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원강 교촌F&B 회장 "20년 前 교촌 이름 알리려 114에 하루 30통씩 일부러 문의"
첫 단체손님 놓친 게'대박'으로…큰 테이블에 앉아있던 기존 손님에
자리 옮겨달라 대신 "계속 편히 드세요"…그 사람들이 회사에 입소문 내 주문 쇄도
최고의 장사 밑천은 '신용'…매장 대거 늘리면 기존 점주들 힘들어져
10년 넘게 가맹점 수 1000개 정도만 유지…치킨집 '치킨게임'에도 매출 두 자릿수 ↑
권원강 교촌F&B 회장(64)은 경북 구미의 33㎡(10평)짜리 치킨집에서 출발해 국내 2위의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을 일궜다. 치킨집을 하기 전 그는 노점상, 중동 건설노동자, 택시기사 등 ‘험한’ 일을 두루 하며 산전수전을 겪었다. 권 회장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영화 ‘역린’에 나오는 ‘중용’의 한 구절을 빌려 표현했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교촌통닭 몇 번입니까”
그의 단골집은 본사가 있는 경기 오산시 원동의 과메기전문점 ‘포항아지메’다. 과메기 특유의 상큼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히 느껴졌다. 치킨집을 하게 된 사연부터 들어봤다.
“치킨집 하기 전에 인생의 밑바닥 일들을 다 해봤지요. 노점상, 건설노동자, 택시기사 등 온갖 직업을 거치고 막판에 치킨집을 열게 됐어요. 대구에서 택시 운전을 3년8개월 했는데, 원호대상자여서 3년 이상이면 개인택시 면허를 받을 수 있었어요. 2년 정도 개인택시 하다가 체력도 달리고 해서 3500만원 받고 면허를 팔았습니다. 200만원은 몇 달 놀면서 까먹었고 나머지 3300만원으로 창업하기 가장 쉬운 치킨집을 하기로 했지요.”
대구에서는 그 돈으로 점포 얻기가 힘들어 공단지역을 찾다가 구미에서 개업하기로 했다. 공단 가까운 곳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가게를 얻었다. 막상 가게문을 열었지만 쉬운 장사는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처음 2년은 ‘죽을 고생’을 했다. 하루 한두 마리만 파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치킨 한 마리에 6000원이던 시절이었으니 하루 매출이라야 고작 1만원 안팎이었다. 임대료는커녕 한 달에 5만원 정도인 전기요금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전기요금을 3개월 연체하면 전기가 끊기게 되니 친인척들한테 돈을 꿀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날이 이어졌다.
20여년 전의 옛 일을 회상하며 목이 마른 듯, 권 회장은 ‘소맥 폭탄주’를 만들었다. 폭탄주를 한 잔씩 마시는 사이 소라, 고동 안주가 식탁에 올라왔다. “장사가 밑바닥일 때 2년은 정말 긴 세월입니다. 그때 여윳돈이 몇 백만원만 있었어도 그만뒀을 겁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주문전화만 목이 빠지게 기다릴 게 아니라, 가게 이름이라도 알리자는 뜻에서 114에 “교촌통닭 몇 번입니까”라는 문의 전화를 매일 20~30통씩 했다. 전화안내원들도 처음 들어보는 치킨집이지만 문의 전화가 자꾸 오니까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여름날 안내원들이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주방에 들어가 정성을 다해 치킨을 만들었다. 치킨이 식지 않도록 배달차량의 에어컨도 켜지 않은 채 배달했다.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했지만 목에 두른 타월로 훔쳐냈다. 따끈따끈한 통닭이 114 안내원들의 입맛을 돋웠던지, 퇴근하면서 네 사람이 가게에 들러 한 마리씩 사갔다. 이날 판 6마리가 개업 2년 동안 하루 판매량으로 가장 많았다. 몇 달 뒤엔 가게 영업을 단번에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저녁 무렵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치킨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근 사무실 직원 10명이 회식을 한다며 들이닥쳤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4인용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좌석이 모자랐어요. 잠시 망설이다 손님 10명을 돌려보냈어요. 앞서 먹고 있던 두 사람에겐 ‘조금도 불편해 하지 말고 천천히 드시라’고 했죠. 손님 10명이면 5마리 이상 주문할 것이고, 당시로는 이틀치 매상에 해당하는 거니까 저로서는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지요.”
권 회장에게 감동을 받은 두 사람은 자신들이 근무하는 회사에 소문을 냈다. 그들의 직장이 당시 금성사 구미 TV공장이었다. 이후 금성사 야근 때 간식은 무조건 교촌통닭이 됐다.
