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언덕이 장관인 전남 신안군 우이도 섬
[그 섬을 걷고싶다-우이도] '산태'의 전설에 귀 기울여 볼래요
우이도(전남 신안군 도초면)의 랜드마크는 모래언덕이다. 주민들이 ‘산태’라고 부르는 모래언덕을 학자들은 ‘풍성사구’라고 부른다. ‘바람에 의해 형성된 모래언덕’이라는 말인데, ‘산태’가 훨씬 정겹다. 칠발도 어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가 가져온 모래가 성촌의 큰대치미 해수욕장과 우이도 해수욕장을 연결시켰다. 그동안 산태는 주민들에게 비호감이었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생선이나 음식에 붙어 사각거리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돈목 큰애기 모래를 서 말 먹어야 시집간다’고 했겠는가.
우이도 사구
사구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산태는 한때 골재 채취업자에게 팔릴 뻔했다. 간혹 산태는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미끄럼틀로 오용되고, 우이도의 체험거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게 모래언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뒤늦게 흉물스러운 전신주도 제거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 방안을 찾고 있다.
산태에 얽힌 애틋한 이야기도 있다. 돈목 총각과 성촌 아가씨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산태에서 사랑을 나누었는데, 하루는 돈목 총각이 약속한 산태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기 잡으러 갔다가 풍랑에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성촌 아가씨는 바다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 후 총각은 죽어서 바람이 되고, 처녀는 모래가 되어 매일 모래언덕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돼 머물렀던 섬
배가 비금도와 도초도를 빠져나오자 지금까지 바다와는 딴판이다. 뭔가 붙잡지 않고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뒤뚱거렸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해 선실로 들어왔다. 이 길이 손암 정약전의 유배 길이요, 문순득이 표류했던 바다다. 손암은 나주에서 동생 다산과 헤어진 후 이 바다를 건너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동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형을 만나기 위해 이 바다를 건너온다는 말을 듣고 거처를 우이도로 옮겼다.
지난해 말 목포에서 <문순득 표류기>라는 연극을 보았다. 우이도에서 홍어 장수를 하던 문순득(1777~1847)은 나이 스물다섯에 나선 홍어 장삿길에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그렇게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 등 낯선 나라를 떠돌다 3년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내용이 후손 문채옥(1920~2011)이 보관해온 유암총서 <표해시말>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유암총서’는 정약용의 수제자였던 강진 출신 이강회의 문집이다. <표해시말>은 그보다 앞서 흑산도에 유배 온 정약전이 문순득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것을 이강회가 보완한 것이다. 지금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신안군이 보관하고 있다.
우이도는 어떤 섬이던가.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한국수산지>(3권)에는 이렇게 소개돼 있다. “수산물은 매년 미역 100뭇 남짓, 가사리 1000근여를 산출한다. 섬사람 중에는 상선으로 일 년 내내 대륙 기타 각 섬 사이를 왕래하며 상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왕래하는 장소는 나주, 영암, 해남, 법성포, 줄포 등이며 섬으로는 삼태도, 대흑산도, 나주군도 등이다.”
문순득이 일찍 장사에 눈뜬 이유를 알 것 같다. 장사 말고는 달리 생존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인근 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혔고, 남도 사람들은 남녀노소 홍어를 즐겨 먹었다. 소금으로 갈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생선이니 삭히면 삭힌 대로 팔 수 있었다. <표해시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유(辛酉) 12월. 우이도에서 작은 배에 짐을 싣고 태사도에 들어갔다. 같이 배에 탄 사람은 나의 작은 아버지, 문순득, 이백근, 박무청, 이중원, 김옥문으로 홍어를 사기 위해서이다.”
신유년은 1801년이다. 문순득은 다음 해인 임술(壬戌)년 정월 18일 큰바람을 만나 오경(午頃)에 키가 부러지고 돛을 펴지 못한 채 바람과 조류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문채옥 옹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상고선 두 척을 가지고 있어 흑산도로 홍어를 사러 갔다가 한 척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 한 척을 타고 오다가 흑산도 꼬갈바위 밑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 등을 돌아 햇수로 5년 만에 돌아왔다. 그간 소식이 없자 모두 죽었다고 생각해 하의도에서 시집온 부인 김해 김씨를 친정으로 보냈다. 하지만 사흘 만에 돌아와 정조를 지키며 남편을 기다렸다.”
