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重·대우조선 구조조정 소문에 불안한 거제도
지난 4일 오후 3시 경남 거제시 장평3동 삼성중공업 정문. 정문 안쪽에는 “회사의 생존이 걸린 위기 상황, 우리 모두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박대영 삼성중공업 대표이사의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직원들 중 어느 누구도 문구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 ▲ 거제 삼성중공업 정문
삼성중공업은 2분기 1조500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임원 수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인지 삼성중공업 조선소 내부의 현장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삼성중공업의 한 직원은 “얼마 전에는 카카오톡으로 (사무직 부장급 이상) 구조조정 대상 기준이 돌기도 하고, 사내 부부나 사무직 여직원 등을 상대로 면담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회사가 구체적인 (구조조정) 숫자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대상이 어디까지로 확대될지 몰라 분위기가 안 좋다”고 말했다.
◆ 실체없는 구조조정 소문에 분위기 흉흉
거제도의 상권은 크게 삼성중공업이 있는 ‘고현’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로 나뉜다. 두 곳 모두 저녁 5시가 지나자 회사를 상징하는 회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거리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성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삼성 스타일상 ‘몇명을 자르겠다’고 숫자를 제시한 적은 없었다”며 “인사팀은 소문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구조조정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2분기까지 해양플랜트 손실로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 (6,580원▲ 40 0.61%)내부도 구조조정 불안감이 엄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반쯤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고, 표정이 밝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한 직원은 “사무직 중에서는 굉장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직급적으로 보면 항아리 조직(전체 7000명 중에 1300명이 부장급)이라 관리직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불안해하면 현장 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자원 재배치 등을 통해 부문과 팀, 그룹 숫자도 약 30% 가량 줄일 계획이며, 이에 따라 부장급과 전문위원, 수석전문위 등 고직급자 1300여명 중 일부를 대상으로 인적 쇄신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 ▲ 4일 오후 5시쯤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직원들의 뒷모습
◆ 관리직 불안감, 현장 분위기까지 영향 미쳐
현장에서는 관리직들의 불안감이 현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현장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우 대우조선해양 정책기획실장은 “조선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장 관리 및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관리직들이 고용 불안 때문에 ‘내 밥그릇이 어찌될 것이냐’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면, 현장 업무 관리 및 생산성, 안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3달동안 LPG탱크선 사고, 통근버스 전복 사고, 대형 타워크레인 사고 등 현장 사고가 연달아 났다.
- ▲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안에서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직원들의 모습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에 비해 중간관리자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해양플랜트 사업부의 경우, 작업 인력의 70%가 협력사 인원으로 채워질만큼 삼성중공업 자체 운용 인력은 적은 편이다.
삼성중공업 한 관계자는 “이미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한 현대중공업은 다시 경력사원을 모집하더라”라며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인력을 자르는 것은 불안감만 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현대중공업 (90,400원▼ 100 -0.11%)은 이미 올해 초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00명을 희망 퇴직 형태로 내보냈다. 같은 처지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내부적으로는 사무직 부장급의 구조조정 시기와 규모를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 “사람 자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
일각에서는 구조조정의 규모에 집착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조선업계가 인위적으로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면, 인적 노동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선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지만, 적자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수치상으로 몇 명을 자르겠다’고 나온다면 조선업의 경쟁력 약화와 노사 분규 등 불씨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 삼성중공업 정문 만남의 광장 주변에서 쉬는 시간 도중 잠시 담배를 피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
현장 내부에서도 일방적인 인적 구조조정보다 적자의 원인이 되는 프로젝트의 업무 수지를 맞추는 일에 주목하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우조선해양의 현장직 직원은 “5시까지가 정상근무라고 하지만 일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6~8시까지 잔업을 하기도 한다”며 “수지를 맞추는 일에 주목해야지 모두들 ‘몇명을 자르느냐’에만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재 조선업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장기적인 대책으로 노동 인력의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현우 대우조선해양 정책기획실장은 “한해에 정년 퇴임으로 300~400명이 회사를 나가지만, 이에 비해 신규 정규직 채용은 더디다”며 “여기에서 사람을 더 자를 것이 아니라, 인력 재배치 및 훈련, 실습 등을 다양하게 거친 후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정규직)을 늘려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도 혁신적인 인력운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일남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조직국장은 “ 해양플랜트의 경우, 오늘 용접하면 (설계가 바뀌어서) 내일 다시 떼라는 지시가 빈번하다고 한다”며 “기술력 떨어지는 것 알면서도 일을 진행하다보니 생긴 적자라는 점을 기억하고 보다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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