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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살 돈으로… 홍제동 개미마을에 올린 '초소형 집'

여행가/허기성 2015. 9. 8. 07:53

 

 전세 살 돈으로… 홍제동 개미마을에 올린 '초소형 집'

 

 

'거품'만 빼고 있을건 다 있다

전세냐 매매냐, 20평대냐 30평대냐, 동네는 어디로, 비용 분담은 어떻게… 한국 신혼부부는 알콩달콩 깨 볶기도 전에 집 때문에 쓴맛부터 본다. 2015년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거주 모델은 72.7㎡(22평) 아파트 1억~2억원짜리 전세라고 한다.

여기 고정관념을 깨고 나만의 건강한 집을 만든 신혼부부가 있다.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은 서울에서 몇 안 남은 달동네다. 인왕산 자락을 끼고 판잣집 소복한 이 마을 입구에 올 초 작은 2층 집 하나가 들어섰다. 대지 면적 85㎡(26평), 연면적 49㎡(15평)의 초소형 주택. 주차장은 아예 없다. 집 이름마저 ‘작은 집’이다.

 

 

이창석, 박혜윤씨 부부가 딱 맞는 맞춤옷 같은 자신의 집 ‘작은 집’ 발코니에서 미소 짓고 있다.

지난 3월 결혼한 부부 이창석(33)·박혜윤(34)씨가 이 집주인이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어떤 집에 살 것이냐부터 고민했다. 틈나는 대로 스마트폰 메모장에 원하는 집의 모습을 입력했다. “아파트 전세도 알아봤는데 언젠가 이사 가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집을 사자니 값도 비싸고, 앞으로 집값이 내려갈 것 같아 무의미해 보였어요. 고민하다가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사는 동안 즐겁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최근 이 집에서 만난 부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1억~2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집 짓기란 모험에 가까웠다. 우선 집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여기는 세대인 양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팔기 쉬운 아파트를 사라”던 부모님도 두 사람의 자못 진지한 태도에 두 손 들었다. 그러다 혜윤씨 친정 근처인 개미마을에서 작은 터를 발견했다.

서울 22평 아파트 전세값으로 주차장 없는 '초소형 2층집' 지어



"우리 세대의 집에 대한 고민 담아
선입견 없이 실용 위주로 만들었죠"

두 사람은 비슷한 또래로 서울 합정동 단독주택 2층 사무실에 세 들어 막 활동을 시작한 신혼부부 건축가 이소정(36)·곽상준(35) OBBA 공동대표를 찾아갔다. “우리로선 일생을 건 실험이었기에 이 실험을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여 줄 건축가를 찾았어요.” 건축주 부부의 말에 부부 건축가가 말했다. “우리 세대 집에 대한 고민을 담았고, 돈이 많아야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 반가웠어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간소했다. ‘무의미하게 버리는 공간 없이 딱 맞는 집, 도드라지지 않는 집, 욕심 비우고 살 수 있는 집’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은 집’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1층엔 방 2개와 욕실, 2층엔 주방 겸 거실이 있고 박공지붕 형태를 그대로 살린 다락방도 있다. 모퉁이엔 정원이, 입구엔 자전거 거치 공간이 있다. 공간이 풍성해 30평형대 아파트보다 훨씬 큰 느낌이다.

 

‘뚜벅이’인 이들은 앞으로도 자동차 없이 살 거라 주차장을 두지 않았다. ‘딱 맞는 집’이란 개념은 누우면 두 다리에 꼭 맞는 넓이의 침실을 보면 명확해진다. 외관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 외부 재료를 달리해 두 덩어리처럼 만들었다. 일부는 외단열 시스템 위에 하얀 칠을 했고, 일부는 골강판으로 만들어 진회색 집에 하얀 집을 끼운 것 같다. 비용은 예상보다는 좀 늘었지만, 건축비 1억 2000만원을 포함해 ‘홍제동 30평형대 아파트 전세 수준(3억~4억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창석씨 부부는 집뿐만 아니라 결혼 과정에서도 거품을 뺐다. 서울시청 시민청을 식장으로 빌려 ‘작은 결혼식’을 했다. 청첩장도 직접 디자인해 일일이 집에서 프린트했다.

 

소정씨는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니 삶의 생김에 따라 집 모양도 달라야 한다는 걸 두 부부가 보여준다”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 있게 가치 있는 삶을 꾸리는 두 건축주에게 감동 받았다”고 했다.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실천을, 겉멋보단 실용을 우선하는 신세대의 사고가 새 건축을 만들고 있다.