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캠버스·1박~2박 여행일정 안내♣/♣원정·여행.사진

남자가 귀한 섬... '돈벼락' 추억만 아른 여수.사도/추도

여행가/허기성 2015. 3. 21. 08:07

남자가 귀한 섬... '돈벼락' 추억만 아른 여수.사도/추도

'모래 서 말을 마셔야 시집 간다'라는 말이 있다. 신안 우이도와 임자도, 옹진 대청도와 같이 모래 많은 섬마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섬 주변에 모래가 많고 바다 한가운데에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이름 붙은 여수사도(沙島)에도 한 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방파제 때문에 모래가 많이 사라졌다고 마을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지금은 이것도 예전 말이 되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돌담과 나끝 해송 거센 바닷바람에 이가 빠진 돌담이지만 돌담 안 밭은 아늑하다. 성긴 돌담사이로 나끝 해송이 보이는데 아늑한 밭과 바람맞고 있는 해송이 대비된다

모래섬 사도, 한 때 '돈섬'이었다

사도는 여수 365개 섬 가운데 하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수에는 317개 섬이 있었는데 최근 365개로 갑자기 늘었다. 일 년은 365일, 그 숫자에 꼭 맞춘 듯하다. 여하튼 여수시에서 발표한 작년 말 기준 섬 개수는 365개. 사람이 사는 섬 49개, 살지 않은 섬이 316개다.

사도가 한몫 거들었다. 사도에는 일곱 개의 섬이 있다. 마을이 있는 '사도본섬'과 가운데 섬  '간댓섬'(중도, 中島), 시루같이 생긴 '시루섬'(증도, 甑島), 긴 뱀처럼 생겼다는 '진댓섬'(장사도, 長蛇島), 250년 묵은 다섯 그루 해송이 있는 '나끝', 연못같이 생긴 '연목', 미꾸라지같이 작은 '추도'(鰍島)를 통틀어 사도라 부른다. 추도와 사도마을에만 사람이 살고 다른 섬에는 살지 않는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마을과 사도바닷가 사도는 모래섬, 일곱 개 섬으로 둘러싸여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잘나가던 사도가 쑥대밭이 된 것은 1959년 태풍 '사라' 때문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단한 섬이었다. 한 때 500명 주민에 초등학생만 100명이었다. 사라 태풍 이후 마을 사람들은 육지로 떠나, 이제 20가구에 마을 사람은 기껏해야 40명 정도다. 남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남자 가운데 몇 명이라도 볼일 보러 여수에 나가면, 섬에 남자가 한 명 남을 때도 있다 하니 남자는 사도에서 귀하신 몸이다.

조기잡이가 왕성할 때 이웃 섬사람들은 모두 사도를 '돈섬'이라 불렀다. 하기야 섬사람들은 잘 나가는 섬을 곧잘 돈섬이라 부르곤 했다. 전갱이가 잘 잡힌 1930~1960년대 만재도, 김 값이 좋던 1970~1980년대 장병도, 홍합과 멸치가 많이 잡히던 소횡간도, 나무 많고 고기 많이 잡힌 매도, 모두 한 때는 돈섬으로 불렸다.

공룡 최후의 피난처, 사도

사도·추도바닷가는 공룡 발자국 투성이다. 7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끝 무렵에 공룡이 마지막으로 남긴 자국이다. 공룡이 멸종된 지 6500만 년 되었으니까 사도·추도는 공룡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공룡 발자국을 그냥 호랑이 발자국으로 불렀다 하는데 이것이 공룡 발자국으로 밝혀진 지 몇 해 안 되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 중생대 퇴적층 중생대 퇴적층, 공룡의 마지막 피난처로 발자국화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신생대 끝자락에 매달려 아등바등하는 나는 7000만 년 전 중생대로 시간여행을 했다. 여수 백야 선착장에서 사도로 가는 '태평양호'는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 백야도에서 사도까지는 50여 분 걸린다. 거리는 27km. 막걸리로 유명한 개도(蓋島)와 아랫꽃섬(下花島), 윗꽃섬(上花島)을 거쳐 사도에 닿았다. 배 종점은 낭도(狼島). 낭도는 사도의 앞섬으로 여우를 닮아 붙인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부터 사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이 때 이름은 사호도(沙湖島)로 일제강점기에 사도로 바뀌었다. 사도에 딸린 섬들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바다 모양이 마치 호수 같다 하여 이렇게 불렀다. 공룡시대, 중생대에 이 땅은 호수 많은 육지였다. 이렇게 보면 사도 이름을 사호도로 바꾸는 게 좋지 않나 싶다.    

사도마을은 바다가 사방을 싸고 있는 판판한 곳에 있다. 섬마을인데 언뜻 당연한 듯하지만 산과 언덕아래에 들어선 다른 섬과 달라 독특하다. 산이나 언덕 대신 사방팔방 돌담을 쌓았다. 

