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돌지 않는다.'
가계도 기업도 안쓰고 버티기…`돈맥경화` 사상최악
기준금리 인하·재정 확대에도 돈 안돌아 경제 활성화 안돼
집집마다 장롱에 돈 묻어 5만원권 회수 100장중 25장 그쳐
기업·은행도 몸 사리기…설비투자 줄이고 안전 우선 대출
우리 경제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사상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개인들은 돈을 벌어도 쓰지 않고, 기업들도 이익을 올려도 사내에 쌓아두고 있다. 돈이 돌게 만드는 게 할 일인 금융회사들은 보신주의에 빠져 돈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경제가 돌아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는 돈이 돌지 않으면서 우리 경제 곳곳에 파열음이 일고 있다.
돈의 흐름은 실물경기를 반영한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안 좋으면 돈이 안 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돈이 안 돌아 실물경제를 옥죄는 모양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돈을 돌려야 할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실물 등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파격적인 정책을 내놔 돈을 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최근 생산·소비·투자 모두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고 금리를 낮췄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아무리 재정을 확대하고 금리를 낮추더라도 돈이 제대로 돌게 하지 않으면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각종 지표를 보면 우리 경제의 '돈맥경화' 현상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돈을 풀면 이 돈이 민간에서 얼마나 유통되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지난해 12월 말 19배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에 근접했다. 통화승수는 지난해 8월 18.9배 이후 지난해 11월에는 19.5배까지 회복됐다가 연말에 다시 급락했다. 개인이 돈을 받아 이를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은 이 돈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준다. 은행에서 대출 받은 사람은 이를 다시 다른 은행에 예금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통화량은 계속 늘어나게 된다.
금융기관에서도 돈이 안 돌고 이 돈이 실물경제로도 이어지지 않으니 정부가 재정확대와 금리 인하를 통해 돈 푸는 정책을 아무리 펴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시중에 돈이 안 돌면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도 돈풀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돈이 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연구원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비롯해 가계의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은 추진하면서 투자 여건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지원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가계 부문 자산 중 예금이 차지하는 포션이 50%이고 미국은 20% 미만이다"라며 "금리를 내리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예금자가 많아 이자수익이 줄어 인하의 효과성이 작다"고 지적했다.반면 돈이 안 도는 현상까지를 고려해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대폭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처럼 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 '찔끔 금리 인하'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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