정직이 최고의 상술
권 회장은 ‘신용은 장사의 밑천’이란 얘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대구 남문시장에서 소금 장사를 하던 부친이 틈만 나면 하던 말씀이었다.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지금도 회사 경영에서 ‘정직’을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있다.
“닭고기는 수급이 불안정할 때 한 번씩 파동이 오는데, 그때마다 공급량이 줄어 치킨집마다 골탕을 먹는 겁니다. 가게를 시작한 지 5년쯤 될 무렵 파동이 왔지요. 소비자에게 나가는 1㎏짜리가 공급이 안 되고 500g짜리만 들어왔는데, 가격이 1㎏짜리와 똑같아요. 대부분 치킨집은 이럴 때 500g짜리에 파우더를 두껍게 묻히고 튀겨서 1㎏짜리 한 마리인 것처럼 포장해서 팝니다. 저는 500g짜리 두 마리를 넣어서 종전의 1㎏ 무게를 맞췄어요. 이러면 남는 게 없었지만 정직하게 팔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권 회장의 선의와는 달리 손님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생닭 가격이 비싸지니까 교촌통닭이 싸구려 닭 두 마리를 튀겨 팔면서 생색을 낸다는 것이었다. 권 회장 가게에 샘을 낸 주변 상인들의 음해였다. 권 회장은 고민 끝에 무게는 최대한 종전을 유지하면서 한 마리처럼 보이게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500g짜리 닭 두 마리를 튀기되 몸통은 두 마리치를 넣지만, 다리와 날개는 두 개씩만 넣어 판 것이다. 남은 날개와 다리 두 개씩은 냉장고에 따로 보관했다. 이렇게 하니 헛소문은 사라졌다.
“따로 보관하고 있던 날개와 다리가 아까워 대구 사는 지인이 가게에 올 때마다 그걸 튀겨 줬어요. 이 사람이 그걸 가져가서 식구들과 먹는데, 아이들이 하나도 안 남긴다는 거예요. 그때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게 있더라고요. 부위별로 팔아보자는 거지요. 날개만 또는 다리만 모아 ‘교촌골드’라는 메뉴를 만들었어요. 이게 빅 히트를 친 겁니다.”
간절하게 꿈꾸면 이뤄진다
과메기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우럭 매운탕이 공기밥과 함께 올라왔다. 정갈한 나물과 함께 끓인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최근 다녀온 유럽·중동 출장에 대해 물어봤다. “로마, 터키, 두바이 세 곳의 유명 레스토랑들을 둘러봤는데 화덕을 이용해 피자를 만드는 곳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화덕 한쪽에 장작을 피워 불맛이 배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대구의 직영매장에서 치킨에 장작 향이 배도록 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역린’에 감동을 받아서 월례 직원 조회 때 안 본 사람들은 꼭 보라고 했어요.”
권 회장이 ‘꽂힌’ 것은 역린의 대사 한 구절이었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명대사가 나올 때 숨이 멎을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20여년 전 통닭집 시절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온 좌우명은 ‘간절하게 바라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권 회장은 치킨을 명품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때문에 교촌에는 ‘세일’이란 단어가 없다. ‘가맹점 모집’이란 용어도 쓰지 않는다. 그 흔한 창업설명회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영철학의 영향으로 가맹점 수는 1000개 선에서 10여년간 거의 변함이 없다. 가게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2002년에 서울·수도권에 진출했는데, 가맹점 계약하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3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미리 점포를 구해놓고 월세만 6개월간 내면서 개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요. 가맹점 하나 열 때마다 본사 수익이 2000만원 정도 되던 시절이었죠. 2003년에 AI(조류인플루엔자)가 터졌지만 계약자들은 여전히 개점해 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고민하다가 300명 모두 돌려보냈어요. 60억원을 벌 기회를 저버린 거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결정 같아요.”
권 회장은 그때 욕심을 부려 전부 가맹계약을 했으면 부실 가맹점이 속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치킨업계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고 정도를 걸으려 한다”며 “그 덕분인지 교촌 가맹점들은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치킨 한류'의 꿈…직원 한 명당 한 나라씩 해외전문가 키우는 중
권원강 교촌F&B 회장은 내년부터 해외시장에 승부를 걸 계획이다. 직원 조회 때마다 “스스로 역량을 키워 향후에는 한 나라씩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어 공부는 물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직원들의 배낭여행을 회사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권 회장은 “지역전문가 역량을 지닌 인재 양성이 해외사업의 관건인 만큼 직원들의 교육 투자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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