사도마을 돌담(등록문화재 367호)

신이 빚은 사도바닷가 퇴적층에 비하면 돌담은 인간의 보잘 것 없는 부스러기. 그래도 한켜 한켜 정성들여 쌓은 돌담은 마을 사람들의 목숨 같은 존재다. 온 동네를 휘감으며 실핏줄처럼 구석구석 뻗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모두 이 마을 바닷가에서 난 돌로만 쌓은 강담이다. 둥근 호박돌이 많지만 드문드문 얇고 널따란 널돌도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마을 돌담 사도돌담은 마을사람들에게는 목숨 같은 존재. 마을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어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마을 강담 사도돌담은 돌만 가지고 쌓은 강담, 널돌도 있지만 대개 둥근 호박돌로 쌓았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고불고불 굽어진 돌담에 부딪힌 드센 바닷바람은 길을 잃고 기세가 한풀 꺾였다. 마을 바깥담은 지붕까지 올라섰지만 마을 안쪽 담은 지치고 순해진 바람 덕에 돌담도 낮다. 또르르 말린 돌담은 무엇인가 봤더니 뒷간. 집은 헐리고 뒷간만 남았다. 뉘 집 빨랫줄에 널린 빨래는 사람 귀한 마을이어서 더 정답게 보인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마을 고샅돌담 바닷바람도 마을고샅에 들어오면 길을 잃고 숨을 죽인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는 사람 귀한 사도에서 더 정답게 보인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돌담과 홍마늘 마을 효자 노릇하는 홍마늘이 돌담 밭 안에서 곱게 자라고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바닷바람 못 이겨 군데군데 이가 빠졌어도 돌담 밭은 아늑하다. 추위 타는 땅콩은 바람 잔잔한 마을 가운데 밭담 안에서 귀하게 자라고, 마을 효자 노릇하는 홍마늘과 철모르는 가을상추는 돌담 틈새로 들어오는 햇발에 생기를 찾았다. 빈집에 홀로 꼿꼿이 자라는 왕파는 그 모습이 제법 늠름해 보인다.

돌담은 김을 말리기 좋은 받침대. 대나무 발에 정성스레 널어놓은 돌김은 바람결에 너덜거리며 꼭 붙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사도 사람들의 '징한' 삶을 보는 것 같다. 매끈한 양식 김은 도시 사람이요, 투박하고 두터운 돌김은 사도 사람. 투박하지만 정 많은 사도 사람들을 닮아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돌담과 돌김 투박하지만 정 많은 사도사람을 닮아 돌김은 거칠고 두텁다. 철모르는 가을 상추는 따뜻한 햇발 받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사도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냥 바다다. 땅 대신 바다다. 바닷물이 빠지면 바다는 밭이 되어 뭍사람들 농사 짓듯 사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갯것들을 줍는다. 돌담에 부딪혀 순해진 바람결 따라 돌담을 빠져나가면 간댓섬 앞 퇴적층 바닷가, 중생대 공룡의 마지막 피난처에서 이제 신생대 사도마을 사람이 공룡 대신 터 잡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 ‘바다 밭’ 물 빠지면 바다는 마을사람들에게는 밭이 된다. 중생대 공룡 터에서 이제 사도사람이 삶을 이어간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사도의 미래

일곱 개 섬이 둘러싸 호수같이 아늑한 사호섬, 사도는 우리에게 조그맣고 조용하고 평화스런 섬이지만 개발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좋은 먹을거리다. 마을 생태계와 경관, 문화와 역사를 지키고 가꾸어야할 때 그들은 개발을 못해 안달한다. 

마을에 슬며시 개발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면서 '달콤한 소스'까지 발렸으니 개발론자들에게 더 좋은 먹잇감이 된 셈이다. 비록 무산되었지만 낭도와 사도를 비롯한 인근 섬에 수상호텔, 콘도미니엄 등 공룡 같은 숙박시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입에 담기도 언짢은 개발계획이 사도 앞에 아른댄 적이 있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사도 공룡모형 사도 선착장에 내리면 티라노사우스가 수호신처럼 서있다. 먹잇감 찾는 티라노사우스의 매서운 눈, 이제는 사도를 지켜줄 것이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다행인지 달콤한 소스에 독이 들어 있었다. 사도 주변 공룡 화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보다 축소되더라도 이와 비슷한 계획이 실현된다면 공룡 보러 왔다가 '공룡 같은 개발물'만 보게 될 것이다. 이런 계획이 섬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별천지가 되면 무엇 하겠는가? 언제 다시 이런 개발계획이 현실로 될지 모른다.

사도는 백악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섬이 될 것이다. 여기에 비록 보잘 것 없고 투박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목숨같이 여긴 돌담이 한데 어우러질 때 사도의 미래가 있다. 마을도 살고 마을 사람들도 사는 서로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