최부의 <표해록>, 장한철의 <표해록> 등 표류 기록은 적지 않다. 하지만 문순득의 <표해시말>을 으뜸으로 꼽는 것은 ‘구술 기록’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낱 홍어 장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정약전이나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보완한 이강회의 역사인식이 돋보인다. 하지만 문순득의 긍정적인 사고와 몸으로 체득한 자연에 대한 토착 지식이 없었다면 생사를 오가는 긴 표류의 여정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이도에는 진리, 돈목, 예리, 대초, 서리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진리에서 돈목으로 넘어가는 산 능선에 자리 잡은 대초리는 빈집만 남아 있다. 예리를 지키는 노부부는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은 진리와 돈목뿐이다. 서리는 진리 맞은편에 있는 동소우이도와 서소우이도를 말한다. 흔히 소우이도 또는 ‘서리’라 불리는 두 섬에는 각각 아홉 가구가 살고 있다. 진리와 서리는 멸치잡이를 하고, 돈목은 미역 채취와 민박을 많이 한다. 특히 돈목의 갯가에서 뜯는 미역은 최고 명품으로 한 뭇(20가닥)에 20여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미역을 채취하는 갯가의 바위들을 주민들은 ‘갱번’이라 한다. 돈목마을에는 갱번 10여 개가 있다. 이곳에서는 미역 외에 거북손, 군부, 톳, 김, 따개비, 고동 등 갖가지 바다 생물이 서식한다. 이 중 김과 미역이 어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
도초도•비금도 찍고 우이도로
배편) 목포 여객선터미널(1666-0910)을 출발해 도초, 우이도를 오가는 배가 하루 한 차례 있다(오전 11시30분). 편도 3시간 소요.
배 타는 시간이 지루하다면 흑산도행 쾌속선을 타고 가서 도초도(비금도)에서 내린 다음 기다렸다가 섬사랑호로 갈아타도 좋다. 남은 시간에 도초도나 비금도를 둘러볼 수 있다. 섬사랑호는 도초도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우이도를 들렀다 다시 도초도를 거쳐 목포로 나간다. 당일치기 여행은 어렵다.
먹을거리) 우이도 진리와 돈목마을에 민박과 식당이 있다. 돈목마을 다모아민박(061-261-4455)에서는 주인이 직접 잡은 생선으로 만든 회, 탕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거북손(보찰), 미역, 톳 등 해산물로 만든 반찬도 맛볼 수 있다.
걷는 길) 진리 선착장-진리-문순득 생가-정약전 거주지-수원지-대초리 마을터-대초리재-상산봉-모래산(산태, 풍성사구)-돈목 해수욕장-돈목-돈목 선착장
우이도
주 소 : 전라남도 신한군 도초면 우이리
위 치 : E:125°50′ N:34°36′
면 적 : 10.7 Km2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도초면(都草面)에 속한 섬. 면적 10.704㎢, 해안선길이 21㎞. 인구 203(1999). 목포(木浦)에서 남서쪽으로 약 43㎞ 떨어져 있다. 북쪽에는 긴 사빈해안이 있고, 해안 여러 곳의 돌출부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는데, 특히 서쪽 해안은 절벽과 기암이 늘어서 있다. 1월평균기온 0.8℃, 8월평균기온 26℃, 연강우량 1125.9㎜, 연강설량 8.8㎜이다. 경지면적은 밭 81.1ha로 경지율이 7.6%에 불과하나 주민은 대부분 농사일에 종사하고 있다. 농작물로 맥류·두류·마늘·고추 등이 생산되고, 근해에서는 조기·고등어·전갱이·갈치·장어 등이 잡힌다. 교통은 도초도와의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격일로 운항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다.
이 섬에는 450여년전 탁씨, 방씨, 정씨, 윤씨 등이 대초리의 수려한 경관을 보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남평문씨 후손이 13대에 이르러 20여가구가 살고 있고 김씨 18가구, 동복오씨 16가구가 살고 있다. 섬의 모양이 수의 귀를 닮았다고 하영 우이도라 했다.
우이도 상산봉에 바둑판바위 설화가 전해온다. 매년 섣달 그믐날에 당제를 모셨는데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돈목해수욕장의 경관이 빼어나도 기암괴석과 섬 주변에 낚시터가 있다.
