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은 패션사업
패션 토종브랜드 중국에 팔리고
내수는 SPA·신흥명품에 뺏기고
지난달 말 중국 랑시그룹이 토종 유아복의 대명사인 아가방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최대주주가 랑시그룹으로 바뀌면서 아가방은 생산뿐만 아니라 소유권까지 중국으로 넘어간 소위 '오운드 바이 차이나(Owned by China)' 기업이 됐다. 작년 홍콩 리앤펑그룹에 넘어간 서양네트웍스도 밍크뮤 블루독 등 국내 아동복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던 기업이다. 우리나라 유아동복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 입김이 세지게 생겼다.
16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캐주얼 의류 브랜드 코데즈컴바인도 최근 중국 기업 피인수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중국 기업에 인수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주가가 한때 큰 폭 상승하기도 했다. 최근 2년 새 중국에 팔린 국내 중견 패션기업만도 네 곳에 달한다. 19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인터크루가 중국 안나실업에, BNX와 탱커스 등 여성의류를 보유한 아비스타는 중국 디샹그룹에 재작년 각각 팔렸다. 현재도 중국 측과 매각협상 중이거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업체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대기업 패션담당 임원은 "이달만 해도 십수 년간 영업해온 중소 기업 여러 곳에서 인수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름 있는 해외 매물도 많아 내수 장사만 해온 국내 브랜드 인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른 대기업 입장도 마찬가지라 요즘은 패션업체들이 자진해서 중국쪽 인수자를 찾아 다니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중국 시장이 커지면서 중국으로 넘어간 한국 패션회사에 재투자한 아웃도어 기업도 있다. K2코리아는 이달 초 아비스타와 그 회사를 인수한 디샹그룹과 함께 중국 사업 제휴에 관한 3자 양해각서를 맺었다. K2코리아가 디샹그룹의 아비스타 지분 80만주를 인수한 것이다. K2코리아가 아웃도어 브랜드 'K2'와 '아이더'로 국내 톱 5위 안에 드는 아웃도어 회사로 성장했지만 중국 기반 없이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 고심 끝에 둔 한 수로 보인다.
박남규 서울대 교수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까지 타결되면서 국내와 중국 시장이 통합되는 현상이 일어나면 내수에 안주해온 패션기업들은 자연 도태될 것"이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게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가 줄줄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동안 내수시장은 수입 브랜드들이 점점 장악해 가고 있다. 저가를 앞세운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는 대중 시장을, 신선한 이미지를 강조한 신흥 명품은 상류층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 SPA시장 강자인 H&M은 자매 브랜드 '코스' 1호점을 최근 제2 롯데월드몰에 오픈했다. 남녀 의류는 물론 아동복 액세서리 레저웨어 수영복 언더웨어까지 포괄하는 토털 웨어다. 지난달 말 오픈 때 매장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화제를 모았다. 2011년 '마시모두띠' 자매 브랜드를 일찌감치 들여온 스페인 '자라'는 최근 온라인몰 '자라닷컴(www.zara.com/kr)'을 론칭해 최근 급성장 중인 국내 온라인 패션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캐나다의 저가 의류 '조프레시'도 국내 영업을 본격 개시했다.
고가 시장은 루이비통 등 '올드(old) 명품'의 성장세가 꺾인 가운데 신흥 명품이 대거 유입되는 추세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발렌티노 MM6 벨스타프 쿠플스 등 올해 국내에 도입된 수입 브랜드 수만 20~30여 개에 달한다. 한때 국내 영업을 중단했던 지미추와 발리는 현대백화점을 통해 재출시했다.
패션업체 관계자는 "요즘 패션은 'SPA' '명품' '아웃도어' 아니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일부 토종 아웃도어를 빼면 저가 해외 SPA와 고가 수입 명품 사이에서 국내 브랜드는 갈 길을 못 찾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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