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찜질방에서 하룻밤 보낸 외국인여성
나는 체면을 구길 채비를 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3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한 나는 이미 일본에서 거의 모든 체면을 구긴 상황이었다. 나는 ‘체면을 구긴다’는 말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구인들에게는 알쏭달쏭한 개념인 ‘체면을 구긴다’라는 말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초밥 식당에서 녹차 가루를 고추냉이(와사비)로 착각해 물과 섞어 참치 초밥에 잔뜩 묻혔다고 하자. 당신의 남자친구는 그것이 자신이 먹어본 와사비 중 최악의 맛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때 체면을 구긴 건 당신만이 아니다. 당신이 실수하는 것을 지켜본 모든 이들도 보면서 느낀 당혹감 때문에 체면을 구기게 된다.
한국에서 나의 불상사는 늘어만 갔다. 항구 도시인 부산에 도착한 후에 게스트하우스 밖에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입구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가 양말을 신지 않은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지하철을 탔을 때 경로석에 앉자 한 연세가 지긋한 여성이 저 끝에서 이 끝까지 걸어와 나를 물병으로 때렸다. 모두가 이를 지켜봤고 모두 체면을 구겼다.
어느 늦은 밤 소주에 취한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구길 체면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나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친구 제임스에게 한국의 진정한 목욕탕 ‘찜질방’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도 이국적이고 지켜야 할 에티켓이 많은 곳이기에 이제 체면을 구길대로 구긴 나에게는 찜질방을 가본다는 것이 매력적인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목욕탕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점에도 불구하고 녹차 ‘와사비’를 먹었던 내 남자친구처럼 제임스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찜질방에 다녀온 뒤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나는 내가 찜질방을 전혀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욕조가 가득 찬 방, 반점이 거뭇거뭇한 계란들이 든 계란판이 쌓인 탈의실, 알몸으로 TV를 보는 방이라니! 술에 취해 혼자 여성 전용 공간에 있던 나는 공황 상태에 빠져 사우나로 숨었다. 나는 찜질방의 모든 재미를 놓쳤다. 친구들이 찜질방에서 보낸 유쾌한 저녁 시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 나의 질투심이 폭발했다.
이튿날 우리는 마산에 갔다. 그 날 저녁 제임스는 우리에게 자신의 영국인 친구 비키를 소개했다. 비키도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인사를 나눈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술기운에 취해 또 다시 찜질방에 가자고 우겼다.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내가 찜질방에서 놓친 것을 볼 기회를 냉큼 나꿔챈 것이다.
찜질방에서 비키와 나는 핑크색 반바지와 상의, 그리고 면 실내화를 받았다. 감청색 카페트가 깔린 첫 번째 라커룸은 신발만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두 번째 라커룸은 옷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 두 라커룸 사이에 형광등으로 불을 밝힌 TV 시청 공간이 있었고 여성들이 늘어선 원목 평상에 누워 대형 스크린으로 케이팝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들의 우유처럼 흰 팔, 평평한 가슴, 제왕절개 수술 흉터가 생긴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형틀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스터드 푸딩이 떠올랐다. 6층으로 쌓인 계란판에는 반짝이는 계란들이 들어 있었다. 비키는 나에게 이 계란이 찜질방의 가장 뜨거운 사우나에서 여러 시간 동안 구운 계란이라며, 찜질을 끝낸 후 먹는 고소한 간식이라고 설명했다.
비키와 나는 옷을 벗은 후에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습하고 체육관 만큼이나 널찍했다. 처음으로 나는 오밀조밀한 작은 탕들을 보았다. 각 탕의 온도는 얼음처럼 찬데서부터 불쾌할 정도로 뜨거운 것까지 다양했다. 가장 큰 탕에는 폭포가 설치돼 있었는데 여성들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폭포에서 물을 떠 서로에게 따뜻한 물을 끼얹어 주고 있었다. 목욕탕 안에서는 사향 냄새가 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타일 천장에는 검은 곰팡이가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목욕탕 한 쪽에는 일렬로 늘어선 거울과 작은 의자들이 있었고, 여성들은 의자에 앉아 습기로 흐릿해진 거울 앞에서 목욕을 하고 서로 돌아가며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서서히 그 여성들이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들을 빤히 쳐다봤기 때문에 그들도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특히 영국인으로 피부가 희고 가슴이 큰 비키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한 탕에서 다른 탕으로 옮겨 가면서 점점 더 온도가 뜨거운 탕을 도전해 보자 여성들이 우리 건너편에 모여 우리를 가르키면서 무언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탕 속으로 뛰어들면서 나는 여전히 지난 밤에 마셨던 소주의 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위생에 대한 걱정, 그리고 독한 염소 소독제 냄새가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나는 갑자기 한국에서 음주 후에 찜질방을 가는 것이 왜 보편적인지 이해가 됐다. 용기가 필요할 때 알몸이 되면 적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목욕탕 물에서 얼마나 많은 계란이 삶아졌을까? 목욕탕 물에서 때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답답해져서 탕에서 나왔다.
우리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핑크색 찜질복을 입고 실내화를 신은 후 계단을 걸어 올라가 수면실로 갔다. 남녀 공용 수면실에서 우리는 파란색 찜질복과 실내화를 신은 남자 친구들을 만났다. 3달러의 추가 요금을 내고 우리는 그날 밤을 묶을 수 있는 특혜도 얻었다.
우리는 베개를 들고 가 깜깜하고 널찍한 방 중앙에 매트를 깔았다. 이 수면 공간 주위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은은한 조명의 카페가 있었다. 왼편에는 체육관이 있었는데 운동 기구들 사이에서 한 가족이 졸고 있었다. 복층으로 된 수면 공간도 주욱 늘어서 있었다. 뜨거운 방바닥에서 자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잘 수 있는 곳이었다. 각 칸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의 발이 뻗어나왔다.
주변 광경에 둘러싸여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나는 몇 분 전 나의 은밀한 부위를 가르켰던 여성들 옆에서 잠을 자면서 신기하게도 평온함을 느꼈다. 코 고는 소리, 아이들이 뒤척이는 소리, 신경에 거슬리는 한 남성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나는 수백년 간 전해 내려온 매우 친밀하면서도 집단적인 의식을 목도하면서 그때만큼은 ‘체면’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친구님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이슬, 음식점서 1천원 오를듯…가격 `눈치작전` (0) | 2015.12.01 |
---|---|
교황 "교회는 섬기는 곳이지 돈버는 장소 아냐" (0) | 2015.11.08 |
"SW는 취업 지름길"…줄 서도 듣기 힘든 대학강의 (0) | 2015.05.27 |
한화 폭스, 첫 경기 치르고 바로 1군 합류 (0) | 2015.05.20 |
서울 떠나는 시민들… 2016년 1000만명 밑돌듯 (0) | 201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