특산물로는 단백한 맛을 자랑하는 꽃게와 새우, 돌김, 돌미역 등이 생산되며 분재소재로 유명한 향나무와 춘란, 석곡 등이 자생하며 약용으로 쓰이는 흑염소를 방목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우이도와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 가도, 송도, 백도, 화도(이상 전남 신한군 도초면)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섬까지의 배편
목포→우이도 1일 1회 12:10분 섬사랑6호(3시간 소요)
[배편문의] (합)목포대흥상사 섬사랑6호 061-244-0005
바다낚시
1. 꽃조개잡이
우이도의 갯벌은 모래가 섞여 잘 빠지지 않으며 꽃조개잡이의 천국이다. 그래서 누구나 호미나 건챙이를 이용해 갯벌을 긁으면 꽃조개를 잡을 수 있다.
꽃조개는 모시조개류에 속하는데 껍질이 예쁘다. 물이 빠져야 조개를 쉽게 잡을 수 이 있으므로 물때를 알아보아야한다. 성촌리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 모래산 반대편 갯벌에서 잘 잡힌다.
2. 농어,우럭,돌돔 낚시
■ 위 치 :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 주 어 종 : 우럭, 농어, 돌돔
■ 낚시방법 : 갯바위낚시, 선상낚시
■ 교 통 편 : 목포여객터미널 → 도초면 → 우이도
■ 인근주요관광지 : 풍성사구(모래언덕)
■ 참고사항
- 우이도는 도초면에 속하는 섬으로 도초항에 내려 유이도행 역객선을 갈아타고 이동한 후 현지에서 도보나 배로 이동할 수 있다.
- 우이도는 천혜의 낚시터가 많은 곳이며 수심이 깊고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어 있어, 갯바위와 선상낚시 모두 가능하다. 낚시포인트 소재지 : 성촌리에서 모래산 반대으로 500미터, 성촌, 돈목, 예리, 선창구미
섬내볼거리
우이도 모래스키
우이도 최고의 명물은 돈목해수욕장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는 '모래산'이다.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허리가 벗거져 드러난 모랫더미에 파도와 해풍에 불려온 모래가 덧쌓여 오뚝한 산이 된 것이다. 사진에서 거대하게 느껴졌던 모래산은 우이도에 막상 도착하여 먼 발치에서 쳐다보면 왜소하고 밋밋해 보인다. 멀리서 보는 모래산은 "애개∼"하는 가벼운 실망감을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래산은 올라봐야 비로소 제 맛을 알 수 있는 산이다. 해발 80m. 만만한 높이로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올라보면 이 높이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경사가 가파른 데다 한 발 내 딛이면 두세발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푹푹 빠지는 걸음이 힘겨워 가만 멈추고 숨을 돌릴라치면 발목께까지 어느새 모래 깊숙이 파묻힌다. 모래산 가장자리에 듬성듬성 난 잡초난 잡목들을 붙잡고 올라갈래도 뿌리 채 뽑히기 일쑤여서 힘들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아!" 하는 탄성이 마음속에 절로 인다. 눈앞으로 돈목 해수욕장과 주변 섬들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 공룡 발자국처럼 모래산 위에 움푹움푹 파여 있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래산과 시리도록 해맑은 쪽빛 바다의 어울림도 참으로 절묘하고 독특하다. 밋밋해 보였던 산은 올라보면 제가 가진 풍성한 볼륨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거대한 넓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다도해 작은 섬이 아니라 중동지방의 광막한 사막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 모래산은 바람 부는 방향대로 모랫결이 달라지고 비라도 한바탕 내리면 모래들 이 뭉쳐 저절로 신비한 형상의 조각품들을 빚어낸다. 금방이라도 모래가 흘러내려 산 모양이 뭉개져버릴 듯하지만 흘러내린 모래는 신통하게도 밤새 바람이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그래서 이 모래산은 오랜 세월 흐트러짐 없이 우이도의 상징이자 지주로 자리해왔다.
해수욕장
돈목해수욕장
길이2km,폭800m,수심2m의 비교적 수심이 낮은 해수욕장으로 해송과 산북나무숲으로 넓게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유일의 모래언덕이 형성되어 있는 해수욕장으로 도초에서 선촌을 지나면 이 곳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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