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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알찬 하루 서울 여행 - 이화벽화마을과 낙산성곽길

여행가/허기성 2014. 12. 3. 06:20

[함께 걷는 길]알찬 하루 서울 여행 - 이화벽화마을과 낙산성곽길

낙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이화마을은 서울에서 유명한 벽화마을이다. 사시사철 카메라를 목에 건 방문객들이 마을 보물찾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을을 곱게 물들인 빛깔과 낙산성곽이 품은 서울 풍경에 잠시 초겨울 추위를 잊었다.


옛 정취 간직한 서울의 몽마르트 언덕
서울 종로구 대학로(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뒷골목을 밟아 언덕을 오르면 특별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가파른 계단 끝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집들, 마을 곳곳을 수놓은 벽화는 언덕 위 작은 마을을 갤러리로 만들었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하여 '하늘동네'라고도 불리는 이화동 벽화마을이다. 마을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건 2006년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아슬아슬하게 허물어져가던 돌계단에 꽃이 피고 야트막한 담벼락에는 새가 내려앉았다. 예술가와 주민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예술작품들은 사라져가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알록달록하게 마을을 물들인 벽화는 1970, 80년대 정취를 간직한 동네 풍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마을의 명성은 여전하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사진 좀 찍는다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출사지,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아온 이화마을은 이제 국제적인 관광지가 됐다. 동시에 오랜 유명세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이화마을은 이제 관광객과 주민들의 상생을 도모하는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착한여행지도'를 만들어 더 나은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종로구청 관광체육과 정미덕 관광사업팀장과 이화마을 탐방에 나섰다.


생각지도 못한 서울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낙산성곽길. 멋진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달밤 데이트코스로 강추다.지속 가능한 공존 모색하는 '착한여행지도'

이화마을로 가는 코스는 다양하다. 크게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마로니에공원을 거쳐 쇳대박물관 옆길로 오르는 코스와 이화동주민센터 사잇길로 오르는 코스가 있는데, 주민센터에서 올봄부터 나눠주고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 착한여행지도'도 받을 겸 주민센터 쪽으로 길을 잡았다.

"벽화마을 주민들의 불편 해소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제작된 지도예요. 주요 벽화들의 위치는 물론 기존 이화동 골목길 관광 안내지도에 주민들의 사생활 노출이 염려되는 곳을 표시해 지도를 보는 관광객들이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지도를 보니 주택들이 밀집된 지역은 빨간색으로, 그 외 지역은 초록색으로 표시돼 있다.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지도 속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2 새옷을 갈아입은 꽃 계단. 관광객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는 곳이다. 3· 4 마을 구석구석에 벽화와 조형물들이 보물찾기 하듯 숨어 있다. 5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다시 그려진 천사 날개 벽화. 정미덕 팀장이 착한여행지도를 들쳐 보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이화장1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하나둘 벽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굴다리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벽화마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명한 '천사 날개 벽화'가 반갑게 방문객을 맞는다. 이화마을에 관광객들이 급증한 건 방송에서 마을을 소개하기 시작한 2010년 즈음이다. 그중 인기 TV 프로그램 '1박 2일'에 천사 날개 벽화가 소개되며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밤낮없이 찾아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주민들은 몸살을 앓았다. 결국 '원조' 날개 벽화는 지워지게 됐고 최근 위치를 옮겨와 다시 날개를 펼쳤다. 원조는 아니지만 날개 벽화는 여전히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 중 하나다. 이화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은 잊지 않고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날개 벽화에서 등을 돌리면 거대한 꽃 계단이 나타난다. 마을의 수작 중 하나인 타일 모자이크 벽화로 지난해 가을 7년 만에 마을을 다시 찾아 벽화 작업을 한 경희대 미대 이태호 교수팀의 작품이다. 기존 시멘트 계단에 페인트로 그려졌던 꽃들이 색색의 비정형 타일로 한층 화사하게 피어났다. "와!" 하고 탄성을 지른 관광객들이 초겨울 햇살 아래 반짝이는 꽃 계단에 앉아 저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래된 골목에 숨어 있는 서울의 이야기

꽃 계단을 지나 그대로 끝까지 올랐다. 작은 구멍가게인 '508 Shop' 위로 평상이 있는 조그만 텃밭이 나온다. '이화마을텃밭'이다. 원래는 쓰레기가 쌓여 있던 공터를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구는 도시 텃밭으로 만들었다. 철마다 갖가지 채소를 심어 가꾸고 수확한 배추로 김장을 해 나눠 먹기도 한다. 텃밭 옆 평상은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다.

"날이 좋을 때면 이곳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쉬어가기도 해요. 자연스럽게 주민과 방문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됐죠."
덕분에 지척에 있는 슈퍼마켓은 손님이 배로 늘었다. 관광객과 주민 경제의 연결을 고민하는 정 팀장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평일엔 수십 명, 주말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지만 실질적으로 주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 수입이 발생하지는 않아요. 관광객과 주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이화마을이 가진 또 하나의 숙제예요."

'508 shop' 옆길로 내려오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는데, 바로 나무 전봇대다. 이제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다. 이화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집을 지어 살았던 계획 주택단지였다. 여전히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수백 채의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1970년대에는 동대문의 생산기지라 불렸을 만큼 제조업의 중심가였다. 동대문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소규모 봉제 공장들의 재봉틀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이화마을의 오래된 골목에는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다.

밟고 내려온 계단에는 네 마리의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이태호 교수팀이 "만삭인 아내를 위해 태교에 좋다는 잉어 그림을 그려달라"라는 주민의 부탁을 받고 그린 그림이다. 푸른 수면을 유영하는 비단잉어들이 한 가족인 듯 다정해 보인다.

늦가을을 품은 낙산성곽길
물고기 계단을 내려오면 이제 마을에 숨어 있는 벽화는 대부분 둘러본 셈이다. 대학로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낙산4길을 따라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율곡로19길과 이화장1나길이 크고 작은 벽화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면, 낙산4길은 시원한 전망과 함께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하늘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는 신사와 개, 손을 잡고 있는 커플 조형물, 공중 물고기 등 벽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낙산공원과 연결돼 있어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예요. 주택가를 벗어난 길이기 때문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셔도 좋아요."

낙산공원으로 접어드니 별안간 사위가 고요해진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고즈넉한 산책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노을 지는 햇살을 등에 업고 꾸벅 졸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공원의 정상에 오르면 낙산의 능선을 타고 도는 서울성곽 낙산구간에 다다른다.

"이화마을에 오셔서 벽화만 보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낙산성곽은 그 자체로도 멋스러울 뿐 아니라 가까이 동대문과 성북동, 멀리 남산과 인왕산까지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에요. 야경도 매우 아름답고요. 잊지 말고 꼭 들렀다 가셨으면 해요."

성곽은 성 안쪽보다 바깥쪽에서 보는 것이 더 좋다. 정 팀장이 안내하는 대로 성곽 암문을 나서니 멀리 성북동 일대와 가톨릭대 신학대학이 아직 남아 있는 가을빛에 안겨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춰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니 시간도 계절도 잊혀지는 기분이다.

Tip 이화벽화마을과 낙산성곽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공원 뒤쪽으로 나 있는 낙산길을 따라 직진, 낙산공원 앞에서 낙산4길을 따라 걸으면 조형물들을 지나 벽화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본 뒤 이화마을 텃밭에서 낙산성곽길로 연결되는 암문을 찾을 수 있다. 이화동주민센터에서 출발해 벽화마을을 한 바퀴 돈 뒤 낙산공원을 지나 성곽길로 가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