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경매사건)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어느 ‘땅 주인’의 이야기
지상권을 가진 자가 토지 소유주에게 토지사용료, 즉 지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 이 지료가 2년 이상 연체되면 토지 소유주는 지상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만 찾아보면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다.
법이 토지 지상권과 그 지료에 대해 이처럼 관계를 규정해 둔 것은 건물 소유자와 토지 소유자가 달라졌을 때, 어느 한쪽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임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판례는 이처럼 법적으로 보장된 기본적인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어느 억울한 ‘땅 주인’의 이야기다. <대법원 2014.8.28. 선고 2012다102384 판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고 A씨는 자신의 소유인 고양시 일산동구 소재 대지 257㎡ 지상에 2층 건물을 신축했고 원고 B씨는 2008년 2월 1일,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임의경매절차에서 이 사건 토지를 낙찰받아 자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B씨는 피고 A씨를 상대로 이 사건 건물의 철거 및 대지인도, 퇴거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으나 재판과정에서 B씨가 A씨로부터 매달 말일, 월 30만원의 지료를 은행계좌로 송금받기로 하는 내용의 재판상 화해가 성립됐다. 지료 지불개시 시점은 2008년 12월로 정해졌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후 A씨가 약속된 지료를 연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A씨는 2008년 12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23개월 간의 지료를 전혀 내지 않다가 2010년 11월 26일부터 그 다음해인 2011년 8월 29일까지 8회에 걸쳐 합계 300만원의 지료를 B씨의 은행계좌로 송금했다. 이에 대해 B씨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이 300만원은 2008년 12월 분부터 2009년 9월 분까지 10개월 분 지료로 충당이 됐다.
이후 A씨는 다시 지료를 내지 않기 시작했고, 2009년 10월 분부터 2011년 8월 분까지 또 23개월 간 연체가 지속됐다. 그런데 A씨는 2011년 9월이 아닌 10월 2일이 돼서야 B씨 계좌로 지료 30만원을 송금했다. 입장에 따라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상황.
B씨는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A씨가 2년 이상의 지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지상권 소멸을 청구함과 동시에 A씨에게 이 사건 건물에서 퇴거, 이 사건 건물의 철거 및 토지의 인도를 청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제1심 법원에 제출했다.
이후 B씨는 2011년 10월 28일부터 원심 변론 종결일에 가까운 2012년 8월 29일까지 A씨로부터 계속 매달 30만 원의 지료를 송금받은 사실이 인정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원칙에 입각한 판결을 내렸다. A씨가 B씨에게 2년 분의 지료를 지급하지 않았으나 2011년 10월 2일 연체 지료 30만원을 송금했고 원고가 이에 대한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수령한만큼 연체된 지료는 2년 미만이 되었기 때문에 법정지상권 소멸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
B씨는 “A씨가 고의적으로 장기간 지료를 연체하다가 원고가 지상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태도를 보이자 그 무렵부터 계속 1기분 지료만 지급했고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임의경매가 개시될 즈음 이 사건 건물을 임의로 축조하여 지상권을 취득했다”며 “이 사건 건물은 무허가 건물이어서 피고들이 이 사건 건물을 계속 점유하는 경우 본인도 행정처분의 당사자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A씨의 행태는 권리남용에 해당하거나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은 그야말로 법대로 설시된 것이기 때문에, 판결 자체가 틀렸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의도가 어쨌건, 1기 분의 지료가 입금돼 지료 연체 기간이 23개월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B씨 역시 지료 수령에 있어 아무런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는 원천적인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 내용을 훑어봤을 때 심정적으로 B씨의 사정이 딱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매번 꼬박꼬박 지료가 들어온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2년 가까이 지료를 연체하다가 재판에 들어가서야 이를 수령한다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갑갑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토지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데 따르는 무형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이 물건을 낙찰받은 것 자체를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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