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간 사람들
싱글녀의 맞춤형 스튜디오 하우스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간 사람들
"우리, 집 고쳤어요!"
최근, 아파트가 주를 이루던 주거문화에 또 하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원주택에서의 편안한 노후를 기다리기 전에, 젊은 세대들이 과감히 마당 있는 집을 택하기 시작한 것. 부동산 경기에 연연하지 않고 노후주택을 매입해 자신만의 집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됐다. 오랜 세월에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힌 집들, 그 안에 담긴 그들만의 취향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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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에 욕심내지 않고 정리하고 가꿀 수 있을, 딱 그만큼만 지었어요"
대구의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동네, 작은 필지에 사이 좋게 붙어 있는 집들이 대지 굴곡을 크게 거스르지 않은 채 옹기종기 앉아 있다. 전쟁의 피해로부터 용케 벗어나 고스란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동네는, 그래서인지 오래된 슬래브 주택에서부터 최근 신축된 다세대주택까지 건축물이 다양하게 섞인 재미있는 동네다.
이곳에 새로 고친 집, '해경헌(偕景軒)'이 있다. 원하는 공간과 감성을 오롯이 담은 집을 만들기 위해 세월의 흔적이 곱게 쌓인 동네를 찾고, 낡되 운치 있는 집을 찾았으며,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설계자와 시공자를 찾아낸 건축주. 그 과정을 "정말 정말 재밌었다"며 회상하는 그의 곁에는 반려견 웅이가 늘 함께 한다.
97㎡ 남짓하게 지어진 이 집을 마련하는 데 든 총 비용은 대구 시내 같은 면적 아파트 가격보다 확실히 적다. 완벽하게 프라이버시가 보호되고 마당 또한 갖는다는 점, 그리고 전용면적을 오롯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혜택은 단순한 덧•뺄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난다.
"원래 이렇게 빨리 지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짓게 되었어요, 하하"
하고 싶은 건 꼭 하고 마는 강단 있는 건축주는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원래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직장을 대구로 옮기며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다. 타지생활을 하는 5년 동안 그가 대구에 가진 인상은 '매력 덩어리'였다. 살아 있는 활기찬 느낌을 주는 이 도시에 터를 잡기로 결정하고는 3년 전 반려견 웅이도 식구로 들였고, 바쁜 직장생활에 짬을 내어 하고 싶던 미술도 배웠다.
"원래 어릴 때부터 주택에 살다가 성인이 돼서 아파트에도 살아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편리하지도 않고 제게는 왠지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조용하고 차분한 거주환경과 웅이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원했던 건축주는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나섰고, 90세 노부부가 살던 낡은 주택이 매물로 나온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평범한 집을 만들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라는 그다. 자료를 찾고, 정보를 물색하던 중 우연히 건축박람회에서 더솔건축디자인연구소 정만우 건축가가 지은 주택 사진을 보게 됐고, 두 시간의 대화 끝에 궁합이 잘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BEFORE_기존 외벽과 담장 사이 부분을 불법으로 증축해 창고와 주방, 보일러실로 쓰고 있었다.
↑ 건물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해 건축주의 방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건축주는 계절마다 해 지는 위치가 변하는 모습을 몸소 체험한다.
↑ 실내에서 바라본 현관부. 복도 왼쪽에는 게스트룸과 드레스룸이, 오른쪽 창가에는 벤치를 제작했다.
↑ 옛 구옥의 뼈대는 고스란히 거실과 주방으로 구성되는 집의 중심공간이 되었다. 왼쪽으로는 브릿지를 통해 안방과 욕실로 향하는 미닫이문이 있다.
*우리 집은 공사 중
↑ 01 기존 건물의 뼈대만 남겨두고 모두 철거했다.
↑ 02 새로 증축할 부분에 미리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 03 증축 부분을 포함한 건물 외벽에 철골조로 틀을 세웠다.
↑ 04 난연 패널을 이용해 이중으로 벽체를 구성했다.
↑ 05 기존 건물의 바닥 난방 배관을 교체하고 새로 미장했다.
↑ 06 지붕재를 시공하기 전 방수시트로 지붕을 감싸는 장면
↑ 07 외벽은 흰색 드라이비트로 마감했다.
↑ 08 금속지붕재인 컬러강판 시공이 완료된 모습
↑ 09 대문과 데크 작업 중인 모습이다.
↑ 10 석고보드를 치고 내부 마감 중인 모습
↑ 주택은 스튜디오 형식으로 모두 트여 있어 친구들과 소소한 모임을 갖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손님이 오면 거실과 게스트룸 사이, 거실과 취미실 사이의 미닫이 문을 닫아 공간을 구분하면 된다.
