든단다. 아이를 맘껏 뛰어놀게 하자는 유치원의 교육관이 부부의 생각과 같다. 사람들은 시골에 산다고 하면 괜한 선입견을 갖기도 하는데 또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골에 살면 편식 없이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고. 물론 햄이나 소시지보다는 자연식 채소를 더 많이 먹지만 그렇다고 나물의 씁쓸한 맛을 즐기는 정도는 아니다.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숨겨서 먹일 때도 많다는 게 엄마 은진 씨의 이야기다.

"시골이라고 편식 고민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은 다 똑같아요.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인다고 먹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만 받을 수 있으니 강요하진 않아요. 아이도 입맛과 취향이 있으니까요."

1 엄마에게 유난히 애교가 많은 느티.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기 바쁘다.

2 가족이 자주 찾는 저수지. 맑고 청명한 하늘과 우거진 푸른 숲이 운치를 더한다.

3 시내에 위치한 중학교 안에서 키우는 염소. 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갈 때면 꼭 들려 먹이도 주고 인사를 한다.

4 아빠와 축구하기를 가장 좋아하는 느티. 남자 아이라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소박한 일상이 주는 큰 행복

"사람마다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른 것처럼 육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도시에 있다고 아이를 최고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시골에 있다고 아이를 못 키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수많은 삶의 방식 중 우리는 이 삶을 선택한 것뿐이니까요."아이와 자연살이는 부부에게 다른 생각을 갖게 해준 선물이다. 자급자족하는 생태주의를 최고로 여겼던 부부에게 아이는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산골짜기 집에서 시내 가까운 마을로 나오게 만들었다. 부부가 아무 불편함 없이 지냈던 일상이라도 아이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싫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들은 느티에게까지 '생태주의적 삶'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지금 아이를 가장 많이 웃고 떠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자연'임을 알기에 당분간은 시골살이가 주는 행복을 오롯이 누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