처음에는 리모델링이 아닌 신축까지 염두에 둔 프로젝트였다. 구옥이 워낙에 낡아서 뼈대를 살릴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고, 건물 뒤편 불법으로 증축한 부분을 모두 털어내고 나니, 막상 살릴 수 있는 면적도 크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축의 복병은 지역 지구의 건축법 즉, 대지 외곽선으로부터 3m씩 이격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법령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대지에 3m씩이나 들여 짓는다면 나올 수 있는 형태와 면적은 빤한 상황이었다. 건축주는 건축가와의 의논 끝에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존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되, 증축해 면적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집짓기를 결정하고는 그 다음은 그야말로 '믿고 맡겼다'고. 전문가를 찾아내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일단 한 번 결정하고 난 뒤에는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현명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예산의 1/3 이상을 땅 사는 데 썼다면, 나머지 2/3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결정하는 게 설계기간 동안 건축주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나무가 주는 편안한 느낌을 좋아했지만, 그 분위기를 내려면 비용이 끝없이 올라감을 알았다. 돈을 쓸 데와 아낄 데를 분류했고 항목별로 한계도 확실히 정했다. 단열과 창호, 채광에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원칙이었고 상대적으로 가구와 욕실에는 욕심을 버렸다. 대신 건축가에게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고, 침대를 비롯한 기본적인 가구는 애초에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하자 약속했다. 가구를 사기 시작하면 집이 좁아진다는 건축주의 지론을 받아들여 설계자 또한 침대와 식탁, 수전, 벤치, 드레스룸 등을 공간 곳곳에 계획해 넣었다.
↑ 골목길 안쪽, 소담스런 안마당을 가진 주택. 담의 벽화도 건축주가 직접 그린 것이다. 조만간 욕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벼락에도 그림을 그릴까 한다.
↑ 기존에 불법으로 증축해 사용하던 뒷부분을 철거하고 프라이빗한 뒷마당으로 삼았다.
↑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지붕 목재 서까래는 인테리어 요소로 남겨두었다. 천장에는 LED등을 매입해 간접광을 냈는데, 빨간 전선으로 포인트를 줬다.
↑ 물감 묻은 손을 바로 씻을 수 있게 취미실 안쪽으로 수전을 설치했다.
↑ 주변 집과의 시선 때문에 창을 하단에 냈다. 비 오는 날 자갈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운치 있다.
↑ 주방에서 바라보는 취미실의 모습
탁 트인 넓은 공간을 원한 건축주에게 스튜디오형 주택은 제격이었다. 처음부터 '방은 많이 만들지 않겠습니다!' 선언한 그의 요구조건을 따라, 'ㄷ'자 형태의 공간을 제안하고 게스트룸을 제외한 각 방 은 미닫이문으로 최소한의 구획 분할만 하게끔 했다. 기존 주택의 뼈대 부분을 'ㄷ'자의 가장 큰 축으로 삼아 개구부와 창문을 최대로 활용해 창과 문을 내고, 나머지 부분은 증축해 새로이 실내로 만들었다. 철골프레임으로 뼈대를 세우고, 샌드위치패널 이중 벽체 시공으로 단열성을 높이면서 철골이 외기와 접하지 않게 해 열전도로 인한 에너지손실을 차단했다. 매일 현장에 구경 온 건축주는 두꺼운 벽을 보고는 단열은 안심되면서도 실내가 좁아질까 걱정스럽기도 했다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앞뒤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주택은 답답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의 우려를 뒤로하고, 여름날 에어컨 한 번 틀지 않았을 정도로 쾌적했다. 밖에서 보면 그저 오래된 동네 골목길 집 중 하나이지만 내부에서는 자유롭고 시원한 공간이다. 답답하지 않게끔 창을 내고 마당을 둘러 시선을 넓게 보낸 자유로운 집, '온화한 바람이 함께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건축가가 붙인 이름 '해경헌(偕景軒)'과 잘 어울리는 집이 탄생했다.
주방에서 보이는 거실과 마당의 풍경이 퇴근 후 지친 건축주에게 위로를 준다. 웅이도 종일 마당과 집을 오가며 마음껏 뛰논다. 잔디도 강아지도 관리할 수 있을 만큼만 욕심 내고 불필요하게 많이 두지 않는 그의 성격이, 집 이곳 저곳에 그득히 묻어난다. 집은 주인을 닮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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